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최고의 관종' 달리, 숨겨져 있던 진짜 모습들
[장혜령 기자]
▲ 영화 <살바도르 달리 : 불멸을 찾아서> 스틸컷 |
ⓒ 마노엔터테인먼트 |
잠들어 꿈꾸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유독 어젯밤 꿈에서 본 것이 이상하지만 생생하게 다가왔던 날. 하지만 깨어나 꿈을 서술해 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림을 그려 보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루 동안 우리가 보고 들은 것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된 기억까지 뇌에 저장되어 있다가 만들어지는 꿈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의 향연이다.
프로이트가 정립한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무의식과 꿈은 연결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는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예술사를 한 층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그중 '살바도르 달리'는 정신분석학에 심취해 독보적인 길을 걸었고, 살아생전 업적을 인정받아 인기와 부를 누린 예술가다.
▲ 영화 <스펠바운드> 스틸컷 |
ⓒ 마노엔터테인먼트 |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20세기 초현실주의라는 미술사조를 만들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눈 맑은 광인의 기이한 행동은 화가라는 하나의 직업에 국한하지 않고 조각가, 소설가, 영화제작자, 사진작가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나의 꿈은 내가 되는 것'이라며 불멸을 믿는 나르시시스트였다. 편집증적 성향, 알에 대한 집착, 그로테스크 취향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넘치는 상상력과 끓어오르는 의지, 넘쳐 흐르는 재능을 갖춘 사람이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니 세상은 환호했다.
디지털과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20세기에도 예술과 산업, 기행을 넘나들며 다채로운 활동을 이어갔다. 21세기에 살았더라면 더 유명한 관종, 인플루언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양한 작품은 밈으로 제작돼 SNS를 타고 공유되었을 거다. 그때처럼 집으로 사람들을 직접 불러 모을 필요 없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겨 직접 운영할 수 있었을 테니까. 화수분 아이디어는 츄파춥스 로고, 입술 모양 소파, 녹아내리는 시계, 새우 전화기, 밀레의 <만종> 재해석 등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고, 그의 작품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지금까지도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가 열리는 영향력 아래 파생된 문화만 해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영화업계와 협업도 많이 했다. 1929년 '루이스 부뉴엘'과는 <안달루시아의 개>를 통해 면도칼로 눈을 자르는 장면으로 영화화 법을 뒤엎었고, 다음 해인 1930년 <황금시대>를 유성영화로 제작했다. 1945년 '알프레드 히치콕'과는 <스펠바운드>에서 그레고리 펙의 꿈 시퀀스를 작업한 바 있다. 1946년 '월트 디즈니'와 협업하기도 했는데 단편 <데스티노>는 반세기 만에 완성되었다. 월트 디즈니와 살바도르 달리의 극과 극 성향은 완성된 시간만 봐도 짐작해 볼 수 있다. 현재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는데 묘한 시간의 신 크로노스와 발레리나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양들의 침묵> 포스터에도 반영되어 있다. 언뜻 봐서는 해골처럼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체 여성의 모습이 만든 착시효과가 포인트다.
▲ 영화 <살바도르 달리 : 불멸을 찾아서> 스틸컷 |
ⓒ 마노엔터테인먼트 |
영화는 '갈라-살바도르 달리 재단'이 제작에 참여해 세 명의 큐레이터의 설명과 그림, 사진, 영상을 편집해 미술사에 남긴 영향력을 서술한다. 정확히 말하면 1929년 초현실주의 그룹에서 일생의 사랑인 아내 갈라를 만나 사망하는 1989년까지를 훑는다. 전반부는 달리의 출생과 생애를 논하고 후반부는 아내 갈라를 만나 성공하게 된 계기를 들여다본다.
다만 연출적인 부분이 아쉽다. 달리를 평범하다 못해 지루한 연출로 설명만 늘어놓고 있으니까. 이러한 스타일은 전시장의 교육용 영상보다 진부했다. 또한 본인이 직접 밝혔던 스페인의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와 동성애적 관계, 갈라의 불륜으로 심한 다툼이 있었던 일화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복합적인 인물 묘사가 이루어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대신 한 여성만을 사랑했던 지고지순한 순정남의 이미지를 강하게 어필했다. 24세에 첫눈에 반한 사랑을 85세까지 지킨 로맨스를 부각했다. 갈라는 뮤즈이자 아내, 매니저,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자리까지 대신하는 모든 것이었고 아내를 모델로 한 작품의 원동력이었기에 당연한 결과다. 위대한 예술가에게 위대한 매니저가 있었음을 공헌하는 분량이 상당하다.
달리는 10살 연상이자 유부녀였던 갈라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갈라는 달리의 천재성을 알았고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지켜나갔다. 드디어 갈라가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와 이혼 후 결혼에 골인해 평생 해로 했다. 지독한 아내 사랑은 오직 갈라를 위한 발레 공연을 기획하는가 하면, 1년 동안 14세기 지어진 푸볼 성을 리모델링 해 선물해 버린다. 갈라가 오직 허락할 때만 들어가도록 서약했던 일화도 전해진다.
▲ 영화 <살바도르 달리 : 불멸을 찾아서> 스틸컷 |
ⓒ 마노엔터테인먼트 |
영화의 대부분은 창작의 밭이라 할 수 있는 스페인 피게레스와 포트리가트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상속권을 박탈 당해 포트리가트의 작은 오두막을 사들이며 주변 땅을 매입해 부부만의 궁전을 완성했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마을은 작품의 근간이 되어주었으며 삶과 예술에 미친 영향력이 상당했다.
'갈라 없는 달리는 아무것도 아니다'는 뜬소문이 진짜였을까. 아내와 본인을 동력 삼아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가 1982년 갈라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극도로 쇠약해져만 간다. 절친한 지인을 제외하고서는 은둔하며 갈라 곁에 가기 위한 준비를 해갔다. 첫사랑이자 끝 사랑으로 받아들인 결혼도 어쩌면 그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며 스스로 영원불멸을 믿었지만 그러지 못했던 유한한 천재. 자신을 죽은 형의 환생이라 믿어 물려받은 이름에서 평생을 벗어나고자 했던 사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애정결핍에 시달려 갈라와 불가분의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기묘한 찐 사랑의 주인공. 달리를 칭하는 수식어도 범상치 않다.
밀레의 <만종>에 집착해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프랑스 농촌의 목가적이고 경건한 분위기인 원작을 발칙한 성(性)적 시선으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아무도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달리 알 수가 없다. 오직 자신만이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자신감 있어 보여도 끊임없이 가족, 아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괴짜의 발버둥은 20세기 큰 족적을 남기며 화려하게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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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장혜령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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