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백선엽 장군 딸 "아버지 친일 문구 삭제, 법 따른 올바른 판단"
고(故) 백선엽 장군이 생전 “복덩이”라 부르며 예뻐했던 딸이 있다. 피비린내 나는 6·25 다부동 전투에서 나라를 지켜낸 전쟁 영웅도 집에선 자상한 ‘딸바보’ 아버지였다.
고 백선엽 장군 3주기를 맞아 한국을 찾은 백 장군의 첫째딸 백남희(75)씨가 3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백 장군은 생전 슬하에 2남2녀를 두었다. 미국 코네티컷주에 거주하는 백남희씨는 지난 6개월간 한국에 머물며 ‘백선엽장군기념재단’(이사장 김관진) 설립에 애를 썼다. 백씨는 인터뷰에서 “평생 사랑만 주신 아버지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지난달 보훈부는 “법적,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는 이유로 백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 문재인 정부가 기재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이 과정에서도 지난 2월 해당 문구 기재의 법적 문제가 있다는 백씨의 탄원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백씨는 보훈부의 ‘친일 문구 삭제’ 결정에 대해 “아버지가 친일파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유가족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윤 대통령 부부와 오찬을 했던 백씨는 “당시 윤 대통령도 ‘백 장군과 같이 훌륭한 분을 친일파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안타까움을 밝혔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Q : 보훈부가 백선엽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A : “유가족으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법에 따른 올바른 판단이다.”
Q : 올바른 판단이라 생각한 이유는.
A : “아버지의 안장 기록에 친일파라 적힌 부분은 사실과 다르고 법적 정당성도 없는 결정이었다. 국립묘지 관련 법률에 따르면 국가보훈부는 안장자로 결정된 분에 대해 예우를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아버지는 안장 하루 만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라는 내용이 기재됐다. 사실에도 어긋나고, 국립묘지의 목적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아버님 명예를 의도적으로 훼손하려는 행위였다.”
Q : 백 장군이 1943년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해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해 친일파라는 주장도 있다.
A : “아버지가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하며 반민족적 행위를 했다는 객관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2009년 아버지를 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의 결정이 있기 전 108회에 걸친 간도특설대 실상 조사에서 아버지가 친일 행적을 했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를 친일파로 모는 것 자체가 의도성이 다분하다. ”
Q : 최근 이종찬 광복회장이 한 인터뷰에서 “백선엽 장군의 간도특설대 복무는 팩트”라고 주장했는데.
A : “아버지는 나라를 뺏긴 이후인 1920년대에 태어났다. 조국이 없는 가난한 삶 속에서 언젠가 닥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본의 군사적 실력을 배우고 익혀 독립을 위한 힘을 키우려고 했던 분이다. 그런 시대를 이해해 줬으면 한다. 또한 아버지가 간도특설대로 임명받았던 시기는 1943년이다. 해방되기 2년 전으로 당시 그 지역에는 독립운동가가 없었다. 아버지는 당시 간도특설대에서 독립운동가가 아닌 중국 공산당과 싸웠다.”
Q : 백 장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이는 각별했던 것으로 안다. 이종찬 회장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하는 기념관은 반대한다’고 밝혔는데.
A : “아버지는 그 누구도 나쁘게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종찬 회장에 대한 반박이 아닌 제 의견을 말씀드리면,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닦은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다. 아버님은 군인으로서 당시 이 전 대통령을 참으로 높이 평가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와 상관없이 초대 대통령에 대한 기념관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배워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Q : 지난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당시 윤 대통령 부부와 오찬을 했는데, 백 장군에 관해 어떤 얘기를 나눴나.
A : “윤 대통령에게선 사심 없이 오로지 애국심만으로 나라를 운영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버지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백 장군과 같이 훌륭하신 분을 친일파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제복 입은 군인이 존경받는 나라가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의 말도 기억난다.”
Q : 백 장군 3주기를 맞아 백선엽기념재단이 출범했고, 지난달 경북 칠곡에선 백 장군 동상 제막식도 열렸다.
A : “아버지를 추대하고 동상을 만드는 것이 아버지만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6·25전쟁 당시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웅을 기억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매번 ‘진짜 영웅은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전장으로 나갔던 사병들’이라고 말씀하셨다.”
Q : 백 장군은 어떤 분이었나.
A : “아버지에게 평생 사랑만 받은 것을 보답하고 싶다. 전쟁 영웅으로서 아버지의 업적에 대한 연구도 이어가고 싶지만, 인도주의자로서 생명을 중시했던 아버지의 인품과 성정도 알리고 싶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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