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수십만 젊은이 몰려온다…프랑스 '떼제 공동체' 어떻길래 [백성호의 현문우답]
프랑스 동부의 작은 시골 마을 떼제에는 ‘떼제(Taize) 공동체’가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 등 교파를 초월한 초교파 수도공동체다. 그래서 떼제 공동체에는 가톨릭 수사도 있고, 개신교 목사도 있다. 그들 사이의 반목도 없다.
떼제 공동체에는 특유의 기도와 묵상이 있다. 사람들은 그걸 ‘떼제의 기도’ 혹은 ‘떼제의 노래’라고 부른다. 떼제의 노래는 울림과 메시지가 깃든 짧은 구절을 계속 반복해서 부르는 식이다. 반복해서 부르다 보면 노래는 저절로 묵상이 되고, 묵상은 저절로 기도가 된다.
지구촌 청년들이 여기에 열광한다. 특히 여름에는 매주 5000명씩 세계 곳곳에서 청년들이 떼제 공동체를 찾아온다. 매년 70~80개국에서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 정도다.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다. 불교를 비롯한 기타 종교들도 ‘종교의 미래’를 걱정한다. 성직자 수는 줄어들고, 교인 수도 줄어든다. 성직자와 교인의 평균 연령은 갈수록 높아만 간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젊은이들이 과연 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 20년, 30년, 40년 후에도 과연 종교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있을까.
이러한 우려에 떼제 공동체는 나름대로 답을 한다. 그래서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도 종단 차원에서 스님들이 프랑스 떼제 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종교의 미래에 대한 큰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 내 안으로!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에 떼제 공동체가 있다. 프랑스 떼제 공동체에서 파견한 외국인 수사들이 여럿 살고 있다. 큼지막한 간판도 없다. 그저 출입문 옆에 ‘떼제’라고 적힌, 나무로 된 작고 낡은 팻말이 있을 뿐이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아름답다. 이 작은 팻말이 떼제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거기서 안토니 수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귀화한 그의 한국 이름은 안선재다. 영국 출신인 그는 옥스퍼드대에서 중세 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 유학을 갔다가 그만, 떼제에 반해 수사가 됐다. 궁금했다. 떼제의 매력이 어느 정도였을까. 요즘도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떼제의 기도, 떼제의 묵상, 떼제의 노래에는 과연 어떤 포인트가 있는 걸까.
안토니 수사는 기도할 때 가장 아름다운 대목은 침묵이라고 했다. 침묵이라고 해서 너무 거창하거나,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침묵이 꼭 생각하는 침묵은 아닙니다. 그냥 침묵해도 됩니다. 침묵 중에 주님 품에 쉴 수도 있고, 침묵하는 동안 주님께 모든 걸 맡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말보다 침묵 속에서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더 하나 되는 겁니다.”
떼제의 침묵은 그저 말이 없는 정적의 시간을 일컫는 게 아니다. 그건 하나 되고자 하는 시간이다. 그 침묵 사이에 나를 내려놓을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를 온전히 맡길 수도 있다. 떼제의 기도는 소박하고, 떼제의 침묵은 정갈하다. 게다가 이 둘은 그리스도교의 수도(修道)를 정면으로 관통한다.
그래서 떼제 공동체는 수도 공동체다. 지구촌 젊은이들이 왜 떼제에 열광하는 걸까. 단지 떼제의 노래가 세련되고, 기도의 형식이 유려해서일까. 아니다. 떼제 공동체 자체가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추구하는 영성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도도, 그들의 노래도, 그들의 침묵도 하나같이 그리스도교의 심장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토니 수사는 이렇게 말했다. “떼제 노래는 아름답고 조용합니다. 그렇다고 노래할 때 센티멘털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내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센티멘털은 진짜가 아닙니다. 감상적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합니다. 그렇게 노래나 기도를 통해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겁니다.”
#떼제의 기도, 떼제의 정신
프랑스 떼제 공동체는 1940년에 창설됐다. 개신교 출신의 로제 수사가 세웠다. 처음부터 장로교, 루터교, 성공회, 가톨릭 등이 모이는 초교파 수도공동체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치하에서는 유대인들을 숨겨 주었다. 해방 후에는 복수의 공포에 떨고 있던 독일군 포로들을 초청해 따듯한 식사를 나누어주었다. 떼제의 사랑이 진영이 아니라 인간을 향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정치권의 2중대를 자처하는 한국의 일부 종교인 단체와는 퍽 다른 모습이다.
로제 수사는 2005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떼제 공동체 교회에서는 기도가 있었다. 로제 수사는 맨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한 루마니아 여성이 다가와 칼로 그의 목을 찔렀다. 수사 몇 명이 로제 수사를 업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남아 있던 수사들은 평소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를 계속했다.
다만 기도의 제목이 달랐다. 안토니 수사는 “저도 그때 현장에 있었다. 그때 우리는 ‘주님, 저 여성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라고 말했다. 로제 수사는 현장에서 즉사하다시피 했다. 나중에 가해 여성은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쉽지 않은 일이다. “원수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 그걸 실천하는 일 말이다. 그게 왜 가능했을까. 지구촌 젊은이들은 왜 떼제공동체에 열광하는 걸까. 그 이유가 중요하다. 떼제공동체가 종교의 본질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들 걱정한다. 50년, 100년 후에 종교가 세상에 남아 있을까. 사람들은 계속 종교를 찾게 될까. 떼제 공동체가 그 첫 단추를 제시한다. 자신의 존재 이유, 다시 말해 종교의 본질에 충실하라! 왜 그럴까. 종교의 본질이 결국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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