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효성그룹···한때 황제주 올랐던 소재 사업, 지금은… [스페셜리포트]
최근 효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주력 화학 계열사 3곳의 실적이 일제히 악화했다. 주력 계열사 실적 부진으로 그룹 지주사인 효성의 올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11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7% 급감했다.
참다못한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임직원에게 별도 메시지를 보내 책임 경영을 강조했다. 조 회장이 신년사나 창립 기념사 등을 제외하고 별도 메시지를 보내 임직원들을 질책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효성화학은 올 2분기 적자가 유력해 별도 자본 확충이 없는 한 자본잠식이 확실시된다. 효성화학 재무 구조가 사실상 자본잠식 수준으로 곤두박질치자 계열사 출자 우려로 그룹사 전체 주가도 부진했다. 한때 황제주 반열에 올랐던 효성그룹 화학 계열사들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중국 부진 직격탄
효성그룹은 중공업·건설(효성중공업), 산업자재(효성첨단소재), 화학(효성화학), 섬유·무역(효성티앤씨) 등으로 사업 영역이 구분된다. 이 가운데 효성그룹 주력 계열사인 소재 3사는 서로 사업을 일정 수준 교류하는 구조다.
효성화학은 폴리프로필렌(PP) 수지, 고순도 테레프탈산(TPA) 등을 생산한다. 효성티앤씨는 섬유 원사를 만든다. 요가복 등에 쓰이는 스판덱스 세계 시장점유율 1위다. 효성티앤씨는 폴리테트라메틸렌에테르글리콜(PTMG)이라는 원료와 화합물을 배합해 탄력 있는 스판덱스 원사를 생산한다.
이 원사를 원단 제조 업체에 공급하면 원단 제조사가 스판덱스 원단을 만들어 의류 브랜드에 납품하는 구조다.
효성티앤씨는 효성화학 등에서 TPA를 공급받아 타이어코드 원사도 생산한다. 타이어코드는 섬유 재질 보강재로 자동차 타이어의 안전성, 내구성, 주행성을 보강하기 위해 고무 안쪽에 들어간다. 효성첨단소재는 효성티앤씨에서 타이어코드 원사를 공급받아 원단 형태 타이어코드지를 만든다. 타이어코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다.
3개 계열사 실적 부진의 공통적인 요인으로는 중국 경기 부진이 꼽힌다. 지난해 중국이 뒤늦은 코로나 방역 강화(제로 코로나)에 나서면서 이동 제한이 심화했다. 엔데믹 체제 전환 이후에는 중국 경기 침체 우려가 덮쳤다.
실제 효성첨단소재의 주요 제품인 스틸코드와 카매트는 주로 한국타이어와 금호타이어의 중국 사업장에 납품된다. 사업 영역은 다르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다는 점은 효성화학과 효성티앤씨도 다르지 않다. 두 회사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의료용 주사기와 마스크의 재료인 폴리프로필렌과 스판덱스 판매 급증으로 실적이 퀀텀 점프했다. 그러나 중국이 코로나 방역 통제를 완화한 이후 외부 활동이 늘면서 관련 제품 수요는 급감했다.
효성화학, 베트남 손실 눈덩이
영구채로 자본 확충 나설 듯
부침 정도는 계열사마다 다르지만 그 정도가 두드러지는 곳은 효성화학이다. 효성화학은 분할 이전 효성그룹의 캐시카우였지만 최근 위상이 급전직하했다. 효성화학은 2021년 4분기부터 올 1분기까지 6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3367억원, 당기순손실은 4089억원이다. 지난해 1분기와 올 1분기를 비교하면, 효성화학 매출은 7272억원에서 6695억원으로 줄었다. 332억원 규모였던 영업손실은 453억원으로 늘었다.
중국 수요 부진이라는 공통 요인 외 효성화학의 골칫거리는 베트남 내 폴리프로필렌 생산공장이다. 효성화학은 베트남 생산공장에 2018년부터 약 5년간 12억8000만달러, 약 1조67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한때 폴리프로필렌 수요의 큰손이었던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워 공급사로 돌변하면서 효성화학 입지는 크게 위축됐다. 대안으로 선택했던 시장이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연 6% 안팎 경제성장률을 기록 중이었던 데다 1억명에 육박하는 인구 등 내수 시장이 탄탄했다.
