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중국 ‘나찰해시’ 신드롬…욕 없이 욕 하기
온 중국이 10여년 만에 컴백한 중견 가수의 노래에 열광하고 있다. 고음에 허스키한 음색은 중국판 윤도현에 가깝고 민요풍의 곡조는 뽕짝 스타 이박사에 견줄 다오랑(刀郎·52, 본명 뤄린·羅林)이 주인공이다. 지난달 19일 발표한 신곡 ‘나찰해시(羅剎海市)’가 열흘 만에 조회 수 80억 건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인기 비결은 가사에 담긴 해학이다. 데뷔 초기 다오랑을 왕따시켰던 가요계 거물을 향한 풍자부터 일그러진 사회의 부조리를 비웃는 내용까지 여러 해석이 가능하다. 저급한 말을 입에 담지 않고서도 욕을 하는 새로운 경지라는 평가도 나왔다.
신곡 ‘나찰해시’는 앨범 ‘산가요재(山歌寥哉)’의 타이틀곡이다. 요재(寥哉)는 청(淸)나라 소설가 포송령(蒲松齡, 1640~1715)의 소설집 『요재지이(聊齋志異)』의 동음이의어다. 한국에서 1980년대 말 흥행했던 영화 ‘천녀유혼’이 『요재지이』 속 단편 ‘섭소천(聶小倩)’을 원작으로 했다.
소설 ‘나찰해시’는 준수한 마기(馬驥)가 폭풍을 만나 도착한 나찰국이 배경이다. 학문이나 능력이 아닌 못생긴 정도에 따라 높은 벼슬을 주는 추함을 아름답다 여기는 흑백이 뒤집힌 나라다. 넘버2 승상은 콧구멍 세 개의 추남이고, 정상 외모인 사람은 도시 밖 산속에 버려진다. 잘생긴 마기는 석탄을 칠해 추하게 분장하고서야 대접을 받는다.
노래 가사는 언어유희와 풍자가 넘친다. “그 마호는 자기가 당나귀인지 모른다. 그 우조는 자기가 닭인지 모른다.” 마호(馬戶)는 당나귀 려(馿·驢)를, 우조(又鳥)는 닭 계(鸡·鷄)를 쪼갠 파자(破字)로 가사를 썼다. “붉은 날개와 검은 깃털, 푸른 닭 볏에 발에는 금테 두른 닭. 하지만 석탄 칠한 알에서 태어난 것들은 본디 시커멓다. 아무리 씻어도 더러울 뿐.” 얼마 전 학교 급식에서 나온 쥐를 오리라 우겼듯 거짓과 허영이 가득한 사회 부조리를 해학으로 비웃는 대목에 중국인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대학교수들도 경쟁하듯 갖은 해석을 붙이며 ‘나찰해시’ 신드롬을 돕는다. 심지어 집권 민주당의 심벌이 당나귀라며 실제는 미국을 비난한 노래라는 풀이까지 등장했다.
다오랑은 서양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까지 가사에 등장시키며 풍자를 인류로 확장한다. “마호와 우조는 우리 인류의 근본적인 문제”라며 노래가 끝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세상의 진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은폐한다”고 말했던 언어철학자다.
지난해 흰 종이를 든 청년에 이어 풍자곡 ‘나찰해시’ 신드롬까지, 삼엄한 검열에도 언로를 뚫어내는 중국인의 지혜가 놀랍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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