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만난 사람]최선 다해? 남들만큼? 효율적으로?…'하·지·말·자'
이젠 무엇을 하지 않을 지 써보자
미니멀리즘, 나만의 가치로 삶 채워야
필요·의무 빼고 온전한 '나' 찾자
“나는 오로지 내 안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에 따라 살아가려 했을 뿐” - ‘데미안’
20만 구독자의 일상 관리를 돕고 있는 유튜버 ‘히조’가 해마다 다이어리 첫 장에 쓰는 다짐이다. 호시탐탐 생각 사이로 틈입하는 ‘시작했으면 끝을 내’ ‘항상 최선을 다해’ ‘남들만큼은 해’ ‘효율적으로 생각해’ 등의 의무에 잠식되지 않기 위한 다짐이다. 매일 인생이란 체크리스트에 ‘해야 할 것’을 메우며 사는 우리네 삶에 이제는 ‘하지 않기’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삶을 방관하거나 방치하자는 게 아니다. 유한한 삶에는 적정 용량이 있기에 “비워야 비로소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도 “충만해지기 위해 가뿐해”지고 “하기 위해 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그는 일상의 고찰과 깨달음을 책 ‘하지 않는 삶(웨일북)’에 담았다. 남들이 ‘투 두 리스트’를 작성할 때 ‘낫 투 두 리스트’를 작성하며 ‘비움’을 우선하는 미니멀리스트. “한 사람을 설명하는 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느냐라고 생각한다”는 그에게 질문을 건넸다.
- 책을 출간하면서 더 바쁜 일상을 보낼 것 같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요즘은 사람들과 연결된 시간을 자주 보내고 있다. 독자분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남겨주신 애정 가득한 책 후기를 읽는 것만으로 일상이 복작복작해진 느낌이 든다. 평소답지 않게 핸드폰도 자주 들여다보는데, 덕분에 많은 에너지를 얻고 있다. 그 에너지로 ‘어떤 재미있는 일을 해볼까’가 요즘 최대 고민이다. 그동안은 업무에 도움 되거나, 언젠가 써먹을 수 있는 일에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출간 후에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고민하지 않고 도전하고 있다. 힙합 댄스 학원에 등록했고, 요가도 다시 시작했다. 몸을 자주 움직이고 들뜬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되 강박을 내려놓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미니멀리즘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 최적화된 상태인가.
▲‘나’ 기준으론 최적화를 이뤘다. 미니멀리즘은 물건을 없애고 주변을 정돈하는 일을 넘어,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에 집중하는 삶이라 생각한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철학이 확고해지기 전에는 그저 물건 비우기에 집중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프리랜서가 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공간을 적절히 채우는 방법을 차차 익히기 시작했다. 종이책, LP, 아로마 제품처럼 생활에 필수적이지 않아도 집에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물건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비움과 채움의 적정선에 있다는 것을 안정된 일상을 통해 느낀다. 알람 시계 없이 일어나 아로마 버너를 데우며 명상을 하고, 좋아하는 LP를 틀어놓고 청소를 하고, 밤에 따뜻한 조명을 켜고 책이나 영화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소중한 결과다. 내가 중시하는 가치로 채워진, 홀가분하지만 적당히 밀도 있는 지금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 않는 삶’이란 제목이 인상적이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사실 그간 출간 제의가 꽤 많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이미 훌륭한 작가들이 쓴 내용이 있는데 나까지 보탤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다 미니멀라이프에 국한할 게 아니라, 가뿐하고 무해한 삶을 위한 작은 습관들을 소개하자며 편집자님께서 ‘하지 않는 삶’이란 가제로 출간 제안을 주셨고 바로 동의가 됐다. 제약 없이 뻗어나갈 수 있는 방향성이 좋았고, ‘하지 않는 삶’이란 가제를 본 순간 평생 추구하며 살아온 대상을 활자로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 인생은 아무리 지우고 지워도 끝나지 않는 체크리스트처럼 느껴진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하기’가 아니라 ‘하지 않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삶은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적정 용량이 있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는 것처럼 하기 위해선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 않는 삶’은 필요나 의무가 아닌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나의 다짐과 같다.