베트남 진출 자체는 전략적으로 필수불가결한 선택지였으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거졌다. 122만t에 달하는 폴리프로필렌을 생산하려면 대규모 생산량에 걸맞은 설비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신규 장비 반입이나 공정 프로세스를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오작동과 부품 교체 등으로 수년째 셧다운이 반복됐다. 공정 운영 역량 미비로 베트남 공장이 셧다운을 반복하는 동안 시황은 급변했다. 폴리프로필렌 수요는 빠르게 줄었고 원재료 가격은 급등했다. 화학 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생산시설 공정 구축과 운영 등에 있어서 효성화학 운영 노하우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제대로 공장을 돌려보지도 못했는데 원재료 가격만 올라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인 상황에 노출됐다”고 귀띔했다.
당기순손실이 확대되면서 효성화학 결손금(마이너스 이익잉여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기업은 당해 연도에 벌어들인 순이익을 차곡차곡 쌓아 이익잉여금(누적순이익)으로 쟁여둔다. 결손금은 마이너스 이익잉여금을 뜻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지금까지 벌어들인 누적순이익을 모두 까먹었다는 의미다. 결손금이 계속 누적되면 자본총계는 뚝뚝 떨어진다. 그러다 자본총계가 자본금보다 줄어들면 자본잠식 상태로 전락한다. 자본총계가 아예 마이너스가 되면 완전자본잠식이 된다.
효성화학은 결손금이 쌓이면서 올 1분기 자본총계가 329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효성화학 자본금은 159억원으로 이 추세대로면 2분기 자본잠식이 우려된다.
효성의 자금 사정도 넉넉지 않다. 효성그룹은 지주사 체제여서 공정거래법상 효성티앤씨와 효성첨단소재 등 다른 계열사가 효성화학에 출자를 못한다. 지주사인 효성만 출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는 가능성이 매우 낮다. 효성 지분율이 희석돼 자칫 지주사 지분율 요건(상장 자회사 20%)을 밑돌 수 있어서다. 제3자 배정 방식 또한 가능성이 희박하다. 별도 기준 올 1분기 효성의 현금성 자산은 1099억원에 불과하다.
결국 자본잠식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효성화학은 영구채 발행을 검토 중이다. 영구채는 이자를 지급하는 채권과 비슷하지만 만기가 30년으로 길어 사실상 부채 상환 의무가 없다고 보고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부채비율 관리가 절실한 효성화학 입장에서는 더는 차입과 회사채 조달에 나서기 힘들다. 올 1분기 별도 기준 효성화학의 단기 차입금은 2421억원에 달한다. 당장 8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이 470억원, 내년 7월 만기인 회사채도 1200억원 규모다. 이들 차입금 이자율은 5~6% 수준이다.
다만, 영구채는 자본으로 인정받지만 실질적으로는 만기가 존재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긴 만기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이려 특정 기간이 되면 금리를 올리는 ‘스텝업’ 조항을 요구한다. 스텝업 조항이 적용되면 이자 부담이 늘어나므로, 통상 발행 기업은 스텝업 직전 영구채를 상환해왔다. 결국 현금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영구채로 자본 조달을 하더라도 재무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렇다고 영구채를 덜컥 상환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당기순손실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영구채 상환은 자본총계 감소를 부채질할 수 있다. 자본총계 감소는 부채비율 급등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캄캄한 상황이지만, 효성화학은 올 하반기 점진적인 실적 개선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됐던 베트남 공장이 정상 가동에 돌입한 데다 최근 업황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운다. 윤재성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2년간 효성화학은 원재료인 프로판 가격 급등, 폴리프로필렌 수요 위축, 베트남 설비의 잦은 결함과 비용 증가 등으로 실적이 부진했다”며 “베트남 공장은 완공 이후 최초로 100% 가동에 돌입했고 설비 결함의 원인을 파악하고 관련 문제를 점차 해결 중이며 마진율을 보여주는 PP(제품)-프로판(원재료) 스프레드도 최악의 상황을 통과해 뚜렷한 개선세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효성첨단소재, ‘슈퍼섬유’ 희망
효성티앤씨와 효성첨단소재는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편이다.
효성티앤씨 주력 사업부는 섬유 부문이다. 그중에서도 주력 상품은 ‘섬유 산업의 반도체’로도 불리는 스판덱스다. 스판덱스는 석유화학물질인 폴리우레탄으로 만든 신소재다. 강도와 신축성이 좋아 등산복, 레깅스 등 스포츠 의류에 혼용돼 쓰인다. 효성티앤씨 스판덱스는 세계 시장점유율 약 33%로 1위다.
한때 스판덱스는 중국에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품귀 현상을 빚었지만 2021년 4분기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때부터 경쟁사의 설비 증설, 중국 정부의 코로나 방역 강화 등 요인이 겹쳐 스판덱스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록다운 조치로 효성티앤씨의 중국 생산시설 가동도 차질을 빚으면서 2022년 전체 설비 가동률은 84.5%까지 떨어졌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에도 중국 경기 침체 우려로 제품 수요가 빠르게 줄었다.
