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리는 '김은경 사퇴론'에 동력 떨어진 민주당 혁신

유인태 "혁신위원장 내려놓는 게 당 돕는 일"
안민석 "의원들 텔레그램방에 '사퇴 이야기'"
與 회의장엔 '민주당의 혁신=현대판 고려장'

노인 비하 발언 논란에 휩싸인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3일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 중앙회에 사과 방문해 김호일 대한노인회장과 면담을 마친 뒤 중앙회 건물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노인 비하 논란에 고개를 숙였지만 사퇴론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당의 쇄신을 이끌어야 할 혁신위원장의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야권 원로까지 나서 혁신위를 질타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텔레그램방에도 '김은경 사퇴론'이 나오는 등 혁신위가 이미 활동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위원장은 '여명 비례 투표' 발언 나흘만인 3일 대한노인회를 찾아 공식 사과를 하면서도 "혁신 의지는 그대로 간다"라고 했다. 혁신위원장직을 내려놓는 데는 선을 그은 것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사퇴론' '혁신위 해체론' 등이 커지면서 김 위원장의 버티기에도 불구하고 혁신위의 개혁 과제 수립과 성과 도출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노인 비하 논란을 낳은 자신의 발언과 관련해 "어르신들의 마음을 상하게 한 점에 대해 더 정중히 사과드린다"라고 했다. 당사 사과 후에는 대한노인회를 방문해 거듭 사과를 했다. 하지만 사과 과정에서 나온 노인회 측의 사퇴 요구에는 "그것은 다른 문제"라고 일축했다.

김 위원장의 노인 비하 발언에 늑장 사과까지 더해지면서 야권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사무총장은 쓴소리를 내뱉었다.

유 전 총장은 이날 CBS라디오 '뉴스쇼'에서 "저렇게 설화가 생겼으니 좀 빨리 해체하는 게"라며 "(김 위원장이) 사퇴하고 (혁신위가) 더, 또 할 일도 없다"라고 했다.

이와 함께 "개딸(개혁의딸)들 홍위병 노릇을 할 것이 아닌 바에야 그냥 지금 깨끗이 '여기서 죄송합니다' 그러고 혁신위원장을 내려놓는 것이 민주당을 돕는 길이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유 전 총장은 또 혁신위가 진행 중인 설문조사를 겨냥해 "철없는 사람들이 그따위 짓을 자꾸 해 봐야 무엇하느냐. 우선 철이나 좀 들라고 그러라. 철도 없는 사람이 무슨 놈의 설문을 돌리고 (사퇴 없이) 계속 더 하려고 그러느냐"라고 반문했다.

혁신위는 당 소속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 중이다. 여기에는 당내 계파 간 의견이 엇갈리는 '대의원제'에 대한 질문도 다수 포함돼 있다. 혁신위 입지가 크게 흔들린 상황에서 친이재명계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의원제 폐지 명분을 끌어내기가 수월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실제로 이재명 대표 강성 지지층은 혁신위가 전국을 돌며 진행하는 '시민 대화'에서 '수박(비이재명계를 지칭하는 속어) 척결'과 '대의원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을 바라보는 당내 의원들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김 위원장의 최근 행태가 당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당내 위기 의식이 고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친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안민석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뉴스킹'에서 "(김 위원장이) 잇단 악수를 두시고, 이번 설화로 인해 이제 의원들 텔레그램방이 있다. '사퇴하라'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더라"라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안 의원은 "김 위원장이 사퇴하면, 혁신위가 실패하면 누구 좋은 일을 시키는 것인가. 그것은 윤석열 검찰 정권이 원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설화를 계기로 이제는 더 이상의 (김 위원장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앞으로 실수하면 나부터 나서 혁신위원장 사퇴하라고 이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당 밖에는 김 위원장에 대한 비판이 빗발치는 모습이다. 국민의힘은 최고위원회 회의실 배경지를 '민주당의 혁신=현대판 고려장'으로 교체하는 한편 김 위원장에 대한 이재명 대표의 조치를 촉구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민주당의 패륜은 아무리 봐도 구제불능이다. 민주당 혁신위는 패륜위원회'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을 올려 "자신이 삼고초려 끝에 초빙해온 보물 같은 인물이 이렇게 현란한 플레이를 하고 계신데, 이 대표는 오불관언"이라고 적었다. 이어 "상대방의 작은 티끌에도 징계·파면·윤리위 회부·탄핵을 부르짖던 그 호기로움은 어디로 사라졌나. 혹시 '이 정도 일을 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이냐'라고 생각하고 계신 것인가"라고 물었다.

윤재옥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혁신으로 민주당을 살리기는커녕 죽이고 있다. 사퇴가 불가피해 보인다"라고 질타했다. 회의 후 취재진을 만나서는 "국민적 공분이 크고 특히 어르신 세대에서 상당히 이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라며 "이 대표가 사안을 심각하게 보고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했다.

정의당도 가세했다. 이정미 대표는 페이스북에 "혁신위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라고 적었다. 이어 "대한민국 노인들에게 사과했지만, 정치혁신 과제를 스스로 입증한 민주당 혁신위의 갈지자 행보가 미칠 여러 우려에 대해서 민주당 자체의 진지한 자성과 대안이 불가피해 보인다"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