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식당 한국말은 "없어요"뿐…전세계 이런 차이나타운 없다

채인택 2023. 8. 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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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말 다른 ‘별천지’ 차이나타운

■ 우리동네 ‘글로벌 맛보기’

「 여권 없이 떠나는 전 세계 ‘미식 여행’. 아직은 생소한 전 세계 미식들이 알고 보면 우리 동네에 있습니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가 우리 곁에 온 글로벌 음식들의 유래,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맛깔나게 ‘가이드’해 드립니다. 그 첫 회로 서울 대림동. 세계 곳곳을 다녀본 필자는 “지금까지 이런 차이나타운은 없었다”고 단언합니다.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중국 동북지역 출신이 주류를 이룬다. 이곳의 대표적 음식인 샹라러우쓰. [중앙포토, 사진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지금까지 이런 차이나타운은 없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서울이나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서도 별천지다. 한국계 중국인(조선족)을 포함해 표준 중국어를 쓰는 동북지역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전 세계 유일의 차이나타운이다.

대림동 여행은 서울 지하철 대림역에서 시작한다. 차이나타운이 있는 지역은 대림2동이다. 비자·국제결혼 등 이주자를 위한 각종 법률·행정·정착 상담을 해주는 사무소 간판이 줄지어 보였다. 결혼식 등에 사용되는 연회장 간판도 있었다. 밤늦게까지 머물렀지만 영화 ‘범죄도시’ ‘청년경찰’ 속 살벌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우선 훠궈(간자체 火锅, 번자체 火鍋) 가게가 거리에 즐비하다. 수많은 훠궈 가게가 전국에 있지만 대림동이 규모 면에선 으뜸으로 보인다. 훠궈는 과거 몽골족 등 유목민에게서 비롯한 음식으로 알려졌다. 이것이 중국에선 훠궈로, 일본에선 샤부샤부로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중국 동북지역 출신이 주류를 이룬다. 이곳의 대표적 음식인 훠궈. [중앙포토, 사진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대림동 골목부터는 한국보다 중국에 가까운 분위기다. 입구 쪽에는 아침식사를 위한 음식을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다. 묽은 반죽에 여러 재료를 얹은 지짐인 젠빙(煎餠·煎饼), 찐빵인 바오쯔(包子), 시판(稀飯‧稀饭) 또는 저우(粥)로 불리는 쌀이나 좁쌀로 만든 죽 가게 등이다. 튀긴 꽈배기인 유타오(油条·油條)와 콩국 또는 두유인 더우장(豆浆·豆漿)을 만들어 파는 가게도 여기저기 보였다.

그 사이에 중국 순대를 만들어 파는 가게나 정육점, 만둣집 등이 즐비했다. 중국 북방에서 만두·찐빵과 함께 아침식사로 즐긴다는 순두부와 비슷한 더우푸나오(豆腐脑·豆腐腦)도 빠질 수 없었다. 다진 고기와 채소로 만든 소를 얇은 피에 싼 훈툰(馄饨·餛飩·광둥어로는 완툰)도 보였다. 찹쌀 등으로 만든 주먹밥 판퇀(饭团·飩團)도 있었다.

중국 동북식 두툼한 순대를 파는 가게도 있다. [중앙포토, 사진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조금 더 들어가니 화장품가게와 대형 수퍼와 함께 이발소와 미용실이 나타났다. 지린(吉林)성 옌볜(延边·延邊) 조선족 자치주에서 봤던 순희냉면 등 중국 현지 브랜드 식당도 보였다.

차이나타운 거리가 거의 끝날 무렵 좌회전하니 대림중앙시장으로 이어졌다. 2000년대 초 2세대 중국 이주민이 정착할 무렵만 해도 시장 입구 정도에만 중국산 식재료를 취급하는 이주민 가게가 있었다. 2023년 이 시장은 4분의 3이 중국식 또는 옌볜식 음식 재료·양념·채소를 파는 가게로 바뀌었다. 개고기도 보였다. 음식 재료를 근(斤) 단위로 팔았는데, ‘1근=500g’이라는 표시가 보였다.

대림동 안쪽 단골 음식점에 들어갔다. 훠궈나 양꼬치는 하지 않는 가게다.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파는 데다 돼지고기 만두와 양고기 만두를 즉석에서 쪄줘 즐겨 찾았다.

한국말은 “없어요”밖에 모르는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았다. 우선 샹라러우쓰(香辣肉丝)를 맛봤다. 채썬 돼지고기(肉絲)에 고수·고추·마늘 등을 듬뿍 넣은 요리다. 가지를 통째로 튀겨 위샹소스를 부은 위샹체즈(鱼香茄子)는 한국인에게 인기다. 위샹(鱼香)은 향미를 내는 조리법 또는 소스로, 쓰촨(四川) 요리에서 유래됐다.

식사는 고기·콩·채소가 조화를 이룬 징장러우스(京酱肉丝)로 이어졌다. 채썬 돼지고기를 중국장(또는 굴소스)과 마늘·생강·파·고추 등 향신채에 목이버섯·죽순·당근 등을 함께 볶은 다음, 만두피처럼 얇게 저민 포두부(脯豆腐)에 고수·오이·생파·당근 등과 함께 싸먹는 요리다. 원래 한국 화교들이 하는 식당에도 있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한·중 수교 이후 생긴 양꼬치집이나 훠궈집 등에서 주력 요리의 하나로 내면서 비로소 대중화했다.

대림동 여행은 중국 이주민이 한국에 들고 온 새로운 음식문화를 확인하는 기회였다.

아울러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한국인과 평행선을 달리는 중국 이주민 모습도 함께 목격할 수 있었다. 한국이 떠안은 장구한 과제일 것이다.

■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① 푸틴의 전쟁, 동대문 덮쳤다…우즈벡 식당 ‘씁쓸한 메뉴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81764

② 그 식당 한국말은 “없어요”뿐…전세계 이런 차이나타운 없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79993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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