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처음 간 다방에서 생긴 나만의 비밀 [음악방송 작가의 선곡표, 문득 이 노래]
오랜 기간, 한국 대중가요를 선곡해 들려주는 라디오 음악방송 작가로 일했습니다. 지금도 음악은 잠든 서정성을 깨워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날에 맞춤한 음악과 사연을 통해 하루치의 서정을 깨워드리고 싶습니다. <편집자말>
[김혜원 기자]
이즈음 느껴지는 더위에 '덥다'라는 평범한 수식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오랜만의 부부동반 외출을 준비하느라 옷을 두어 벌 갈아입었을 뿐인데 벌써 등에 땀이 흐른다. 어디 등뿐이랴, 좀처럼 더위를 타지 않는 나이기에 한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볼 수 없었던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엔 그저 헛웃음이 나온다. 끓는 도로를 프라이팬 삼아 달걀 굽는 것까지 본 세월의 이력을 지녔음에도 어떻게 매년 맞게 되는 더위는 이다지도 생경한 것일까.
오늘도 더위를 이겨내는 나름의 비책을 있는 대로 떠올려본다.
하나-에어컨과 선풍기의 강도를 적절하게 조절해 놓고 '집콕모드'로 있기
둘-아이스팩을 만들어 수시로 얼굴과 배, 혹은 다리에 얹기
셋-이열치열이라, 매운 음식으로 굵은 땀방울 흘린 후 찬물로 샤워하기
넷-추리소설을 산처럼 쌓아놓고 새벽을 밝히며 읽어보기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이자 가장 최애인 방법, 심야로 여름용 텐트폴 영화 보기.
다른 방법도 나름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해 주지만 오랜 세월 실행을 해 본 결과 심야에 보는 여름용 '텐트폴' 영화만큼 일시에 무더위를 날려주는 묘책을 아직은 찾지 못했다. 시원하게 냉방이 된 어두운 영화관에서 그것도 심야에 영화를 보는 일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기에.
▲ 영화 <밀수> 한 장면. |
ⓒ (주)NEW |
영화광인 내게 지난 코로나 3년의 시간은 가혹했다. 특히 직접 영화관을 찾아서 영화를 보는 일을 주춤거리게 만들었다. 마스크를 끼고, 채 다섯 명이 되지 않는 관람객들과 영화를 보는 일이 어쩐지 마뜩잖아서 자주 발길을 돌렸음이다. 마스크 해제가 된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조조로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었으니 그동안의 답답함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음이다. 아무튼 이제 보고 싶은 영화를 '심야모드'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무얼 망설이겠는가, 이 여름을 책임지겠다는 영화가 이렇게 줄을 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래서 선택한 영화였다. 액션 신이 많다고 했고, 연기자의 본업에 충실한 배우들이 여럿 나온다고 했으며 무엇보다 배경이 항구라 하지 않던가. 바다가 가지는 무한한 광활함에 더해, 항구라는 설레는 재료가 더해졌으니 기대감은 높아만 간다. 무엇보다 영화 '밀수'에는 그 시절 감성을 무한증폭해 줄 음악이 강렬하게 배치돼 있다는 것이 영화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한층 더 빨라지게 만들었다.
허스키한 음색이 매력적인 최헌의 노래 '앵두'를 배에 그득하게 싣고 포문을 열더니, 항구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김트리오의 '연안부두'를 슬며시 흘려보내고, 매력적인 권상사 캐릭터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입히는 식이다. 아, 박정민과 조인성의 액션 신에서 짜 맞춘 듯이 흐르던 산울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빼놓으면 무척 섭섭할 것이다.
물론 비릿한 부두내음이 스며있는 항구의 디스코텍을 쩌렁쩌렁 울리던 이은하의 '밤차'도 오랜만에 참 반가웠다. 하지만 내 눈과 귀는 엔딩장면에서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고야 만다. 배마저도 흐느적거리며 춤추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희대의 명곡 김추자의 '무인도'가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말이다. 물론 꽤 오래 이어지는 엔딩을 박경희의 '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가 함께 책임을 지고 있지만 김추자의 '무인도'가 가지는 포획성은 일시에 관중을 사로잡아 버리고 만다.
파도여 슬퍼말아라
파도여 춤을 추어라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 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끝없는 몸부림에
파도여 파도여 서러워 마라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파도여 /김추자 '무인도' 가사
내가 아는 한 과거에든 현존하는 가수든 김추자만큼 노래를 격정적으로 부르는 가수가 또 있을까 싶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노랫말을 전달함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격정적이다. 어떤 이는 이를 '소울이 충만하다'라는 표현으로 바꿔 얘기하곤 하는데, 이런 상투성은 어쩐지 김추자의 목소리에는 좀 부족한 감이 있다. 영화에 사용된 또 다른 곡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한 두어 번 더해서 들으면 내 주장이 그리 선을 넘는 주장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노래가 나온 지 벌써 50여 년이 흘렀다는 사실을 아는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다시금 '레트로'에 눈길을 주고 있다는 데서 착안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1970년대를 사로잡았던 노래들이기에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ost로 등장하는 것이 일견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어쨌든 관객은 21세기 2023년을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장면을 설명하고 배우의 캐릭터를 규정하거나 자칫 헐거워지려는 미장센의 허술한 틈을 완벽하게 메꾸고 봉합하는 역할을 그 시절의 음악에 맡겨둔 것은 일종의 실험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 실험의 처음과 끝을 '앵두'와 '무인도'로 장식한 것은 노련하고도 치밀한 계획에 의거한 것이리라.
