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부터 오른쪽까지… 나현수의 이유 있는 변신

양형석 2023. 8. 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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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2일 도로공사전 미들블로커-아포짓 오가며 11득점, 현대건설 3연승

[양형석 기자]

현대건설이 도로공사를 꺾고 3전 전승으로 컵대회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강성형 감독이 이끄는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2일 구미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의 A조 3번째 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1(25-22, 25-17, 15-25, 25-19)로 승리했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9번의 세트를 따내는 동안 단 한 세트만을 내주는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선보이며 A조 1위를 차지한 현대건설은 오는 4일 B조 2위와 결승진출을 놓고 다툴 예정이다.

현대건설은 이날 7명의 공격수가 번갈아가며 출전해 5명이 두 자리 수 득점을 올리는 고른 활약을 펼쳤다. 특정 선수에게 의존하지 않고 코트에 나선 선수들이 모두 제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강성형 감독을 가장 뿌듯하게 했던 선수는 따로 있었다. 미들블로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오가며 조별리그 3경기에서 44.19%의 공격성공률로 21득점을 올리는 쏠쏠한 활약을 펼친 나현수가 그 주인공이다.

입지 좁아진 국내 왼손잡이 공격수들
 
 나현수는 작년 5월 현대건설로 트레이드된 후 양효진과 이다현의 백업 미들블로커로 활약했다.
ⓒ 한국배구연맹
 
배구에서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는 오른쪽에서 넓은 각도를 낼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다. 실제로 장윤창이나 김세진 등 한국배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V리그 여자부에서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는 사실상 황연주(현대건설) 이후 그 명맥이 끊어졌다고 할 수 있다. V리그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는 외국인 선수를 위한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의 공격비중이 높은 V리그에서 대부분의 구단은 외국인 선수를 아포짓 스파이커 자리에 배치해 서브리시브를 면제시켜 주고 공격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아마시절 주목 받았던 국내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들은 프로입단 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생존을 위해 포지션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황연주를 제외한 국내 왼손잡이 공격수 중 전통적인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한 선수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도로공사에 입단한 하유정(개명 전 하준임)은 대구여고시절 188cm의 신장을 자랑하는 대형 아포짓 스파이커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도로공사에는 케이티 존슨, 밀라그로스 카브랄 같은 외국인 선수들이 공격을 주도했고 하유정은 큰 신장을 활용하기 위해 미들블로커로 변신했다. 그나마 하유정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하는 등 미들블로커로서 비교적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이제는 리베로로 국가대표에 선발될 정도로 리그에서 가장 수비를 잘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된 문정원(도로공사)은 서브리시브와 수비로 자신의 경쟁력을 찾은 특이한 케이스다.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로 도로공사에 입단한 문정원은 174cm의 작은 신장과 외국인 선수의 존재 때문에 아포짓 스파이커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브와 수비훈련에 매진했다. 그 결과 오늘날 도로공사 2인 리시브 시스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문정원이라는 성공사례가 나오면서 문정원을 롤모델로 한 왼손잡이 선수들이 리그에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여자부 최초 2라운드 신인왕 박현주(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KGC인삼공사의 이예솔 같은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들이 강한 서브를 무기로 팀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황연주의 전성기가 끝난 이후로 소속팀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는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는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컵대회서 미들블로커-아포짓 오가며 활약
 
 나현수는 이번 컵대회에서 미들블로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오가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나현수 역시 대전용산고 시절에는 성인대표팀에도 선발됐을 정도로 촉망 받던 대형 유망주였다. 184cm의 큰 신장을 가진 왼손잡이 아포짓 스파이커는 V리그에서 보기 드문 포지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나현수는 2라운드1순위로 지명순위가 밀리고 말았다. 외국인 선수의 포지션인 아포짓 스파이커 자리에서 나현수는 활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각 구단의 냉정한 판단이었다. 

실제로 나현수는 프로 입단 후에도 알레나 버그스마, 발렌티나 디우프 같은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에 밀려 아포짓 스파이커로서 출전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결국 나현수는 신장의 우위를 살리기 위해 미들블로커로 변신했는데 KGC는 미들블로커에도 한송이와 박은진, 정호영이 버티고 있어 자리를 잡기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나현수는 2022년 5월 세터 김현지와의 1:1 트레이드를 통해 현대건설로 이적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주전 미들블로커로 활약하던 정지윤의 아웃사이드히터 변신으로 양효진과 이다현을 보좌할 백업 미들블로커가 부족했다. 나현수는 지난 시즌 양효진이 코로나19 감염, 이다현이 어깨부상으로 결장했을 때 코트에 투입돼 쏠쏠한 활약을 선보이며 5시즌 만에 프로무대에서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대건설의 강성형 감독은 올해 컵대회에서 나현수의 다른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나현수는 이번 대회에서 양효진과 이다현의 백업 역할은 물론이고 최고참 황연주의 체력부담을 덜어줄 아포짓 스파이커로도 출전하고 있다. 7월 29일 인삼공사전에서 아포짓 스파이커로 교체 출전해 8득점을 올린 나현수는 2일 도로공사전에서는 미들블로커와 아포짓 스파이커를 오가며 11득점을 기록하는 알토란 같은 활약을 선보였다. 이날 나현수는 오픈공격으로 6득점, 속공으로 3득점, 후위공격으로 1득점을 올리며 기록지를 풍성하게 채웠다.

현대건설은 V리그가 개막하면 지난 두 시즌 동안 무려 1698득점을 기록했던 외국인 선수 레티치아 모마 바소코가 주전 아포짓 스파이커로 활약할 것이다. 지난 두 시즌 동안 GS칼텍스 KIXX가 치른 67경기 중 66경기에 출전했던 모마의 체력이 여전하다면 나현수는 아포짓 스파이커로서 출전기회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나현수의 존재로 인해 두 포지션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를 보유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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