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지우기'로 생긴 역사의 공백을 채우고 싶었다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이승만 소재 대하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 펴낸 복거일
소설가 복거일(77). 2016년부터 7년에 걸쳐 '월간중앙'에 이승만을 소재로 연재해온 대하 전기소설을 최근 『물로 씌어진 이름』(백년동안)으로 발간했다. 지난 2015년 4월 벚꽃 흩날리던 묘소를 참배하며 이승만과 그의 시대를 조명하는 소설을 쓰겠다던 약속을 8년 만에 실천한 셈이다. 『물로 씌어진 이름』은 2012년 암 선고 이후 항암 치료를 마다하며 쓴 작품이다. '광복'을 큰 주제로 이번에 출간한 1부 다섯 권에 이어 2부(건국)와 3부(호국)를 합쳐 다섯 권으로 쓰는 작업도 시작했다. 그는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커지는 암세포도 꺾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
「 항암 치료 마다하며 7년간 집필
내면풍경보다 시대 묘사에 집중
"한·일 수교 실기, 3선 개헌 오점
그래도 공이 과를 압도하는 인물
이승만의 삶은 역사를 보는 창
우남 외면하면 정체성 망각돼"
」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미드웨이 해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히틀러 정권의 아우슈비츠 대학살, 스페인 내전,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 소련의 대미 공작, 얄타회담 등 세계사를 종횡으로 넘나들면서 '급진적 혁명가' 이승만의 고뇌와 선택을 그려냈다. '역사를 보는 창'으로 표현된 이승만의 전기소설이라지만, 역사 다큐멘터리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복 작가는 "없는 것을 보태지 않아서 소설답지 않은 소설을 썼다"며 겸손해했다.
너무 쉽게 잊힌 업적을 비유한 제목
-출간까지 장장 7년 세월이 걸렸다.
"2012년 봄에 간암 판정을 받으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이미 상당히 진행돼 치료가 쉽지 않을 것 같아 항암 치료 없이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병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힘이 달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오히려 집중이 더 잘 됐다. 허허."
-묘소에 책을 바치며 마음속으로 건넨 말이 있을 것 같다.
"시대와 세상을 앞서간 위대한 지식인의 내면 풍경을 그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남은 수수께끼로 남은 위인이다. 다만 이전에 알던 것보다 업적이 훨씬 위대하다는 사실을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는 고백의 말씀을 드렸다."
-현대사 인물 중에 이승만을 유독 주목한 계기는.
"원로 언론인 이도형(1933~2020, 전 한국논단 대표) 선생께서 권했는데 처음엔 사양했다. 사학자들은 가볍게 여기고 문학가들은 주류에서 벗어난다고 여기는 것이 역사소설이다. 쓰기는 힘들고 문학적 보답은 적다는 이유에서 내키지 않았다. 그러자 정색하시며 '지금 이 나라에서 이승만 소설 쓸 사람이 복 선생 말고 누가 또 있소'라며 자극을 주셨다."
제1권 제1장 첫 부분과 저자가 쓴 작품 해제('역사를 보는 창')를 보면 책 제목을 『물로 씌어진 이름』으로 지은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시인 존 키츠의 자작 묘비명에 '여기 누워 있다/그의 이름이 물로 씌어진 사람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경구('사람들의 나쁜 행태는 청동에 새겨져 남는다. 그들의 덕행을 우리는 물로 쓴다')에 나오듯 이 대통령의 업적은 물로 쓴 것처럼 쉽게 잊히고, 일부 허물만 지나치게 부각된 현실을 책 제목으로 꼬집은 것이다.
'이화장 문서'가 고증에 큰 도움
-역사 고증에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우남은 사소한 영수증까지 기록을 많이 남겼는데, 전집으로 출간된 ‘이화장 문서’가 큰 도움이 됐다. 10만 장이 넘는 이화장 문서 분류와 고증은 얼마 전에 별세한 유영익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가 주도했다. 과격한 주장을 하면 추앙받는 나라에서 명분론보다 현실론을 중시한 유 교수 덕분에 우남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할 수 있었다. 1945년 우남이 얄타회담 밀약(미국과 영국이 조선을 궁극적으로 러시아에 넘기겠다는 내용)을 폭로해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았는데, 이번에 이화장 문서를 뒤지다 우남에게 제보했던 실존 인물을 확인했다. 당초 추정된 에밀 구베로라는 인물이 미국의 실존 언론인 에밀 헨리 고브로(1891~1956)란 사실을 최초로 규명했다."
-이 대통령의 어떤 면을 집중 조명하려 했나.
"우남은 구한말 만민공동회 시절(1897~1899)부터 1960년 물러날 때까지 역사의 중심인물이었다. 그 사실을 외면하면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승만이라는 인물을 역사에서 지우려 애쓰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역사의 공백을 조금이라도 채우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그분을 홀대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이고 부끄러움이다. 그에 관한 사실이 더 많이 알려지면 공정한 평가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1부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대목은.
