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재개발하는 창신·숭인동…쪽방촌이 ‘2천가구단지’로
서울 한양도성의 동쪽 경계를 이루는 종로구 낙산. 이곳 낙산공원에서 동대문역~동묘앞역을 향해 내려오는 길은 골목이 워낙 좁고 가파른 데다 계단도 많아 굽이굽이 살펴 내려와야 할 정도로 험난하다. 일자로 곧게 뻗은 곳이 없는 골목 양쪽에는 지은 지 50년은 된 듯한 다가구·다세대주택이 빼곡히 들어서 있고 이들 주택 사이로 전봇대와 전선이 어지럽게 뒤얽혀 있다. 이 동네에서는 승용차보다는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것이 수월하다.
평일 낮 열려 있는 주택 곳곳에서 바삐 돌아가는 미싱(재봉틀) 소리가 들린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건너와 자리를 잡은 봉제 업체들이 이곳에 몰려 있다.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오토바이나 소형 트럭도 대부분 옷 패턴과 원단을 실어 나르는 차들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장정들이 마을 돌산 채석장으로 일 나가고, 1970년대는 새벽까지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던 서울 종로구 창신동이다. 창신동과는 지봉로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성북구 보문동과 맞닿아 있는 숭인동도 모습은 비슷하다. 두 동네 모두 주거 환경이 열악한 대표 쪽방촌으로 통한다.
이랬던 창신·숭인동 일대가 최근 정비사업 기대감이 부쩍 높다.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에서 해제된 이후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창신1·2·3·4구역이 정비구역으로 일괄 지정돼 개발을 추진 중인 데다 최근에는 노후 주거지인 창신동 23번지, 숭인동 56번지 일대 신속통합기획안이 확정되며 재개발 가닥을 잡았다.
市, 이르면 연말 정비계획 확정할 듯
창신·숭인동은 2007년부터 뉴타운으로 지정돼 2010년부터 재정비 사업이 추진됐지만 2013년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 전략으로 구역들이 지정 해제됐다. 2014년 서울 1호 도시재생 선도지역으로 지정됐지만 주거 환경 개선 효과가 미흡해 주민 불만이 쌓였고, 이후에도 뉴타운에 찬성했던 소유주를 중심으로 재개발 요구가 꾸준했다.
그러다 2021년 12월 신통기획 1차 대상지로 선정된 뒤 속도를 냈다. 신통기획은 민간의 정비계획 수립 과정에서 서울시가 통합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신속한 사업 추진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비구역 지정까지 통상 5년 정도 소요되던 기간을 최대 2년까지 단축할 수 있다. 대상지로 선정된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창신역 주변을 아파트 대단지로 탈바꿈시키기로 공약한 바 있는데 해당 신통기획안(이하 기획안)이 최근에야 확정됐다. 뉴타운 해제 후 10년 만에 재개발 사업이 다시 물꼬를 튼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7월 초 창신동 23번지·숭인동 56번지 일대 총 10만4853㎡에 대한 기획안을 확정했다. 이곳은 한양도성과 낙산 언덕으로 둘러싸인 구릉 지형이다. 평균 경사도가 19%로 비탈지고 끊어진 좁은 길이 많아 소방차나 구급차가 진입하기 어렵다. 노후 건축물 비율은 90%에 달해 안전사고 위험까지 있다.
이번에 발표된 기획안에 따르면 이곳은 임대주택 360여가구를 포함한 약 2000가구 규모 도심 주거 단지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창신동은 용적률 215% 안팎, 숭인동은 260% 안팎을 적용해 최고 30층 이하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다. 기존 구릉지 지형을 활용해 주거 단지가 인근 서울 성곽과 낙산 등 전망과 어우러지도록 높이 계획을 구역별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청룡사 등 문화재 인근은 4~7층, 구릉지는 8~10층, 창신역 일대는 28~29층의 고층으로 짓는 식이다. 서울시는 이번에 결정된 기획안을 바탕으로 입안 절차 등을 추진한 후 올해 말까지는 정비계획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잇따른 개발 소식에도 아직 창신·숭인동에서는 재개발 구역에서 흔히 보이는 투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한 조치인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토지면적 6㎡를 초과하면 사실상 거래가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일대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무주택자·2년 이상 실입주’ 조건을 갖춘 토허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창신·숭인동 일대는 노후 다가구·다세대주택으로만 이뤄져 실거주 목적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게 일대 공인중개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실제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창신동 단독·다가구주택 매매 거래는 총 22건 이뤄졌는데 창신동 23번지 재개발 지역에서는 지난해 6월 단 1건만 성사됐다. 창신동 A공인중개사사무소에 따르면 “신통기획 대상지 내 거래는 전무하지만, 사업지와 바로 접해 있는 매물도 대지 기준 3.3㎡당 3000만~4000만원 안팎”이라고 귀띔했다.
“경희궁자이처럼” 대표 단지 될까
거래는 적지만 부동산 시장에서는 창신·숭인동 일대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사대문 바로 옆 입지에 생기는 귀한 대단지 아파트라서다.
기획안이 확정된 창신동 23번지·숭인동 56번지 일대는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1·6호선 동묘앞역, 6호선 창신역으로 둘러싸인 역세권이다. 버스를 타고 종로, 광화문, 시청으로 출퇴근하기 편리하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흥인지문공원, 청계천과도 가깝다.
종로구 대장 아파트인 ‘경희궁자이1~4단지’가 돈의문(서대문)과 맞닿아 있다면 창신동은 흥인지문(동대문)과 맞닿아 있고 인근에는 아직 대단지가 없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노후 주거지였던 돈의문뉴타운(경희궁자이)이 재개발 후 20억원대를 호가하는 아파트가 된 것처럼 창신·숭인동 역시 개발되기만 하면 쪽방촌 이미지를 벗고 강북 대표 주거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관건은 시간이다. 정비구역 지정을 위해 정비계획을 입안하려면 주민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통상 기획안이 확정되고 정비구역 지정까지 6개월가량을 목표로 하지만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기간 등이 더해지면 그만큼 지체된다. 창신·숭인동의 경우 동의율이 60~70%로 높기는 하지만 구역 지정 이후에도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려면 개발 반대 입장 소유주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한편, 창신·숭인동에서는 노후 주거지, 상업지 개발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창신9·10구역은 재개발추진위원회가 한국토지신탁과 업무협약을 맺고 기존 2660가구에서 4000여가구 규모로 탈바꿈하는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 다만 소유주 동의율이 아직 낮은 상황이다.
지하철 1호선을 기준으로 남쪽에서는 창신1·2·3·4구역에 대한 도시정비형 재개발도 진행되고 있다. 4개 구역을 합쳐 총 10만7997㎡에 달하는 이곳은 지역 특성을 고려해 1구역은 11곳, 2구역은 5곳으로 나눠 소단위 정비·관리 방식을 통해 개발한다. 3구역과 4구역은 일반 재개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0호 (2023.08.02~2023.08.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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