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판검사를 위한 의사집단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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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후 우리 의료계의 초대형 지각변동 몇 건은 복지부가 아닌 판검사가 유발했다.
판검사가 의료 지형을 또 뒤흔들 일이 올해 두 건 연이어 발생했다.
의학적으로 문제없다고 자평하는 의료행위를 사법처리로 자극하면 의사집단은 그 의료행위를 포기하거나(보라매병원 중환자실), 진료과목을 통째로 외면한다(이대목동병원 소아과). 의료행위는 표준화돼서, 의사들은 "내가 그 상황이면 그 병원 판결이 나한테도 적용된다"고 겁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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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후 우리 의료계의 초대형 지각변동 몇 건은 복지부가 아닌 판검사가 유발했다. 판검사가 의료 지형을 또 뒤흔들 일이 올해 두 건 연이어 발생했다.
시계를 되돌려, 1997년 12월 보라매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뇌출혈 남편을 아내의 간청으로 퇴원시키고 인공호흡기를 떼어 준 의사에게 서울남부지법이 살인방조죄 실형을 선고했다. 무의미한 인공호흡기를 의사가 벗겨주던 관습이 이날로 국내 모든 병원에서 단번에 영원히 사라졌다. 부작용으로, 회생불가능 환자도 사망 전에 중환자실에서 나갈 수 없게 됐다. 2008년 식물인간이 된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가족이 요청한 인공호흡기 제거도 “벗기라”는 대법원 판결 때까지 의사들은 철벽 거부했다.
2017년 12월 이대목동병원에서 신생아 4명이 돌연 사망하자, 검찰은 소아청소년과 교수 등 3명을 구속했다. 나중에 전원 무죄 확정됐으나, 수갑 찬 교수를 목도한 젊은 의사들이 그날로 소아과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2018년도 113%이던 전국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은 올해 25%로 폭락했다. 소아과 전문의 배출은 수련기간 4년이 지난 올해부터 쪼그라든다.
의학적으로 문제없다고 자평하는 의료행위를 사법처리로 자극하면 의사집단은 그 의료행위를 포기하거나(보라매병원 중환자실), 진료과목을 통째로 외면한다(이대목동병원 소아과). 의료행위는 표준화돼서, 의사들은 “내가 그 상황이면 그 병원 판결이 나한테도 적용된다”고 겁먹는다. 겁을 먹은 고위험 필수과목 의사들에겐 고수익 비보험진료라는 안락한 도피처가 있다. 이래서 보라매병원 인턴, 이대목동병원 소아과교수 개인의 사법처리가 의료계 전체에 쓰나미를 일으켰다.
시계를 올해로 다시 돌려, 지난 3월 대구 17세 외상환자 ‘응급실 뺑뺑이' 사건과 관련해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피의자로 입건되자 이번에도 도피 행렬이 생기고 있다. “받을 수 없는 환자를 받지 않은 의학적 판단을 범죄로 모는 마녀사냥”이라는 반발과 함께 전공의 중도 포기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전한다.
최근에는 신생아 뇌성마비가 발생한 산부인과에 수원지법 평택지원이 12억원 손해배상을 판결했다. 이상을 느낀 임신부가 밤 11시30분 병원에 왔는데 주치의는 응급 검사를 간호사에게 시키고 새벽 1시12분에야 도착해서 사고가 났으니 책임지라는 판결이다. 2021년까지 국내 분만 관련 손해배상 최고액이 5억5000만원이었는데(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 자료), 단번에 12억원이 됐다. 이 판결은 분만 산부인과 폐업을 가속할 것이다.
대구와 평택 사건은 책임이 확정되지 않았다. 전자는 수사 중이고, 후자는 항소심이 남았다. 의료소송은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의사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수사기관과 사법부는 의사의 과실이 있으면 엄정하게 다스려 힘없는 환자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 동시에, 개별 사안 처벌이 의료체계 전체를 바꾸는 파장을 낳기도 하는 점을 함께 생각하도록 당부한다.
이동혁 사회부장 d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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