-"이 책은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거란 생각으로 썼다"고 했다. 혹 힘든 점은 없었나.
▲내게 ‘글쓰기’는 자꾸만 브레이크가 걸리는 유일무이한 일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온종일 모니터 앞에서 씨름하는 날이 많았다.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운동을 하고, 글만큼은 꼭 카페를 돌아다니며 쓰고, 밤마다 몇 시간씩 산책하며 내 안에 고인 것들을 덜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마지막 책일지 모른다고 한 건 과정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가까운 이들이 우울증이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일이 많았다. 웃으며 놀고 헤어져서 장난 섞인 문자까지 보냈던 친구가 몇 시간 뒤 죽음을 선택하는 걸 보면서 ‘나도 언제 죽고 싶어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그럭저럭 살아도 내일 갑자기 죽고 싶어질지 모를 일이니까. 이 책도 그런 마음으로 썼다. 내 안의 작은 티끌까지 훌훌 털어버릴 요량으로 쏟아내듯 썼다.
-프리랜서의 무게는 익숙해졌는지.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프리랜서로서의 불안감이다. 사실 얼마 전 애정하는 브랜드의 채용 공고를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입사 지원서를 냈다. 웃긴 건 불합격 통지를 받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점과 내가 떨어진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 사건으로 난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내가 프리랜서의 자유를 두려워하는 만큼 열렬히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나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 프리랜서의 삶을 지탱할 무기가 돼준다는 것. 언젠가 또 어딘가에 입사 지원서를 낼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이유는 ‘내가 원해서’일 때라는 걸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하지 않는 삶’은 결과적으로 ‘하는 삶’과 연결될 것 같다. 비워내고 덜어냄을 통한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사실 장기적인 계획은 잘 생각하지 않는 편인데 최근에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목적지만 정해지면 고민 없이 삶의 방향을 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목적의 부재가 방황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에리히 프롬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찾은 문장이 답을 줬다. ‘삶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삶의 과정이, 다시 말해 변하고 성장하며 발전하고, 더 자각하며 깨어나는 과정이 그 어떤 기계적 실행이나 성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 문장을 곱씹으며 무언가를 잘 해내기 위한 것도 좋지만, 그저 가뿐한 삶 그 자체가 목적이어도 좋지 않을까 싶었다.
-‘나를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최적의 나를 찾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발견하고 알아낸 ‘나’는 어떤 존재인가.
▲얼마 전, 지인이 내게 책을 읽고 기록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다. 잠시 고민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열린 사람이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언제나 알고 있는 사람이래. 나는 그래서 책을 읽고 기록하는 것 같아. 책을 기억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내 안에만 고여있기 싫어서 읽고, 잊고 싶지 않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는 거지." 온종일 읽고 쓰는 날엔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이란 무릇 살면서 상처로 구멍이 숭숭 뚫릴 수밖에 없는데, 내가 되고 싶은 문장들로 구멍을 메꾼 덕에 쪼그라들지 않고 이렇게 말하고 걷고 숨 쉴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 나란 사람이 내가 읽은 문장들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하면 읽는 걸 멈추기가 어렵다.
-미니멀리즘 관점에서 일상을 정돈하려는 독자들에게 도움 되는 말을 전한다면.
▲물건을 비우는 것이 주저될 때는 상자나 서랍에 넣어 2~3주 정도 그 물건 없이 살아보라. 생각나면 꺼내고, 없어도 잘 살면 그때 비워도 늦지 않다. 미니멀라이프는 몸으로 익히는 습관이기 때문에 충분히 비웠다는 생각이 들어도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게 좋다. 평소 마음이 어지러운 순간이면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을 꺼내 읽고 명상을 한다.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명상이란 단어 앞에 장벽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정기적 명상과 명상 앱을 추천한다. 명상을 매일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쉽게 몰입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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