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폭염에 신문지 쓰고 밭일…"열 분 돌아가셨다" 다급한 순찰대
3일 오전 11시쯤 경북 안동시 와룡면 주계리 한 고추밭. 그늘 한 점 없는 990㎡(300평) 크기 땡볕 고추밭에서 백발이 성성한 부부가 밭일 중이었다. 노인용 보행기 없인 제대로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는 밭고랑 사이를 오가면서 고추 따기에 여념 없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이 모습을 본 경북도 이영석 재난안전실장, 김무현 회계과장은 급히 차에서 내려 밭으로 달려갔다. 일종의 ‘폭염 순찰대’다. 경북도는 온열질환 사망사례가 잇따라 발생하자 과장급 이상 직원을 현장으로 급파했다. 경북 지역 누적 온열질환 사망자는 10명(5월 20일~이달 2일 기준)이다. 전국 사망자(23명) 중 가장 많다.
김 과장은 “오전 9시 이후에는 너무 더워 위험하니 얼른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했다. 밭 주인인 박태수(81) 할아버지는 “오전 7시쯤 나와 고추 따다가 이제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경북서만 폭염 속 농사일하다 10명 사망
이 실장은 “최근에 경북에서만 노인 10명이 밭일을 하다 쓰러져 돌아가셨다”며 “밭일은 이른 새벽이나 밤에 나와서 하고 대낮에는 시원한 곳에서 쉬셔야 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농촌진흥청은 기온이 오르는 낮 작업을 가능하면 피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하나라도 더 출하하려 찜통더위에도 고령 농민들이 논·밭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농민들은 수해와 폭염 뒤엔 반드시 병·충해가 유행한다는 걸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오지라 119 오는데 30분 이상"...하소연
폭염 순찰대는 마을회관·경로당 등 지역 내 무더위쉼터도 점검했다. 안동시 예안면 인계리 노인회관에는 에어컨 등 냉방시설이 여러 대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온열질환 환자가 발생하면 바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송연희 인계리 이장은 “마을이 워낙 오지에 있다 보니 폭염 등으로 응급환자가 생기면 119 구급대가 오는 데 30분 이상 걸린다”며 “마음이 급해 개인 차량을 끌고 가고 싶어도 응급실 입원이 느리다”고 했다.
주변 안동 예안~영양 청기 간 도로 확·포장 공사 현장은 관급 공사현장이라 비교적 폭염 대응 매뉴얼이 잘 지켜지고 있는 모습이다. 일단 1~6일까지 최대한 휴가 가도록 독려했다고 한다. 점심을 끝낸 일부 근로자들은 쉼터인 이동식 텐트 안 아이스박스에서 얼음물을 꺼내 마시고 있었다. 이 현장은 폭염 상황에 따라 작업시간이 조정된다. 기온이 35도 넘으면 매시간 15분 휴식이 주어진다. 온도가 오르면 휴식시간도 길어진다. 한낮 중 기온이 가장 높은 시간인 오후 2시부터 2시30분까진 작업 중단이다.
24시간 열어둬야 할 쉼터 문 잠겨
순찰 중 문제점도 확인됐다. 무더위쉼터로 지정된 와룡면 주계경로당 출입구가 도난 방지 등을 이유로 잠겨 있었던 것이다. 무더위쉼터는 24시간 개방이 원칙이다. 경북도는 도내 무더위쉼터가 제대로 운용 중인지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다른 폭염 순찰대도 이날부터 대낮 밭일에 나선 고령자나 공사장 야외 근로자, 독거노인, 장애인 등 폭염 취약계층을 찾는다. 경북도는 폭염 관련 부서와 각 시·군으로 구성된 ‘폭염대책 전담팀’도 다음 달 30일까지 운영한다. 전담팀은 지역마다 편성돼 있는 자율방재단과 이·통장 등 재난도우미와 함께 온열질환에 특히 취약한 고령층의 낮 밭일, 나 홀로 밭일 등을 하지 못하도록 집중 계도에 나설 계획이다.
안동=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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