▲ <무인도>가 삽입된 김추자의 베스트 앨범. |
ⓒ 이봉조 작곡 |
김추자의 '무인도'를 처음 들은 건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쯤의 여름이었을 것이다. 장소는 초등학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 시내의 한 다방이었다. 다방의 상호는 너무 오래전이라 희미해졌지만 난생처음 갔던 그곳의 요란한 벽지와 쌍화차인지 쌍화탕인지의 내내 코끝을 자극하던 들큼한 내음과, 눈이 아렸던 담배연기만큼은 똑똑하게 기억한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기와집 문간방에는 젊은 신혼부부가 세 들어 살았었더랬다. 그 집엔 가끔 어린 조카들을 돌보기 위해 아줌마의 동생인 아이들의 이모가 와 있곤 했었고.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깡촌이 고향이라고 했던가, 검게 그을린 살갗과는 다르게 얼굴이 동그랗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형이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겨우 대학 신입생 정도의 어린 나이였지만 매번 언니네 올 때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 외에도 결혼을 위해 선을 보는 일이 추가되곤 했었다.
시골처녀의 순박함이 그대로 묻어나던 그 이모는 선을 볼 때마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웠던지 자꾸만 나를 동행하려고 했었다. 이모 못지않게 낯을 가리던 나였지만 시원한 빙수를 사준다는 말에 홀려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곤 했다. 그렇게 이모가 선을 보는 동안 다른 자리에 눈치를 보며 앉아서 잘 마셔보지 못했던 주스를 홀짝거리는 시간이 내겐 참으로 낯설면서도 신나는 시간이었나 보다. 그때 다방의 전축을 통해 흘러나왔던 노래들이 여태껏 가끔 기억나는 걸 보면.
이모의 까무잡잡한 얼굴에 홍조가 피어나는 걸 바라보며 의구심을 가질 무렵 '무인도'는 발부터 휘감으며 끈적하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다방문이 짤랑거리며 열릴 때마다 그 끈적함은 공기를 집어삼킬 것처럼 커져만 갔고, 어린 나는 김추자의 목소리와 그 음색이 펼쳐내는 어느 바다의 푸른 섬에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가사가 멜로디를 신전의 기둥처럼 든든히 받치고 있는 노래가 얼마나 듣기 좋던지!
갖은 감성을 일시에 자극하는 울림이 거기엔 있었다. 이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 마치 그 순간에 나 혼자 존재하는 듯한 기분 그것이 '고립무원'의 쓸쓸함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노랫말에 나오는 '찬란한 고독'은 어떤 색을 띠며, '영원한 침묵'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그리고 마치 보지 말아야 할 책의 한 챕터를 읽은 소녀의 마음처럼 다방에서 들었던 '무인도'의 충격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했었다.
단언컨대 김추자만큼 무형의 노래를 살아 움직이는 유형의 그 무엇으로 만들 줄 아는 가수를 본 적이 없다. 이건 노래를 잘 부르고 못 부르는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이원론을 떠나 노래에 숨을 불어넣는 기운을 일컬음이다. '무인도'는 그렇게 김추자라는 바다에서 꿈틀거리며 흘러와 내 마음에 고요하고도 쓸쓸한 섬 하나를 뿌려 놓고 떠났다.
그리고 '수밀도'를 닮았던 문간방 이모도 그 다방에서 만났던 어떤 이와의 결혼을 끝으로 내 곁을 떠났다. 아름답던 한 시절의 인연은 그렇게 끝났으나 영화를 통해 다시 듣게 된 '무인도'는 한 여름밤의 공기인양 천천히 끈적하게 온몸에 달라붙어 시간을 뒤흔든다. 순식간에 노래의 터널을 지나더니 파도가 일렁이는 망망대해 어디쯤 쓸쓸하게 자리한 한 섬에 불시착한다. 노래는 다시 한번 시공을 초월해 잊고 있던 이름들을 불러보게 만든다.
'찬란한 고독'과 '영원한 침묵' 사이, 사람들로 이루어진 섬들이 존재한다. 무인도인줄 알았으나 사람 자체가 섬이기에 무인도라 부를 수도 없는 환상의 섬, 그런 섬들이 어딘가에 있음을 꿈꾸게 한 노래가 바로 '무인도' 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바로 '김추자의 '무인도'를 가져와 21세기 우리 영화 최고의 엔딩곡으로 장식한 음악감독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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