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두고도 싶지만, 전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선흥 기자]
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5년 4월 19일자부터 시작할게요. 지난 번에 못 다한 이야기이지요.
그 때 제가 핀치에 몰렸다고 토로한 것을 기억하세요? 오해하지 마세요. 그건 내 개인적인 고충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내 자신은 봉급만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봉급을 공사관에 걸맞는 품위 유지나 손님 접대에 소모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우리 정부나 우리 국민을 위해 그런 희생을 하고 싶지도 않고 할 수도 없지요. 정부에서 예산을 방기하고 있지만 나는 어떻게든 공사관을 운영해야 하므로 일만 불의 자금을 이체해 놓았습니다.
한편 서양식 병원 설립을 기획했는데 병원이 지금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서양 의술은 한국인들에게 요술 같은 것이지요.
흥미로운 일들
병원에 가끔 들려보는데 몹시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미국인 의사 호레이스 알렌 Horace Allen이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을 눈 뜨게 하고 청각에 문제가 있는 이를 듣게 합니다. 조선인들에게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귀가 안들리는 어떤 사람을 말끔히 치료했는데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귀 속에 오랫동안 눅져있는 귓밥을 주사기와 온수로 세척했을 뿐이랍니다. 세상에! 20년 묵은 귓밥 덩이가 떨어져 나왔다나요.
대치중인 청나라 군대와 일본 군대는 둘 다 철수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정부에는 두 파벌이 대립하고 있는데 왕이 이끄는 개화파와 친청사대보수파가 그것입니다. 보수파의 뒷배는 청나라 군대입니다. 청군이 이곳을 떠난다면 보수파는 위축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만일 개화파와 보수파가 대결한다면 청.일 양군이 개입했던 지난 갑신정변과는 판이한 양상을 보일 겁니다. 외세 개입 없이 한국인 자신이 벌이는 싸움이 될테니까요. 무언가 위기가 다가오는 예감이 듭니다. 그러나 그게 유혈극이 될지 어떨지는 가늠할 수 없군요. 만일 유혈극이 벌어지면 나는 이곳을 떠나야겠지요. 최악의 경우에는 가까운 성벽을 타고 넘어 제물포로 피난 갈 겁니다.
나는 진주처럼 보이는 돌 하나를 뉴욕 Union Square 소재 티파니사의 조지 쿤즈 George F. Kunz에게 감정해 달라고 보냈습니다. 진주인지 아닌지, 진주라면 가치는 어느 정도인지를 감정하고 나서 바로 우리 집으로 부쳐달라고 했지요. 그게 진주라면 틀림없이 가치가 높을 겁니다. 빛이 영롱한 걸로 보아서.
여기에서 4월 19일 한양에서의 이야기는 마치겠습니다. 그 후 얼만 안 있어 아버지가 편지를 보내 왔는데 나의 안전에 대해 걱정이 이만 저만 아니더군요. 아버지는 내 편지가 마리에타Marietta(내 고향)의 신문 레지스터Register지에 났다고도 했어요. 5월 4일 당시의 제 육성을 들어보시겠어요?
여기선 일의 보람을 느낍니다
"아버지, 여기에서 저는 위험하지 않다고 누차 말씀드렸는데 왜 제 말씀을 못 믿으시는 거예요? 골치 아픈 일들이 허다하지만 헤쳐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조용히 지내지 못하는 저의 기질로 보아 여기 아닌 다른 곳에 간다고 뭐 다를 게 있을까요? 저는 여기에서 나름 행복하답니다. 그리고 그 신문은 왜 보내주지 않으셨어요? 제가 얼마나 궁금해 할지 모르셨어요?
빈곤과 퇴락이 넘치는 이 땅에 대하여 아버지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나라는 어느모로 보나 훌흘 떨치고 떠나야 할 그런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곳을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이 제 성미에 들어맞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왜 이러는지 제 자신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결코 돈 벌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일의 보람을 느낍니다. 해군에 복무하고 있다면 밤낮으로 임무를 수행은 하겠지만, 거기서 무슨 보람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곳은 가슴 터지는 일들이 허다하지만 그래도 저는 항상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고 어떻든 좋은 일을 할 수가 있답니다. 세상의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흡족합니다. 사나흘 일을 팽개쳐 놓고 있으면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습니다. 저의 직분과 관련하여 유일한 악(evil)은 우리 정부의 부패, 기만, 허세를 깨닫게 된다는 그 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공직을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이 든답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의 공직을 맡고 싶은 생각까지 한 적이 있지요.
유일한 치료약은 결혼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연봉 1200불로는 가정을 꾸릴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공직을 그만 두고 싶은 게지요. 해군에 들어간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곤 합니다(I sometimes bittery, bitterly regret I entered the navy.). 더 좋은 길도 없었겠지만 말입니다.
제 신변에 새로운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이곳 조선인들과는 매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늘 속 상하는 일은 이 어려운 나라에 미국정부가 했던 약속들을 굳건히 저버리고 있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로 말할 것 같으면 너무 많아 도저히 다 이야기 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맞서 싸우고 있는 음모와 술수, 암투 같은 것을 글로 다 쓸 수도 없습니다. 저에겐 많은 적이 있습니다. 저를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자들도 있구요. 항상 눈 똑바로 뜨고 그들의 동정을 살펴야 한답니다. 이 나라와 같은 복마전은 세상에 둘도 없을 겁니다. 그것들을 다 돌파하고 나면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몇 시간이 걸릴 겁니다.
참으로 특이한 점은 해외에서 유포되는 조선 소식 대개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옳바른 기사는 딱 한 번 보았을 뿐입니다. 특히 조선 정부와 백성이 서양식 진보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야말로 그 폐해가 파괴적입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정부와 백성은 신 문명이 정당하게 제시된다면 수용할 자세로 보입니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폐단은 청나라의 간섭입니다. 가짜 뉴스도 청나라의 장난이구요. 옛 것을 고수하면서 이성적 문명을 배격하는 핵심이 바로 청나라입니다. 그들이 군대를 여기에 주둔시키는 까닭입니다. 그들은 왕의 부친을 중국으로 압송하여 공포를 조성하고 친청수구파인 민씨 일족을 공포와 특혜의 수단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중국의 검은 구름이 걷히게 되면 왕과 백성은 서양문명의 좋은 점을 받아들일 겁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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