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AI는 나의 미래를 모른다
과거는 스마트폰 속에 있지만
내 미래는 '생각' 속에 있다
모임에 갔다가 ‘4차 산업 시대의 인간다움’이라는 강의를 듣게 됐다. 중간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설렁설렁 듣다가 미국 뉴욕에선 커플의 50% 이상이 데이팅 앱 등 인터넷 추천으로 이성을 만난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나는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를 지향하는 터라 소개팅도 내키지 않는데, 앱으로 이성을 만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다니. 찾아보니 2022년 전 세계 데이팅 앱 사용시간은 100억 시간이 넘는다. 사람들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의 매칭에 따라 만남을 시작한다.
쇼핑 앱은 더 많이 사용한다. 1080억 시간이었다. 나 역시 데이팅 앱은 안 써도 쇼핑은 대부분 스마트폰으로 해결한다. 옷이나 화장품, 책, 식료품 등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해외 제품까지 검색해서 뭐든 살 수 있다. 쇼핑 앱은 영리한 점원처럼 내가 지난번에 산 것을 기억하고, 좋아할 만한 것을 추천해 준다. 얼마 더 사면 배송료가 무료인지, 나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사는지도 알려준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챗GPT는 놀랍고 재밌었다.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던 방식과는 확실히 달랐다.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라고 물으면 여러 방법과 함께 학습 자료들을 보여준다. “이건 나한테 너무 어려워”라고 하면 격려와 함께 대안을 마련해 준다. 모르는 게 없는 비서처럼 대화를 통해 적절한 도움을 준다. 굳이 책을 읽거나 직접 가보지 않아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서비스, 빅데이터, AI 같은 기술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들은 나를 지켜보며, 내가 말해주지 않은 것들까지 알고 있다. 왠지 우주 고아처럼 외롭고 두려워진다. 나 같은 아날로그형 인간이 새로운 시대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요즘 식당에 가면 함께 와서 각자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늘어날수록 일상의 대화는 사라진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스마트폰 속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와 대화를 나누다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진짜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014년에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땐 언젠가 저런 미래가 올까 싶었는데, 챗GPT와 함께 현실로 다가왔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클라라와 태양’에서 클라라는 인간과 유사한 외형까지 갖춘 인공지능 로봇이다. 같이 사는 사람들은 그가 로봇이라는 사실조차 잊곤 한다.
AI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학습하고 도와주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래도 AI는 화내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그사이 우린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인내하는 법을 잊는다. AI는 나와 교육과 소득 수준이 비슷하고, 지역이나 정치적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을 잘 찾아내 매칭해 줄 것이다. 내가 가보고 좋다고 별점을 준 곳들을 기억했다가 추천해 주는 곳들은 분명 내 맘에 들 것이다. 기술은 분명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준다. 하지만 거의 모든 앱의 알고리즘은 결국 우리의 정보를 가져가고 시간과 돈을 쓰게 한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친구도 시간도 돈도 남지 않았다는 씁쓸한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가장 치명적인 사실은 나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AI도 내가 되고 싶은 미래의 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AI는 과거에 기반해 나의 미래를 제안한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더 새롭고 멋진 미래를 만나고 싶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해의 폭을 넓히는 방식으로, 더 넓은 세계로 가보고 싶다. 나의 과거는 스마트폰 속에 있지만 나의 미래는 내 ‘생각’ 속에 있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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