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일상의 자기검열

2023. 8. 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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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자유와 인권의 형식적 기준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나름의 진보를 이루었다.

일상의 자기검열이 퍼지는 것의 이면에는 혐오와 편가르기의 어법이 확산하는 정반대 현상이 있다.

이쯤 되면 상대하기 귀찮아서 시작된 일상의 자기검열은 공포에 기반한 진짜 자기검열로 변하기 시작한다.

일상의 자기검열, 혐오와 편가르기, 권력자의 막말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 전체뿐 아니라 교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조직에 중대한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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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언론 자유와 인권의 형식적 기준으로 볼 때 우리 사회는 나름의 진보를 이루었다. 술자리에서 대통령 욕을 하다 잡혀가는 시절이 있었지만, 대통령 욕하기가 국민 스포츠라 하던 때도 경험했다. 음담패설과 장애인 비하가 아무 문제가 안 되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이었는데, 이제는 적어도 공석에서는 그런 발언을 주의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러나 잠시 긴장을 늦추면 말실수를 하는 것처럼 민주주의는 신경써서 지키지 않으면 금방 망가지는 섬세한 제도다. 상당한 진보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민주 사회를 이루려면 갈 길은 멀고, 최근에는 더 후퇴한 듯하다.

지난 10여년 동안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일상의 자기검열이 심해졌다. 나름대로 점잖고 괜한 마찰을 싫어하는 사람은 특정한 주제에 대해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할 말을 다 하지 않는 자제력은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덕이요 지혜인데 비해, 말하면 피곤해지니 그냥 입을 다무는 것은 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의 민주주의를 죽인다. 치열하고도 우호적인 토론과 소통 대신 차라리 적과 동침하겠다는 심정으로 표면적 평화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일상의 자기검열이 퍼지는 것의 이면에는 혐오와 편가르기의 어법이 확산하는 정반대 현상이 있다. 이들은 자기 입장을 강고히 정하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가차 없이 공격한다. 이런 분위기는 정치에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엄격하게 나누고, 실수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는 일이 늘고 있다. 조금 알려진 사람이 SNS에서 한마디 말을 잘못하면 그것이 본의이건 실수이건 사회적 매장을 피하기 힘들다. 물론 책임 있는 언사가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는 결국 귀찮아서라도 입을 다물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권력자들의 여과 없는 막말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방송통신위원장에 지명된 이동관씨는 기성 언론 중 일부가 “공산당 기관지 같다”고 했다. 대통령실의 관계자는 최근 수면 위로 드러난 교권 침해와 수해 피해 등이 모두 지난 종북 주사파 정권의 ‘대한민국 붕괴 시나리오’의 결과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정을 운영했던 정부와 수십 년 된 언론사가 적국의 편이 돼 나라를 붕괴시키려 했다는 주장은 수준이 낮을 뿐 아니라 국민을 무시하는 음모론이다. 그러나 이런 무도함의 진짜 문제는 이런 언사가 내포하는 반대자에 대한 협박이다. 이쯤 되면 상대하기 귀찮아서 시작된 일상의 자기검열은 공포에 기반한 진짜 자기검열로 변하기 시작한다.

일상의 자기검열, 혐오와 편가르기, 권력자의 막말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 전체뿐 아니라 교회를 비롯한 크고 작은 조직에 중대한 경고다. 한 사회의 건강과 자유, 민주적 역량은 적절하고 바람직한 대화의 순간이 아니라 지나치거나 용감하거나 무도한 발화와 그에 대한 침묵의 순간에 드러난다. 특히 언론의 자유는 권력자가 아니라 약자의 눈이 기준이 된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참다못해 한마디 할 때 느끼는 위험이 얼마나 실질적인지, 남의 막말에 불쾌감을 표시할 수 있는지 등을 보면 그가 속한 사회와 조직을 평가할 수 있다.

실세 장관이 국민의 대표 앞에서도 할 말은 하는 용기를 마음껏 발휘하고 극우적 언행을 일삼던 이들이 중용되는 사이에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시민이 늘어난다. 하나님의 통치를 사람의 독재로 은근슬쩍 바꾸는 신성모독이 판치는 와중에 조용히 교회를 떠나는 교인도 많다. 소란하지 않아서 좋다고 생각하면 큰일이다. 그 조용함이 민주주의가 병들었다는 증거다.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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