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카레를 끓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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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는 그리움의 음식이다.
카레의 황금빛은 시간을 뭉근하게 녹여낸 금이다.
우울할 때, 나는 카레를 만들곤 했다.
카레는 분리가 아니라 조화를, 생성보다 찬찬한 소멸을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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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는 그리움의 음식이다. 카레의 황금빛은 시간을 뭉근하게 녹여낸 금이다. 당근, 양파, 감자, 브로콜리. 갖가지 재료가 시간을 함께 견디는 것처럼, 부드럽게 허물어져 맛의 공동체를 이룬다. 오래 끓일수록 풍부하고 깊은 맛의 하모니. 다음 날, 한 번 더 끓인 카레가 맛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우울할 때, 나는 카레를 만들곤 했다. 당근을 썰고, 양파와 버섯을 볶고, 조그만 나무 같은 브로콜리를 손질했다. 재료를 썰고, 볶고, 뭉근히 끓이는 동작. 무심한 행위에 집중하다 보면, 그늘졌던 기분도 서서히 갰다. 카레는 분리가 아니라 조화를, 생성보다 찬찬한 소멸을 보여주는 음식이었다. 보글보글 카레가 끓는 소리를 들으면, 뾰족하게 날이 섰던 마음도 부드럽게 누그러졌다.
작년 겨울, 반려묘 배호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에도, 가끔 카레를 만들었다. 그때 나는 갑자기 닥친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자꾸만 ‘보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보고 싶다’라는 말은 참 먼 말이었다. 볼 수 없다는 말은, 다시는 만질 수 없다는 말과 같았다. 조그만 유골함을 두 손으로 감쌌다. 등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리는 무력한 슬픔을 느꼈다. 그 슬픔이 무거워 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복병처럼 찾아오던 격렬한 슬픔은 잦아들었으나, 그리움의 농도는 시간이 갈수록 진해졌다. 오래 익힌 채소에서 우러나오는 감칠맛처럼 은은하고 눅진한 그리움이었다. 카레를 끓이며 속으로 물어보았다. “배호야. 무지개다리, 잘 건너갔니? 보고 싶고 만지고 싶다. 거기서는 부디 아프지 마.”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라는 표현은 누가 생각했을까. 이 얼마나 둥글고, 아득하고 환한 표현인가. 그러고 보니 카레 안에 ‘무지개’ 색이 다 들어있다. 피망은 빨강, 당근은 주황, 가지는 보라, 노랑은 황금빛 페이스트. 카레를 한 스푼 떠먹는다. 몸이 따뜻해진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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