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안일한 軍…해병대원 순직 두달 전 '대민지원 훈령' 없앴다
군 장병의 대민지원 활동 지침 등이 명시된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이 실종자 수색 과정 중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 사고 두 달 전 폐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군 당국은 다른 훈령과 상당 내용이 중복돼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사실상 대민지원에 대한 안일함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3일 군 당국에 따르면 국방부 훈령 제906호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은 지난 5월 26일부로 폐지됐다. 훈령은 강제성이 부족한 ‘행정규칙’이지만 조직의 행위 기준이 된다. 해당 훈령에는 대민지원의 목적, 관련 규정, 적용범위, 세부추진 지침 등이 담겨있었다.
국방부는 폐지 이유로 “사업별 대민지원의 경우 업무환경 변화와 소관 사업 관련 규정 및 지침 등에 따라 분야별로 검토·추진되고 있다”며 “사문화된 실적보고를 규정하고 있는 등 현재는 불필요한 조항들을 다수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훈령 제2532호 ‘국방 재난관리 훈령’과 내용이 중복돼 해당 훈령이 삭제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여기엔 대민지원을 대하는 군 당국의 관성적인 사고방식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군 설명과 달리 국방 재난관리 훈령은 폐지된 훈령의 주요 내용을 온전히 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폐지된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 제7조 ‘세부추진 지침’ 중 인력·장비 지원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 ‘지원활동’ 항목이 대표적이다. 해당 항목은 “대민지원을 요청한 자와 지원활동에 필요한 세부 절차 등을 사전협의해 내실 있는 대민지원 활동이 이뤄지도록 추진” “사업추진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관련 부서와 부대·기관은 적극 협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현존하는 국방 재난관리 훈령은 “인력 및 장비 지원 등을 협력함에 있어 대등한 수준의 공공기관 및 지자체와 협력한다”고만 나와있다.
'세부 절차에 관한 사전협의', '협조' 등의 문구가 '협력'과 같은 단순한 용어로 대체된 것이다. 대민지원 활동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한 예비역 장교는 “세부 절차를 놓고 군 협력관과 민·관이 모여 회의하며 현장 협조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 현재 훈령은 협력한다고만 명시됐으니 매우 모호한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이 폐지되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현재 국방부 훈령 제2748호 ‘국방 안전 훈령’은 ‘대민지원간 발생한 안전사고’에서 국방부 군수관리관을 주관 처리부서로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책임부서 지정의 근거 규정이 되는 게 국방부가 폐지한 대민지원활동 업무 훈령이라는 점이다. 책임 소재를 묻는 근거 훈령 자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해당 훈령이 졸속으로 폐지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해병대는 채 상병 순직 후 구명조끼 착용 등 관련 매뉴얼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공개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가 “대민 지원 형태별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한 뒤 일방적으로 취소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대민지원에서 군의 역할은 현재 훈령에서도 명확히 규정돼있다”며 “훈령, 매뉴얼 등에서 미흡한 부분은 꾸준히 보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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