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주민등록증' 18만원 준다는데…기시다 최저 지지율, 왜

이영희 2023. 8.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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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일본판 주민등록증인 '마이넘버카드' 문제 때문이다.

내년 가을부터 현재 사용 중인 건강보험증(의료보험증)을 없애고 마이넘버카드로 기능을 통합하기로 했으나, 상당수 일본인은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할 거라 걱정하고 있다. 국민적 불안감에 지지율이 20%대까지 하락하자 기시다 총리가 직접 나서 국민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일본의 유명 배우인 사카이 마사토가 지난 2021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이벤트에서 자신의 마이넘버카드를 보여주며 카드 발급을 독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4일 오후 마이넘버카드와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연다.

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2024년 가을에 건강보험증을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그대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할 예정이다. 대신 이번 가을까지 마이넘버카드 운영 시스템을 총 점검해 국민들이 의료 기관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약속한다는 계획이다. 건강보험증 폐지를 둘러싼 여론 악화로 여당에서조차 일정을 늦추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일단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통합시스템 없어 감염자 파악에도 수일 걸려


마이넘버카드는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공인인증서 기능 등을 합친 형태다. 일본 거주자들에게 16자리의 고유번호를 지정해 발행한다.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식별번호 시스템이 없었던 일본은 2016년부터 '디지털 행정'을 추진하면서 카드 보급을 시작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시민들이 발급을 꺼리면서 실제 신청은 지지부진했다.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공인인증서 기능을 결합한 일본의 '마이넘버카드'. 사진 NHK 화면캡처


정부가 필요성을 절감한 계기는 코로나19 사태다. 전국적으로 통합된 의료 시스템이 없어 감염자 집계도, 백신 접종도 건강보험증 발급 주체인 지자체에 맡겨야 했다. 지역별 감염자수를 팩스로 받아 집계하다 보니 전국의 감염자 수를 파악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이를 계기로 일본 정부는 지자체가 관리하는 건강보험증을 없애고 마이넘버카드로 통합하는 '마이너보험증' 제도를 운영하기로 하고 건강보험법을 개정했다. 카드 보급을 위해 발급 받는 사람에게 약 2만엔(약 18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때문에 신청자가 급증해 지난 6월 말 기준 마이넘버카드 보급율은 70%를 넘어섰다.

하지만 카드 발급 과정에서 동명이인 등 다른 사람에게 카드가 발급 된 사례, 의료보험 정보가 다른 사람과 연동돼 개인정보가 노출된 사례 등이 수천 건 이상 드러났다.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건강보험증 폐지를 서두르자 불만이 폭발했다. 특히 복잡한 절차로 카드를 미처 발급 받지 못한 고령자 사이에선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끝까지 마이넘버카드를 발급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사람들도 문제다. 고심하던 정부가 카드가 없는 사람도 의료 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별도의 증명서인 '자격확인서'를 발급하겠다고 하자 "쓸데없는 예산 낭비"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지지율 하락 계속...정권 존립에까지 영향


마이넘버카드 소동으로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취임(2021년 10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24일 요미우리신문이 조사에서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6%포인트 하락한 35%를 기록해 기시다 내각 출범 후 가장 낮았다. 같은 날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는 지지율이 28%로 전달보다 5%포인트 하락하며 20%대까지 낮아졌다. 요미우리 조사에선 마이넘버카드를 둘러싸고 기시다 총리가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냐는 질문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가 80%에 이르렀다.
지난 18일 카타르를 방문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이날 닛케이는 "마이넘버카드를 둘러싼 문제들이 정리될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야당의 추궁이 계속되면 정권 운영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본 정계에선 기시다 총리가 이번 가을 내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치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선거를 승리로 이끌 경우 기시다 총리는 내년 9월 열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무투표로 재선돼 3년 간 총리직을 더 보장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여당 내에서도 "지지율 하락세가 계속되면 올 가을 중의원 해산은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내년 가을까지 해산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총재 선거를 맞게 될 경우, 새로운 인물로 총리가 교체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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