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이 하이주얼리를 만들면
패션 하우스에서 선보이는 하이 주얼리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는 가운데 아트 디렉터 프란체스카 엠피시어트로프가 이끄는 루이 비통의 다섯 번째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아테네에서 선보여졌다.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도시 아테네는 철학과 민주주의, 건축과 예술 등 고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그곳에서 펼쳐질 프레젠테이션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공항에서 차로 두 시간 남짓 달려 올리브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도착한 곳은 수채화 같은 색감의 꽃들과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만조에 리조트.
아트 디렉터 엠피시어트로프가 종종 시간을 보내며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던 곳이기에 이번 주얼리 프레젠테이션 장소로 선택됐음이 분명했다. 버기를 타고 아스파라거스처럼 높게 솟은 나무들을 지나 도착한 프레젠테이션 현장에선 총 170점 이상의 하이 주얼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행성의 탄생부터 생명이 태어나고 지구가 생기는 과정을 다룬 ‘딥 타임’ 컬렉션.
‘지올로지(Geology)’와 ‘라이프(Life) 두 가지 챕터로 나눈 전시를 앞두고 엠피시어트로프가 서문을 열었다. “딥 타임 컬렉션은 당신을 과거로, 어쩌면 너무 동떨어져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줄 겁니다.” 캄캄한 복도를 지나 펼쳐진 ‘지올로지’ 전시장엔 지구의 탄생부터 진화를 보여주는 일련의 과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초대륙 육지인 ‘곤드와나(Gondwana)’, 폭발과 지진의 움직임을 상상한 ‘볼케이노(Volcano)’, 거대한 파도를 표현한 ‘웨이브(Wave)’, 지구의 가장 오래된 광물인 지르코니아에 집중한 ‘럽쳐(Rupture)’를 지나 태양과 바다에 대한 헌사인 ‘드리프트(Drift)’ 컬렉션까지. 강렬한 V 모티프와 LV 커스텀 컷 스톤으로 만든 컬렉션은 가늠할 수 없는 태초의 지구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두 번째로 이어진 ‘라이프’ 챕터는 생명이 태동한 이후의 스토리를 담았다.
‘오리진(Origin)’ ‘포실(Fossils)’에서 ‘시드(Seeds)’와 ‘플라워(Flower)’를 주제로 한 컬렉션은 주얼리를 화석이나 동식물 오브제와 함께 전시해 좀 더 직관적으로 컬렉션 주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딥 타임 컬렉션은 지나간 과거를 예찬하는 동시에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유약함에 대해 바치는 헌사입니다.” 전시장 유리 너머로 보이는 지중해와 흩어진 섬,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가 엠피시어트로프의 말과 겹쳐지는 순간이었다.
해가 저문 뒤 ‘딥 타임’ 주얼리를 주제로 한 공연을 보기 위해 도심으로 향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남쪽 바위에 자리 잡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닥의 돌마저 오랜 시간을 간직한 유적이기에 힐이 아닌 낮은 신발로 갈아신고 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기원전 161년에 세워져 인류 최초의 극장인 디오니소스 극장에 가장 가까운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곳.
2000년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공연장에서 르노 카퓌송의 바이올린 독주가 울려퍼지며 쇼가 시작됐다.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아크로폴리스만이 환하게 밝혀진 공연장에 그리스 안무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가 지휘하는 무용수들이 조명이 달린 복면을 쓰고 등장했다. 뒤이어 이번 컬렉션을 보여주는 모델들이 무대에 올라 무용수들과 마주보며 춤추듯 호흡을 맞추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태초의 지구와 남겨진 유산을 상상하며 만든 작품 같은 주얼리들이 가느다란 스트랩의 실크 톱과 간결한 팬츠를 매치한 룩,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실크 드레스 등과 모던하게 어우러져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루이 비통은 여전히 모험 정신을 잃지 않고 특별하면서도 놀라운 곳들을 누비고 있습니다.” 엠피시어트로프의 말처럼 패션 하우스의 시작과 같은 ‘여행’의 모토는 하이 주얼리에도 닿아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끝없이 파고드는 탐구력,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역동적으로 변화하며 현재와 연결점을 찾는 것. 그것이 보수적인 하이 주얼리 시장이 이 패션 하우스를 주목하는 이유다.
Copyright © 엘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