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떤 공동체질서를 원하는가?
얼마 전 시민들에게 얻어맞는 경찰과 공무원들의 숫자가 매년 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자주 있었다. 요즘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얻어맞고 모욕당하는 교사들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지난 6년간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교원 폭행·상해는 1249건에 이르며, 매년 늘어 지난 해에는 6년 전에 비해 3배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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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교육이 미래의 한국을 결정
자유·평등·권위·공동체 질서 놓고
깊은 논의와 인식의 공유 있어야
그 바탕 위에서 공교육 문제 접근을
」
지난 30여년 한국의 민주주의는 크게 발전하였다. 개인의 인권, 표현과 집회의 자유, 정당의 활동, 국회의 역할 면에서 특히 그랬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유, 평등, 인권, 공동체 질서라는 개념에 대해 충분히 토의하고 인식을 나눠왔는지 되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민주화를 독립운동처럼 당위성을 가지고 추구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그 민주주의가 무엇이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깊이 나누지 않았다. 필자는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근무하면서 1970~80년대 우리의 민주화투사들이 추구하던 민주주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자주 한 적이 있다. 그분들이 머리 속에 그리고 있던 국가지배구조, 사회질서, 공동체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했던 적이 많았다. 그 시대를 이끌었던 두 분의 정치지도자와 그 시대 치열하게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인권변호사 두 분이 이미 대통령을 지냈으며, 오늘날 민주화투사들은 독립투사 못지 않은 명예와 위치를 우리사회에서 점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모습과 공동체 질서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민주주의는 모든 것의 답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 효율과 형평, 국가와 개인의 권한과 책임 문제를 어떻게 조화시키는가에 대한 인류공동체의 오랜 과제를 여전히 풀어가야 하는 제도이다. 이들에 대한 분명한 정의는 없다. 서구에서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계몽주의 운동을 통해 이에 대한 치열한 논쟁과 때로는 혁명을 거치면서 인권, 자유, 평등에 대한 의식이 보편적 이념으로 자리잡았고, 이는 민주화를 이끌어 낸 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 개념에 대한 인식과 접근 방식은 나라마다 사회적 전통, 역사적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며 그들이 형성한 공동체질서 역시 다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내생적이라 할 수 없다. 서구로부터 이식된 제도다. 이 제도에 대한 소화불량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사회의 깊은 혼돈과 분열적 증세로 나타나고 있다. 제도는 그것이 정립하게 되는 규범, 전통, 관례가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은 다수의 공동체 구성원들이 행복하고, 잘살자고 하는 것이다. 서구가 2세기에 걸쳐 이어온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들의 제도를 그대로 이식한 우리사회는 이제라도 개인의 권리, 자유, 평등, 질서, 관용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와 성찰, 인식을 확립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권위주의를 배격하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부여한 권위를 존중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안정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다. 학생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교사와 교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들의 추천서가 외면당하는 사회다.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크다. 학생의 인권은 무엇이고 차별이란 무엇인가? 학부모나 학생이 교사에게 반드시 존중해야 할 영역은 무엇이며 교사가 지켜야 할 학생의 자유영역은 무엇인가에 대한 공동체규범을 이번 기회에 세워 나갔으면 좋겠다. 영국의 사립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의 성적에 따라 학교에서 매는 넥타이 색깔이 다르다. 그것이 꼭 차별이라 할 수 없다. 노력과 성취에 대한 인정이며 다른 학생들에게 분발하라는 독려이기도 하다. 그것을 피한다고 개인이 발전하고 보다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삶이란 어차피 경쟁의 연속이며, 교육은 어떻게 경쟁하고 협력해야 할 것인가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윤리와 규범을 익히게 하는 것이다. 어떤 개인이든 늘 승리할 수만은 없고, 정당하게 패배했을 때 그것을 수용할 줄 알고 다시 분발해 승리할 수 있는 기개를 키워주는 것이 교육이다.
대한민국이 가진 자원이 무엇인가? 사람 밖에 없지 않은가? 성장과 선진화를 외치면서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 오늘날의 모습처럼 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이야기 아닌가? 경제도, 정치도, 문화도, 외교안보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오늘 우리가 어떤 사람을 키우는가가 바로 미래 한국의 모습이다. 오늘날 한국의 공교육은 무너지고 학부모들은 이를 사교육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사설학원은 인성을 키우고, 공동체 질서를 가르쳐 주는 곳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과 학부모들은 우리 교육이 어떤 사람들을 양성할 것인지에 대해, 입시와 취업 경쟁에 있어 어떤 것이 평등이며, 차별이며, 교사들에 대해 어떤 역할과 권위를 존중해야 할지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진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 바탕이 서야 비로소 입시제도, 교권, 학생인권 문제를 제대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조윤제 서강대 명예교수·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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