"얄타회담에 얽힌 이야기들이 핵심이다. 현대사의 가장 큰 수수께끼는 ‘나치 독일에 패배할 뻔했던 러시아가 어떻게 2차대전 뒤 유라시아의 태반을 차지했나’하는 것이다.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가장 보람이었다."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1954년의 '사사오입' 3선 개헌을 빼면 뚜렷한 잘못이 별로 안 보인다. 4·19혁명이 일어나자 변명 없이 본인이 모두 책임지고 물러났다. 얄타회담에서 비밀 협약이 있었다고 폭로해 당시 미국 국무부의 부인하는 성명을 끌어낸 일이 가장 큰 업적이고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게 중대한 판단의 근거를 밝혀내는 것이 이번 작품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한·일관계 정상화 늦어 아쉬움도
-5권 말미의 '해제'에서 우남의 실기와 허물도 지적했던데.
"우남이 1951년 한·일 국교 정상화 시작은 잘했다.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한·일 관계는 1950년대 중반에 정상화됐을 것이고, 박정희 정부 때인 1965년의 한·일 협정보다 한국에 유리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쉽게도 실기했다. 제헌의회 선거에 이어 1950년 5월 2대 총선도 민주적으로 치르면서 건국이 사실상 완성됐지만, 6·25전쟁으로 의미가 퇴색했다. 1953년 가을 무렵 우남이 생전에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다 이뤘는데,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욕심내는 바람에 자신이 주도해 세운 대한민국의 기초와 스스로의 업적을 허물었으니 통탄할 일이다."
-독립·건국·호국에 성공했으나 분단이란 숙제도 남겼다.
"자유민주주의와 전체주의 정권은 타협이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는 북한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든 공산주의자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침투하려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이승만 라인'으로 독도를 사수한 이 대통령이 일각에서는 친일파라고 매도당한다.
"친일파 몰이는 근거가 없다. 의도적으로 유포된 결과다. 1945년 해방 직후 한반도에 상륙할 때부터 미군정청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에 대응하기 위해 조선총독부 경찰 조직을 거의 그대로 활용했다. 1948년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는 미군정청이 물려준 경찰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을 헐뜯는 세력은 그런 상황을 친일파 득세로 몰아 비난해왔다."
이승만기념관, 자녀 교육의 장 됐으면
-이승만의 공훈을 압축하면.
"대한제국이 러일 전쟁에 휘말려 풍전등화이던 1904년 11월 이승만은 미국의 도움을 구하라는 민영환·한규설의 지시로 제물포(인천)에서 기선을 타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당시엔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수십 년 각고의 노력 끝에 1953년 대통령으로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연설했다. 1904년에 받는 사명을 50년 만에 완수하면서 그의 삶은 정점을 찍었다."
-이승만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황식 전 총리)가 활동을 시작했다.
"그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많은 시민이, 특히 조부모가 손자녀의 손을 잡고 함께 가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졌는지 보고 배우는 공간으로 만들기 바란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기념관과 링컨 기념관처럼 억지로 주입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느껴서 스며들도록 하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은.
"1부를 쓰는 데 7년이 걸렸고 다시 2, 3부를 합쳐 7년을 예상한다. 그때까지 살 자신은 없지만…(웃음). 2017년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희곡 『박정희의 길』을 썼다.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근근이 공연했는데, 이제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으니 좀 나은 공연을 시도해볼 생각이다."
◇복거일=1946년 충남 아산 출생. 부친은 남로당 당원이었다. 대전상고,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한국과학연구원 부설 선박연구소 연구개발실장을 역임했다. 문화미래포럼 대표로서 우파 논객이자 사회평론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작품으로는 데뷔작 『비명을 찾아서』 외에 『역사 속의 나그네』『파란 달 아래』『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한국의 자유주의』『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프란체스카』 등이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서현역 피해자 도운 18세 학생 "지혈하는데 칼부림범 달려왔다" [영상] | 중앙일보
- "치욕" 운운 3억 다 챙긴 김은경..."그런 文알박기 100명 더 있다" | 중앙일보
- 삼전 바닥 맞힌 애널리스트 “주가 더 간다, 지금 담아라” | 중앙일보
- 녹취 들은 전문가 "주호민 억울할 것…사과할 사람은 아내" | 중앙일보
- "진짜 천송이 같네"…맨시티 홀란 사인 받고 소리친 전지현 | 중앙일보
- 그 식당 한국말은 "없어요"뿐…전세계 이런 차이나타운 없다 | 중앙일보
- '일본판 주민등록증' 18만원 준다는데…기시다 최저 지지율, 왜 | 중앙일보
- 선글라스·후드티로 가리고…도망가는 사람들 쫒아 칼 휘둘렀다 | 중앙일보
- 오리역 이어 잠실역까지…온라인서 기승 부리는 '살인예고글' | 중앙일보
- 캠핑 바비큐에 스릴만점 루지…한여름 스키장, 의외의 놀거리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