다만, 올해는 기회 요인이 감지된다. 스판덱스 현물 가격 하락세가 둔화하면서 재고 일수도 차츰 회복되는 분위기다. 스판덱스 수요 침체기를 겪으면서 중국 시장에서 구조조정이 가파르게 진행돼 관련 업체 수도 줄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영업적자를 낸 스판덱스 사업도 올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상대적으로 그룹 내 위상 변화가 엿보이는 계열사는 효성첨단소재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효성첨단소재의 그룹 내 위상이 달라졌다. 주력 제품인 타이어코드와 신사업인 탄소섬유·아라미드가 안정적인 수익성을 보이면서 그룹의 새 먹거리로 안착했다는 평가다.
효성첨단소재 주력 사업은 산업자재 부문이다. 산업자재 부문은 크게 ▲타이어코드 ▲산업용 원사 ▲탄소섬유·아라미드 등 세 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전체 매출의 60%가량이 타이어코드에서 나온다. 특히 PET 타이어코드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다. 효성첨단소재는 효성티앤씨와 효성화학으로 이뤄진 수직계열화 체제를 갖춰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효성첨단소재의 신성장동력은 탄소섬유와 아라미드다. 탄소섬유는 무게가 강철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10배, 탄성은 7배에 달해 자동차 강판을 대체할 신소재로 꼽힌다. 최근 경량화가 필수인 수소연료탱크 핵심 소재로 사용되면서 성장세가 돋보인다. 초고강도 탄소섬유는 우주발사체의 알루미늄 등 기존 소재보다 훨씬 가벼우면서도 높은 탄성과 강도를 지녔다. 아라미드는 강철보다 5배 강하고 400도의 열을 견디는 난연섬유다. 첨단 소재로 광케이블 등에 주로 쓰인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낮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지난해 말 기준 탄소섬유와 아라미드 등 ‘슈퍼섬유’에서 나온 매출은 2668억원으로 전체 매출 3조8414억원의 7%를 차지한다. 이 부문 매출은 2020년 1350억원, 2021년 1459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세다. 이들 신소재가 미래 전략 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다.
다만, 아직 영업이익 기여도가 그리 높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사업보고서상 효성첨단소재는 탄소섬유와 아라미드로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효성첨단소재는 탄소섬유와 아라미드 가운데 탄소섬유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려진다. 효성첨단소재 사내이사로 활동 중인 조현상 부회장이 탄소섬유에 큰 애착을 갖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현상 부회장은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H2 비즈니스 서밋’에서도 “수소 모빌리티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소재가 탄소섬유”라며 “비용적으로도 이익을 볼 측면이 많아 계속해서 탄소섬유 공장을 증설 중”이라고 밝혔다.
효성 주가 20% 하락…반대 매매 땐 지배력 영향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은 올 1분기 기준 지주사 ㈜효성 지분을 각각 21.9%, 21.4% 보유하고 있다. 지주사 체제 전환 과정에서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은 끊임없이 장내 매수를 이어가며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주식담보대출로 지배력을 확대해 가까스로 지주사 전환을 마쳤다.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이 그룹 지배력 확대에 쓴 금융권 차입금을 전부 갚았는지는 공시만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담보 계약에 대한 마지막 공시가 이뤄진 게 2020년 3월이다. 2020년 3월 공시 기준, 조석래 명예회장과 조현준 회장, 조현상 부회장 등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주사 ㈜효성 지분 거의 대부분이 담보로 묶여 있다. 이 가운데 조현준 회장이 462만주 중 428만주를, 조현상 부회장은 451만주 중 363만주를 은행과 증권사 등에 담보로 제공하고 있다. 담보 계약이 최장 1년이었으므로, 이미 당시 계약의 만기는 지났다.
주식담보대출 전액 상환이 이뤄졌거나 계약 내용에 변경이 있다면 공시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후 관련 공시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지주사 효성과 계열사에서 받은 배당금과 상여금 등을 재원으로 차입금을 상당 부분 갚았을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미상환 잔액은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아직 미상환 잔액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지만 정확한 상환 규모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며 “계약 내용에 변경이 있을 경우 공시의무가 있는 것으로 공시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효성 주가가 급락한 탓에 오너 일가의 주식담보대출 미상환 잔고 수준에 따라 효성그룹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올 들어 효성 주가는 20% 이상 하락했다.
계좌평가액이 담보 비율에 미달하면 주식 보유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금융회사가 주식을 반대 매매한다. 조 회장 일가의 ㈜효성 지분율이 낮아질 경우 그룹 전체의 지배력이 낮아질 수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0호 (2023.08.02~2023.08.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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