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클리셰가 그렇게 나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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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Cliche),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에 반전 없는 스토리,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 신선하지 않은 표현이 나올 때 주로 쓴다.
예문으로 "그 영화는 클리셰 범벅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대표적인 클리셰다" 등이 있겠다.
다만 콘텐츠 소비자들이 '안티 클리셰'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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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Cliche), 진부한 표현이나 고정관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에 반전 없는 스토리,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 신선하지 않은 표현이 나올 때 주로 쓴다. 예문으로 “그 영화는 클리셰 범벅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대표적인 클리셰다” 등이 있겠다. 클리셰는 본래 활자를 넣기 좋게 만든 연판을 의미하는 인쇄용어였다. 자주 쓰이는 단어를 그때그때 조판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만든 것이다. 클리셰는 ‘틀에 박힌 표현’이라는 우리 말과 비슷한 어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는 아니었던 것이다.
많은 창작자가 클리셰를 피하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뻔하다’ ‘식상하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은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비판이다. 이야기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고 싶어한다.
클리셰는 조롱당한다. 거의 백과사전 수준으로 정리된 클리셰 목록도 있다. 상황(주인공의 기억상실), 이야기의 구간(친구 대신 소개팅에 나갔다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는 도입부 또는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꿈이었다는 결말), 대사(“나다운 게 뭔데”) 등 카테고리별 클리셰가 존재한다.
전형적인 건 폄하의 대상이 돼야 할까.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멜로가 체질’ 등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은 올해 영화 ‘드림’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영화의 전개에 전형적인 부분이 있지만 전형적인 게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이유는 많이 썼기 때문이고, 많이 쓴 이유는 재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나쁜엄마’는 억울하게 죽은 남편과 유복자를 억척스럽게 키워낸 아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아들의 복수 등을 그렸다. 주연을 맡은 배우 라미란은 진부한 이야기라는 일부 비판에 대해 종영 인터뷰에서 “이야기에 집중이 되고 다음 부분이 이렇게 궁금한데, 진부하면 어떤가. 그런 거 하면 안 되는 건 아니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요즘은 오히려 역(逆)클리셰가 클리셰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누군가 죽어도 보는 사람들이 일단은 믿지 않는다. 죽은 줄 알았던 인물이 살아서 어디선가 나타나는 반전은 더 이상 반전이 아니게 됐다. 진부함을 피하기 위해 만든 설정들도 반복되면 새로운 클리셰가 된다. 어떤 것도 계속해서 신선할 순 없다. 지금 우리가 클리셰라고 치부하는 것들이 처음부터 클리셰였을까. 최근 열풍이 불었던 좀비물도 회귀물도 머지않아 식상해질지 모른다. 직장인의 하루 일과, 연인의 만남과 이별, 부모 자식 간의 애증…. 인간의 이야기는 들여다보면 대부분 클리셰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소재가 참신하더라도 보편성을 가지지 못한 이야기는 외면당한다.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클리셰를 바란다. 뭔가가 예상과 잘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기뻐하고 안도한다. 현실은 생각보다 바라는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전개도 결말도 뻔한 로맨틱 코미디물이 꾸준히 사랑받는 건 결국은 해피엔딩이라는 ‘아는 맛’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범죄도시’ 시리즈에 기대하는 건 반전이 아니다. 어떤 빌런과 대적하더라도 끝내는 혼쭐을 내고 마는 주인공 마석도다.
식상하기만 한 창작물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창작자를 두둔하려고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다만 콘텐츠 소비자들이 ‘안티 클리셰’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은 재료를 쓰더라도 조리법에 따라 다른 요리가 된다. 조리법과 그 결과의 미묘한 차이에 집중해보는 것도 콘텐츠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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