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신용등급 강등' 피치 경고에도..."정치권 안바뀔 것"
최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신용평가사 피치는 그 배경으로 미 연방정부 재정적자 한도 증액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 갈등, 재정 악화, 국가채무 부담 등을 꼽았다. 하지만 정치권이 이러한 문제 해결에 나서기는커녕, 앞으로도 과도한 지출, 감세, 정쟁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현지시간) "피치의 미 신용등급 강등은 워싱턴의 기존 습관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 매체는 피치의 이번 결정이 오히려 미국의 당파적 논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 문제를 의미 있게 해결할 수 있는 정책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싱크탱크 초당적정책센터(BPC)의 샤이 아카바스 경제정책담당은 "의회에서 국가예산, 재정관련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 "재정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더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징후"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이번 강등의 책임을 전임인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에 돌리는 모습이다. 전날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전적으로 부당한 결정"이라며 피치의 정량평가 모델에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개선된 관련 지표들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케빈 무노스 바이든 대선 캠프 대변인 역시 이번 강등을 '트럼프 강등'으로 칭하며 "극단적 마가(MAGA) 공화당 어젠더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에 공화당 측은 민주당의 과도한 재정 지출이 경제를 궤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미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2007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22% 수준이었던 연방정부 부채규모는 2011년 76%, 올해 110%로 치솟았다. 국가부채 문제가 한해 GDP를 넘어설 정도로 심각해진 것이다.
특히 WSJ는 전체 연방지출의 약 3분의2를 차지하는 사회보장, 메디케어, 메디케이드 관련 비용이 인구 고령화에 따라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CBO는 사회보장지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3년 5.1%에서 2033년 6.0%로 높아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회보장기금 역시 2034년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의회 일각에서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 제도를 전면 개편하기 위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에게 제 3의 궤도로 남아있다는 것이 이 매체의 진단이다. 앞서 부채한도 관련 논의에서도 양당은 사회보장, 메디케어 부문을 건드리지 않았다. 관련 혜택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표심을 고려한 것이다. WSJ는 "정치권은 잠재적 재난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결국 의회가 조치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행정부에서 도입된 각종 감세 조치도 관건이다. 상당수의 감세제도가 2025년 일몰을 맞이한다. 하지만 피치는 앞서 등급 강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의회가 이들 감세제도를 연장해 세입을 줄이고 적자를 확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민주당에서 감세 폐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으나, 이 또한 공화당의 반대로 인해 가로막힐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상·하원을 장악했던 2021년에도 일부 감세 조치를 폐지하는 데 실패했다. 이밖에 바이든 행정부의 법인세율 인상 계획 등도 민주당 온건파에서 반대하며 무산된 상태다.
WSJ는 "낮은 신용등급은 근본적인 정치적 계산을 바꾸지 못한다"면서 "달러가 기축통화고 세계 금융시장이 미 국채에 의존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피치의 등급 강등은 정책입안자들에게 그다지 충격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의 마이클 스트레인 경제정책연구국장은 "미국은 정말 강력한 위치에 있고, 이는 투자자 측면에서 적절한 판단"이라면서 "이러한 (투자자들의) 판단이 정말 문제가 될, 정치권의 자만심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WSJ는 또 다른 기사를 통해서도 "피치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보장을 시작으로 국가의 장기적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의원들이 더 시간을 끌수록 미국인들은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WP) 역시 "백악관은 피치의 결정을 비판했지만, 강등에는 이유가 있다"면서 "재정 전망에 대해 AA+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평가일 수 있고, 정치권에 대한 경고여야 한다"고 짚었다.
뉴욕=조슬기나 특파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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