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마오쩌둥 등에 업은 김일성의 남침 과정 생생 서술
와다 하루키 지음, 남상구 조윤수 옮김
청아출판사, 712쪽, 3만8000원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전쟁 연구의 대표적 저작이라고 할 두 권의 책이 연이어 번역돼 나왔다. 지난 6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완역판이 출간된 데 이어 와다 하루키의 ‘한국전쟁 전사’를 21년 만에 한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됐다.
올해 여든넷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소련·러시아사에서 출발해 북한사, 북일사, 한일사 등으로 영역을 넓혀온 동북아국제관계사 전문가다.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 지식인으로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한일 과거사 청산 운동에 연대했으며 한국에서 주는 김대중 학술상, DMZ 평화상, 만해상을 수상했다.
‘한국전쟁 전사’는 1990년 발표한 논문 ‘한국전쟁을 생각한다’로 시작된 와다의 20여년에 걸친 한국전쟁 연구를 결집한 책이다. 그는 1995년 한국전쟁에 대한 첫 책 ‘한국전쟁’을 썼는데, 7년 후 다시 ‘한국전쟁 전사’를 내놓았다. 여기에는 1990년대 러시아 자료가 대거 공개된 사정이 있었다.
와다는 머리말에서 “공개된 러시아 자료는 주로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의 전보, 시티코프 대사, 소련 군사고문단장 블라디미르 라주바예프의 전보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까지 가늠할 수 없었던 공산주의 진영 고위급의 판단을 알 수 있다”며 “이 러시아 자료를 통해 공산주의 진영이 한국전쟁 개전에 이르는 과정이 거의 완전히 밝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 자료가 공개되기 전에 쓰여진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은 미국 비밀문서와 북한 노획 문서, 남한 자료에 의존했다. 와다는 러시아 자료를 대거 반영해 1948년 남과 북에서 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부터 1953년 정전에 이르는 시간대를 마치 전쟁일지를 작성하듯 재구성해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그동안 한국전쟁과 관련해 수많은 연구서가 나왔으나 전사(全史)라고 할만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다”고 평가했다.
‘한국전쟁의 기원’이 1945년 해방 이후부터 개전까지 5년의 시간에 대한 세밀화라면, ‘한국전쟁 전사’는 단독정부 수립 이후부터 정전까지 5년의 시간을 서술한다. 커밍스는 한국전쟁은 해방 직후에 시작된 남북한의 내란 상황이 전쟁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보면서 전쟁의 기원을 해방 직후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했다. 반면 와다는 전쟁의 기원을 1948년 두 국가의 탄생에 두고, 한국전쟁을 무력통일 전쟁이라고 규정한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위한 전쟁으로 처음에는 북한이, 뒤이어 남한과 유엔이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양측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미군, 유엔군의 개입은 북한에 의한 통일을 저지한 한편, 36만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은 남한에 의한 통일 시도를 무너뜨렸다.”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커밍스가 모호한 입장을 취한 것과 달리 와다는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이 어떤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상세하게 보여주면서 북한이 공격을 개시한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무력통일을 간절히 원했으나, 스탈린은 처음에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1950년 스탈린이 허락하자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승인, 원조를 등에 업고 북한이 먼저 공격에 나섰다는 것이다.”
남한의 무력통일 의지도 북한에 못지 않았다. 와다는 한국군의 북진은 북한군의 침공을 격퇴하기 위한 작전만이 아니라 한반도 통일을 위한 진격이었다고 주장한다.
중국 측이 주장하는 미국의 세균전에 대한 진상을 밝혀낸 대목도 주목된다. 공산 진영은 1952년 2월부터 미국이 세균전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와다는 공개된 자료들을 분석해 중국이 심리전 차원에서 날조한 이야기이며 그 목적은 미국의 핵무기 사용을 단념시키기 위한 계획이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실제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1951년 4월 합동참모본부가 올린 원자폭탄 사용 명령을 승인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정전회담이 시작됐다. 와다는 2년에 걸친 정전회담 과정을 상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이승만과 미국, 김일성과 소련, 중국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평양 폭격에 심각성을 느낀 김일성은 정전협정 타결에 필사적이었던 반면, 이승만은 미국과의 충돌도 불사하며 집요하게 정전에 저항했다.
와다는 지난 1일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오늘날 남북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70년 전 정전이 실현된 것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있을 터”라며 “무력 통일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될 비극이라는 인식을 남과 북이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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