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절반 줄 수 없다"... '비공식작전'의 숨겨진 이야기

임병도 2023. 8. 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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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비공식작전>

[임병도 기자]

 1986년 레바논 주재 한국 외교관 납치 사건을 다룬 영화 <비공식작전>
ⓒ 쇼박스
    
2일 하정우·주지훈 주연의 <비공식작전>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1986년 레바논에서 발생한 한국 외교관 납치 사건을 다뤘다. 

실화가 바탕이지만 영화의 특성상 각색이 들어간 부분도 있다. 실제 납치된 외교관의 이름은 '도재승 서기관'이지만 영화에서는 '오재석 서기관'으로 바뀌었다. 영화는 실화를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았지만 외교관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됐던 <타임> 등을 보여주며 고증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비공식작전>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구출 과정이다. 당시 언론이 보도한 기사에는 도재승 서기관이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납치돼 1년 9개월 만에 돌아왔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김성훈 감독은 지난 7월 13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 사이에 건너뛴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고 연출을 결정한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비공식작전>은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 구출작전을 상상으로 풀어낸 영화인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비정했다. 

비공식 구출작전을 주도했던 미국인의 정체는? 
 
 납치 3일 뒤에 AFP통신지국으로 온 도재승 서기관의 사진과 편지봉투. 1986년 2월 5일 <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 조선일보
 
1987년 당시 언론과 전두환 정권은 도재승 서기관이 어떻게 돌아왔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11년 뒤 1998년 <신동아>는 익명의 제보를 근거로 석방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신동아>는 도 서기관의 비공식 구출작전을 주도한 인물이 정보기관 출신 미국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미국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2013년 <신동아>는 당시 비공식 구출작전에 참여했던 미국인이 리처드 롤리스 미국 국방장관 고문 역이라며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당시 롤리스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도재승 서기관 납치 사건에 알려지지 않은 내막이 있다"며 비밀을 털어놓았다.

롤리스는 1970, 1980년대 주한 미대사관에서 중공업, 원자력, 방위산업을 담당했던 인물로 미국 정보기관 CIA 소속이었다. 1987년에 공직에서 잠시 물러나 경영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롤리스에게 당시 삼성중공업 고문을 지낸 정모씨가 찾아와 도재승 서기관을 데려와달라고 부탁했다.

정씨의 소개로 롤리스와 만난 한국 외무부 차관과 실무자들은 "도재승 서기관을 빼내는 데 1000만 달러의 몸값이 필요하다고 들었다"며 "우리는 납치범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연락도 안 된다. 돈은 우리가 대겠다. 3개월 내 데려와 달라"고 말했다.

롤리스는 친구인 빅터 샤이토를 통해 도 서기관의 생존을 확인한 뒤, 외무부에 "1000만 달러의 반값인 500만 달러면 된다. 한 달 내 도씨를 데려올 수 있다"고 했다. 롤리스와 외무부는 도 서기관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250만 달러를, 이후 귀환에 성공하면 나머지 절반인 250만 달러를 주기로 합의했다. 

도재승 서기관의 몸값 절반을 떼먹은 전두환 정권 
 
 영화 <비공식작전>에서 외교관 생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된 <타임> 잡지. (예고 영상 유튜브 화면 갈무리).
ⓒ 쇼박스
 
롤리스는 스위스 제네바로 넘어가 납치범들이 보낸 운반책을 만났다. 롤리스는 운반책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타임' 잡지를 건네주고 "도씨가 이 잡지를 들게 해 도씨를 촬영한 뒤 사진을 24시간 내 제네바로 가져오면 250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도 서기관의 생존을 확인한 롤리스는 운반책에게 250만 달러를 줬다. 돈을 운반하던 운반책은 베이루트 공항에서 또 다른 시리아 단체의 검색에 걸려 절반을 뺏겼다. 납치범들은 나머지 250만 달러만 받으면 도 서기관들을 풀어주기로 했다. 

롤리스는 외무부에 나머지 250만 달러를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돈을 주지 않았다. 롤리스가 정부 고위층에게 "약속을 지키라"고 했지만 안기부와 외무부는 서로 싸우느라 바빴고 청와대 고위층은 시간만 질질 끌었다. 

외무부는 "두 번째 250만 달러는 어렵게 됐다"고 말했고, 롤리스의 친구 빅터 샤이토가 자신의 돈으로 잔금을 치르고 도 서기관을 요르단 암만 공항으로 무사히 데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은 끝내 샤이토에게 250만 달러를 갚지 않았다. 

외교관 구출 작전은 대선 때문이었다
 
 귀국한 도재승 서기관을 청와대 영빈관에서 맞이하는 전두환. 대한뉴스 갈무리
ⓒ 국립영상제작소
 
전두환 정권은 1986년에 납치된 도재승 서기관을 오랜 시간 방치했다. 납치되고 10개월 동안은 정보 부재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그 이후에는 롤리스와 같은 정보기관 출신 등의 도움으로 얼마든지 구출할 수 있었다. 

도 서기관을 방치했던 전두환 정권이 1987년에 들어서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재승 서기관)를 살리고 전두환 정부에도 도움을 줘야 한다. 만약 그가 살아오면 대선에도 좋고 올림픽(1988년)에도 좋다" (외무부의 말을 전달한 정 모씨, 신동아 2013년 11월) 

1987년 11월 3일 도재승 서기관은 피랍 21개월 만에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전두환은 도 서기관과 가족을 청와대로 불렀고 이 모습은 뉴스와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도재승 서기관의 석방보다, 대선 전날 한국에 들어온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1987년 대선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전에 도 서기관의 귀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롤리스는 2013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정권과 그 대선후보는 정치적 이익을 누렸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은 250만 달러를 샤이토에게 갚지 않았다"면서 "외무부 차관 등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그들은 주지 않았다. 우정과 선의를 배신한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샤이토와 전두환 비자금 뉴스를 보면서 "1987년에 전두환 정권은 수억 달러의 비자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아니냐. 그런데 도씨를 구출해 준 친구의 돈 250만 달러를 떼어먹은 것 아니냐. 정말 너무한다"고 대화했던 사실도 고백했다. 

영화 <비공식작전>에서는 안기부를 희화적으로 그린다. 외교관 구출보다 권력쟁취가 우선인 그들의 모습을 영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흙수저' 외교관 하정우와 한국인 택시기사로 나온 주지훈의 고군분투는 외교관 구출작전에서 정부가 제대로 그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도재승 서기관은 납치 10년 뒤인 1997년 사우디아라비다의 지다 총영사로 다시 중동에 간다. 도 서기관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납치의 고통은 그때 그것으로 잊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훈 감독이 영화 <비공식작전>에서 외교관의 노출을 최소화했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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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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