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말로만 국군포로 노력"…첫발부터 꼬인 통일부

장희준 2023. 8. 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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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해결 노력"
정작 통일부는 장관 면담에 주요 피해자 배제
"北 눈치 봤나…美 다 만났는데 부끄러운 일"

통일부가 지난 정부에서 외면당한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김영호 장관 면담에는 국군포로 가족 등 주요 피해자를 배제시켜 논란이다. 올해 2월 방한했던 미국 고위 당국자가 관련 당사자를 모두 초청해 면담한 것과 달리, 정부 입맛대로 단체를 골라 불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로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관련 단체장 등 5명을 초청했다. 대상은 사단법인 물망초,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북한에 억류된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씨 등이다.

"통일부가 국군포로 외면하고 왜 국방부 탓합니까"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대표가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통일부 장관 면담에 배제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사진=장희준 기자 @junh

이 자리는 김 장관의 첫 대외일정으로, 그간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국방부 소관'이라며 발을 빼 오던 통일부가 달라진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동시간대 청사 밖에서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졌다. 면담에서 배제된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대표,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통일부가 알 수 없는 잣대로 단체들을 가른 행태를 비판하는 시위를 열었다.

손 대표는 북한에 억류된 상태에서 숨을 거둔 고(故) 손동식 이등중사의 딸로, 아버지 유해를 배낭에 담아 탈북한 인물이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으로 평양에 와놓고 국군포로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이 돌아간 뒤 수많은 포로가 배신감에 자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며 "윤석열 정부도 말로는 노력한다지만, 그때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통일부의 대응도 논란이다. 손 대표에 따르면 당초 통일부 측은 '국방부 입장을 반영했다'며 국군포로가족회가 면담에서 빠진 이유를 설명했지만, 국방부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통일부가 관련 문의를 한 적도 없고, 자체 행사를 우리 측에 문의할 이유도 없다"며 "국방부가 관여하지 않은 사안에 마치 개입된 것처럼 대응한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통일부 장관님, 우리 가족은 개돼지가 아닙니다"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가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통일부 장관 면담에 배제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사진=장희준 기자 @junh

1969년 납북된 황원 MBC PD의 아들 황인철 대표도 "도대체 언제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갈 것인지도 암담하다"며 "새 장관이 오자마자 만난다고 해 기뻤는데, 의도적으로 배제돼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다. 통일부는 황 대표를 면담에 초청한 뒤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배제'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대표의 부친은 2017년까지 여러 소식통을 통해 생존 사실이 확인됐다고 한다. 그는 "2020년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자의적구금실무그룹(WGAD)이 나서 처음 아버지의 석방을 촉구했지만, 우리 정부는 입을 다물었다"며 "새로운 대통령과 새로운 장관이 문제 해결을 강조해도, 실무진은 이전 정부에서 해오던 행태를 그대로 하는데 무엇이 개선되겠느냐"고 지적했다.

현재 통일부는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대북지원부'라는 지적을 받은 뒤 대규모 조직개편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주목받은 변화는 장관 직속으로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문제를 다루는 '납북자 대책반'을 신설하는 것이다. 여기에 김영호 장관이 첫 대외일정으로 이들 단체장 면담을 선택하면서 해결 의지를 거듭 피력하려 했으나, 결국 그 의미가 퇴색된 모양새다.

모든 피해자 만난 美…입맛대로 골라 부른 통일부

(위) 올해 2월 주한미국대사관에서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가족 대표들을 만난 정박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겸 대북특별부대표(왼쪽에서 세번째)와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왼쪽에서 네번째)의 모습. (아래) 3일 오후 관련 단체장 면담에서 기념촬영하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단체를 일부만 골라 초청하며 주요 피해 당사자를 배제한 통일부의 행태가 미국과 대조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정박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부차관보 겸 대북특별대표는 올해 2월 이신화 북한인권대사와 함께 국군포로·납북자·억류자 관련 단체장을 주한미국대사관으로 불러 면담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면담에 초청된 단체는 국군포로가족회와 KAL기납북피해자가족회,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김정삼씨 등으로 현재 활동을 계속하는 대표적 '피해 당사자'가 모두 초청됐다. 통일부가 꾸린 구성도 당시와 거의 일치하지만, 국군포로가족회와 KAL기납북피해자가족회만 배제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정박 부차관보가 왔을 때도 처음에는 국군포로가족회가 초청 대상에서 빠졌지만, 이신화 북한인권대사가 문제를 제기했고 미국 측이 이를 바로 수용해 수정했다"며 "미국은 자기 국민이 아닌데도 모든 피해자를 만나 노력을 약속하고 떠났는데, 정작 통일부는 알 수 없는 기준으로 단체를 골라서 만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손명화 국군포로가족회 대표가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통일부 장관 면담에 배제된 것에 항의하는 시위에 들고 나선 피켓. /사진=장희준 기자 @junh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배제된 단체에 '국방부 입장을 수용했다'고 했다가 '정부 등록단체만 불렀다'고 말을 바꾼 것 같은데, 그럼 김정욱 선교사의 형 김정삼씨는 어떤 기준으로 초대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늦게라도 유감을 표하고 의자 두 개만 더 놨으면 될 일을 복잡하게 키웠다. 대통령실에서 장관의 첫 행보부터 꼬인 모습을 절대 좋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김영호 장관은 이날 면담에서 "윤석열 정부는 절대로 종전선언을 추구하거나 추진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고 밝혔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가 묻히게 된다는 이유다. 그는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 문제는 북한이 우리 국민에 가하는 인권 문제"라며 "(북한이 생사조차 확인해주지 않는) 문제에 대해 정부가 더 확고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일부 단체가 '면담 배제'로 반발한 데 대해 "초대받지 못한 단체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연락했고 추후 별도 일정을 잡아 의견을 들을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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