"유해라도 고향 땅에"…국군포로 2세, 北에서 보낸 편지

장희준 2023. 8. 4. 07: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아버지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과자공장에서 일했습니다. 1950년 7월7일 의용군에 입대해 군대에 나왔더랬죠. 신체검사를 마치고 군복을 입은 아버지에게 할머니는 모포 같은 것을 챙겨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리별이었습니다."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은 4일 아시아경제와 만나 "올해 초까지도 인편(人便)을 통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 생존자로부터 '살려 달라'는 구조 요청이 왔다"며 "구체적인 지역이나 내용은 안전 문제로 밝힐 수 없지만, 최근까지 연락을 해온 분만 10여명이다. 생존자는 그보다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박선영 "올초까지 구조 요청…생존자 더 있다"
北 방해 전파로 접경 지역 전화 시도까지 막혀
軍 "귀환에 비용 필요하다면 지급할 수 있다"

"아버지는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과자공장에서 일했습니다. 1950년 7월7일 의용군에 입대해 군대에 나왔더랬죠. 신체검사를 마치고 군복을 입은 아버지에게 할머니는 모포 같은 것을 챙겨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할머니와의 마지막 리별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술을 즐겨 했다고 합니다. 공장에서 로임(노동임금)을 받는 날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그리고 아이들 간식을 사 가지고 오는 것을 책(의무)으로 여겨 왔다고 합니다. (중략) 여기서는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건설과 천리마 운동에 동원…"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그 가족의 구조 요청이 담긴 서신. [사진제공=사단법인 물망초]

북한에서 태어난 국군포로의 자녀는 남측으로 '구조 요청'을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의 콧잔등에 점이 있다거나 남한에 남은 가족과의 일상적인 추억, 형제들의 생년월일까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절박한 기억들이 담겼다. 수십 년째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생존자의 '구조 요청'은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박선영 사단법인 물망초 이사장은 4일 아시아경제와 만나 "올해 초까지도 인편(人便)을 통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국군포로 생존자로부터 '살려 달라'는 구조 요청이 왔다"며 "구체적인 지역이나 내용은 안전 문제로 밝힐 수 없지만, 최근까지 연락을 해온 분만 10여명이다. 생존자는 그보다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현재 북한에 억류된 생존자 대부분은 함경남도·함경북도·양강도·자강도·평안북도 등 5개 지역 탄광촌에 거주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귀환 국군포로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들은 정전협정 이후 포로 대신 '해방 전사'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전후 복구사업 등에 동원됐고 자녀 세대까지 '괴뢰군 포로'라는 낙인이 찍혀 탄광 등 강제노역에 내몰리고 있다.

박 이사장은 "과거에는 주로 서신이 왔고 이후에는 전화로 구조 요청이 왔었는데, 코로나19 사태 뒤로는 모든 것이 끊겼다"며 "현재로선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사람을 통해 '말'로 전해지는 것이 전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군포로의 소원은 죽어서 유해라도 고향 땅에 묻히길 원하는 것"이라며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송환을 촉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흔 넘긴 국군포로…"유해라도 고향에 묻어달라"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와 그 가족의 구조 요청이 담긴 서신. [사진제공=사단법인 물망초]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07년 기준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는 1770명, 이 중 생존자는 560명으로 추정됐다. 최소 스무 살 때 붙잡혔다고 가정해도 올해 90세에 이르는 만큼 상당수는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추정되며, 관계 당국은 100명 안팎의 국군포로가 살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로 돌아온 귀환 국군포로는 80명, 생존자는 12명뿐이다.

2010년 이후 귀환이 끊긴 생존자의 구조 요청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정보 관계자는 "수년 전까지 중국 통신 회선을 이용해 접경지역에서 남측으로 전화하는 일이 가능했지만, 최근에는 북한 당국이 방해전파로 이를 저지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로선 '도강증'을 소지하고 두만강을 넘나들 수 있는 무역상, 탈북 브로커 등이 사실상 유일한 연락책이다.

정부는 국군포로가 스스로 탈북하기 전까지는 개입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법에 따라 국군포로 및 가족이 탈북해, 귀환을 목적으로 정부 지원을 요청하면 관계부처 협의를 통해 송환을 지원한다"며 "국내로 귀환하기 위한 비용이 부족해 지장이 초래되는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