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여성인 척 만나 동성 나체 촬영…1심 무죄 뒤집혔다 왜
지난해 2월 10일 남성 A씨는 여성인 척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접속해 알게 된 남성 B씨에게 “나랑 내 남동생이랑 셋이 같이 모텔에서 만나서 놀자”고 제안했다. B씨는 모텔을 찾았지만, 정작 그곳엔 동성인 A씨만 있었다. A씨는 이번엔 여성의 남동생을 가장해 “누나가 곧 올 거니깐 그때까지 술을 먹고 있자”고 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A씨는 마약성 수면제 두 알을 몰래 빻아 넣은 숙취 해소제를 B씨에게 권했고, B씨는 그대로 받아 마셨다. B씨가 이내 깊은 잠에 빠지자, A씨의 범행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A씨는 정신을 잃은 B씨의 옷을 벗겨 추행한 뒤, B씨의 나체를 자신의 휴대전화로 총 3번에 걸쳐 촬영했다. 또 B씨의 휴대폰을 뒤져 가족 연락처를 확보했다.
A씨의 범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튿날 B씨에게 문자 메시지로 “내가 감방에 갈 수는 있어도 그 전에 가족들한테 사진은 다 뿌리고 간다. 만약 성의를 표하면 그럴 일은 없다”며 현금 500만원을 요구했다. B씨는 이에 응하지 않고 경찰에 신고했다. 문제는 같은 달 14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발생했다. A씨는 압수수색 당시 휴대전화의 탐색, 복제, 출력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는데 이를 믿은 경찰은 추가로 디지털포렌식 분석에 착수하면서 변호인에 별도의 통지를 하지 않았다.
디지털포렌식에서 경찰이 B씨의 나체 사진을 증거로 확보하자 A씨 측은 “형사소송법 219조, 121조가 규정한 변호인의 압수수색 참여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로 발견한 피해자 나체 사진은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맞서기 시작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 A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만을 선고했다. ▶유사강간치상 ▶공갈 미수 등의 혐의는 인정했지만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별도 혐의 ▶성폭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반포 행위 금지)를 무죄라고 판단한 결과였다.
서울중앙지법 26형사부(정진아 부장판사)는 “피고인이 이 사건 휴대전화의 탐색, 복제, 출력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디지털 포렌식을 통한 휴대전화 추가 분석을 하고자 할 경우, 선임된 피고인의 변호인에게 그 집행의 일시와 장소를 통지하는 등으로 그 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야 했는데 그러한 기회를 제공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 8형사부(배형원 부장판사)는 1월 13일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형사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예외적 경우라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이 경우는 예외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A씨가 변호인을 선임하기 전 휴대폰에 대한 탐색, 복제, 출력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스스로 한 점 ▶애초에 포렌식 절차가 개시된 게 A씨가 사진 불법 촬영을 자백 진술한 것에 따른 점 등도 예외 인정의 근거로 거론됐다. 결국 A씨는 1심보다 형량이 늘어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을 확정받았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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