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컷 cut] 누군가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 앞에 한 미국 청년이 있다. 그는 가난의 대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병대에 들어가 이라크 파병을 간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주립대를 다니고 예일 로스쿨에 들어간다. J.D. 밴스의 동명 회고록을 영화화한 ‘힐빌리의 노래’ 이야기다.
영화에서 밴스는 또 한 번 비탈길에 선다. 유명 로펌 인턴 면접을 앞둔 상황에서 어머니가 약물 중독으로 입원한 것이다. 그는 병원에서 퇴원 조치된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입소시키려 하지만 시설 쪽에서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밴스는 담당자를 설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엄마도 누군가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면 달라졌을 거예요.”
밴스에겐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다. 할머니는 약물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딸에게서 손자를 떼어내 직접 양육한다. 성장 환경을 벗어나긴 어려운 것일까. 밴스가 친구들과 어울려 탈선을 하자 할머니는 경고한다. “기회는 중요한 거야.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도 않아.”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던 밴스의 변화는 할머니가 전자계산기를 사주느라 배를 곯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시작한다. 집안의 쓰레기를 버리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늦은 밤 책을 펴든다. 오로지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개개인의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젊은 그들의 결심을 뒷받침해줄 사회적 자본이 필요하다. 그토록 저출생 문제가 우려된다면서 어째서 위기의 청소년들은 방치하는 걸까. 그들도 ‘누군가 한 사람’이 있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믿어준다는 것은 그냥 믿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밴스는 말한다. “우리의 시작이 우릴 정의하더라도 매일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그 ‘매일의 선택’에 우리 기성세대가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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