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영원한 갑’ LH와 국토부 ‘전관’

2023. 8. 4. 01: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한양대 특임교수

아파트 지하주차장 부실공사에 대해 급기야 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지난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이후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 조사했더니 무려 15개 단지에서 철근 누락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물량 절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손가락 길이만 한 전단보강 철근을 이토록 집단으로 왜 빼먹었을까 의문이 든다. 단지 일회성 실수로 볼만한 비율이 아니다.

두 가지 추론을 해본다. 첫째,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철근을 시공 과정에서 고의로 누락했을 가능성이다. 보(梁)나 슬래브 등 가로 방향 부재는 무게에 의해 두 가지 힘이 작용한다. 중간이 아래로 휘어지며 부러지려는 힘은 부재 하단에 인장력을 발생시키고, 이에 맞서 인장철근이 수평으로 놓인다. 양쪽 기둥 부에 대해 중심부는 내려오려 하니 상하로 엇갈려 끊어지려는 힘도 생기는데 이를 전단력(剪斷力)이라 한다. 작두의 원리와 같다. 이에 저항하는 철근은 수직으로 놓인다.

「 철근 빼먹은 아파트 잇단 사고
고의적 누락, 집단적 묵인 의심
시공·감리 부실 고리 걷어내야

시론

이번에 문제가 된 지하주차장은 무량판 슬래브로 지어졌다. 보가 없으니 층고를 줄여 굴토 양을 절감하는 장점이 있다. 반면 기둥 주위에는 원형으로 ‘뚫림 전단력’이 생긴다. 펀치처럼 기둥이 슬래브를 뚫는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도 시작은 이것이었다. 최상층 슬래브가 뚫려 다음 층을 연쇄적으로 가격하는 ‘팬케이크 현상’으로 단 8초 만에 무너졌다.

이에 대응해 기둥 주변에는 수직으로 철근을 넣는데 가늘고 짧지만 필수적이다. 공식 발표조차 이를 위아래 주철근을 묶어주는 용도라 잘못 표현했는데, 현장 배근공이 하찮게 여겨 빼먹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둘째, 설계부터 시공에 이르는 전 과정의 관련자들이 갈등의 최소화를 위해 비판적 사고를 멈추는 집단사고에 빠졌을 가능성이다. 이번 사고의 경우 발주자인 LH, 시공자인 GS건설, 이외에도 많은 설계 및 감리자가 있었지만, 서로를 과도하게 신뢰(?)한 나머지 집단적 맹점이 생겼으리라는 추론이다.

철근 누락을 발견할 기회는 수없이 많았다. 설령 구조계산에서 철근이 빠졌더라도 실시설계, 현장도면 제작, 도면 검수, 현장 감독, 감리 과정에서 누구라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적 없이 넘어갔다는 것은 모두가 의도적으로 눈을 감았다는 의미다.

집단사고에 의한 대표적 참사가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고다. 발사 73초 만에 폭발한 원인은 연료탱크 이음매 밀봉재가 저온에서 깨져서다. 이 문제를 줄곧 제기한 사람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왕따당했고, 다른 모든 엔지니어는 사고 발생이 없을 것으로 ‘합의’했다. 그런데도 대통령 일정에 맞춰 추운 날씨에 발사를 강행해 참사가 터졌다.

‘순살 아파트’라는 비아냥을 듣는 GS건설은 주가가 폭락했지만, 군말 없이 사고 열흘 만에 설계사와 함께 사과했다. 발주자, 감독자, 기본설계 제공자인 LH와 감리자들 대신에 설계와 시공사가 ‘독박’을 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영원한 갑’인 LH와 국토교통부 ‘전관’이 즐비한 감리 회사들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결국 이런 먹이 사슬은 7명의 우주비행사의 목숨을 앗아간 NASA 조직 못지않은 응집력 있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무지해 고의로 누락했든, 신뢰가 넘쳐 눈을 감았든 이번 사고는 대한민국 건설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국내 건설 대기업의 주업은 건설이 아니라 개발이다. 있어 보이는 브랜드와 모 그룹의 자금력으로 아파트를 짓거나 이번처럼 LH의 ‘꿀 도급’을 받는다. 그러나 정작 시공은 하청·재하청 몫이다. 현장에서 실제로 배근하는 근로자가 누군지, 철근은 제대로인지 알 도리가 없는 구조다.

감리도 마찬가지다. 전체 700곳 중 30곳에서 철근이 누락됐다는 것은 현장에서 일일이 점검해야 할 감리자가 사무실에서 있었다는 의미다. 광주광역시 학동 HDC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 사고 때 감리자는 현장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규제만 많이 만들면 뭐하나. 국내총생산(GDP)의 4.9%를 차지하는 건설업의 산재 사망 비율은 53%다. 대한민국 국격에 어울리는 건설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한양대 특임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