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나흘만에 사과한 김은경, 전날까지 "자존심 허락 안돼"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3일 ‘노인 폄하’ 논란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지난달 30일 청년 좌담회에서 “왜 나이 든 사람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 여명(餘命·남은 수명)에 비례해서 투표해야 한다”는 본인 아들의 중학생 시절 발언을 소개하면서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해 논란을 일으킨 지 나흘만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르신들 마음을 상하게 한 점에 대해 더욱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는 “어르신들의 헌신과 경륜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새겨듣겠다. 그러한 생각에 한 치의 차이도 없음을 말씀드린다”며 “앞으로 이런 상황을 일으키지 않도록 더욱 신중히 발언할 것이며 지난 며칠 저를 질책해주신 분들께 사과와 감사의 말씀을 함께 드린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서울 용산구 대한노인회를 찾아 “이게 이렇게까지 비화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 했다. 그런 어리석음이 있었다”며 재차 고개를 숙였다. 김 위원장은 “제 딴에는 아들과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투표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라고 한 것인데 생각지도 못하게 퍼져나갔다. 부족함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며 “어르신들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산 적은 없었다”고 거듭 해명했다.
이에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앞으로는 이 노인들, 나라를 위해 고생한 노인을 대우하고 대접하는 발언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사과를 받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천만 노인을 대표해서 내가 볼때기라도 때려야 노인들 분이 풀릴 것 같은데, 손찌검하면 안 되니 사진이라도 때리겠다”며 김 위원장 사진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이날 사과는 당 안팎의 압박으로 인해 이뤄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일 인천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혹시 마음 상한 분들이 있다고 하면 유감스럽다”(1일)고 밝혔을 뿐, 직접적인 사과를 피했다. 혁신위 대변인은 외려 “사과할 일이 아니다”(1일)라고 했고, 김 위원장은 전날(2일) 저녁 강원 춘천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노여움을 풀어달라. 교수라 철없이 지내서 정치언어를 잘 모르는 어리석음이 있었다”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까지도 완강하게 버텼다고 한다. 혁신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이 문제가 이상하게 정쟁으로 변했고, 우리가 자꾸 국민의힘 주장에 말리고 있다”며 “사과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자존심상 허락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깨끗이 사과하고 간판을 내리라”(윤재옥 원내대표) 같은 여당의 공세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김 위원장이 버티는 사이 민주당 지도부가 수습에 나섰다. 전날 오전 대한노인회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분노한다”는 규탄 성명을 내자, 한병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과 이해식 민주당 사무부총장, 양이원영 의원은 곧장 대한노인회를 찾아가 사과했다. 민주당 의원 SNS 단체 대화방에선 “혁신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당내에선 “혁신위는 이미 죽었다”(수도권 초선 의원)는 평가도 나온다. 이미 이낙연 전 총리를 향해 “자기 계파를 살리려 (정치적 언행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해 논란에 휩싸이는 등 몇 차례 설화를 겪었으나, 이번 ‘노인 폄하’ 논란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혁신위 내부에서도 “중요한 건 사과가 아니라 혁신위 위상이 떨어졌다는 것”이라며 “이제 어떤 혁신안을 내놔도 의원들이 ‘당신이나 잘해’라고 할 것 아닌가”라는 탄식이 나왔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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