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계]상온 초전도체, 성공이면 '노벨상급'
한국과학기술 인정 받을 기회‥흥분보다는 검증이 우선
최근 네티즌 사이에서 고려대를 ‘초전도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적잖이 눈에 들어온다. 세계적 연구성과가 확실한 ‘초전도체’ 개발에 성공했으니, 조만간 학교 이름도 바뀌지 않겠냐는 희화적 표현이다. 최근 발표된 연구성과를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의구심이 담겨있음은 물론이다. 반대로 연구성과를 의구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을 적잖게 볼 수 있다. 주식 시장까지 크게 요동치고 있다. 2일 국내 주식 시장은 전반적으로 급락세였지만 초전도체 테마주로 분류되는 종목이 일제히 급등했으며, 일부 종목은 투자 경고 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 주식 전문가는 “얼마 전 2차 배터리 관련주 열풍이 불었을 때처럼 시장이 요동칠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초전도체가 뭐길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어떤 물질이든 전기가 흐르는 과정에서 저항이 발생한다. 구리처럼 전기가 잘 흐르는 물질, 즉 ‘도체’를 이용해 우리는 전선 등을 만든다. 그런데 이런 도체에도 적지만 저항이 있다. 고성능, 고출력 전자제품을 만들 때 이 저항은 커다란 벽이 된다. 전기저항을 조금이라도 낮출 방법을 찾기 위해 과학기술자들은 수없이 머리를 싸맨다. 그런데 초전도체란 이런 전기저항이 완전히 '0'이 되는 물질을 뜻한다.
일부 사람들에게 오해가 있는데, 초전도체를 개발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초전도체는 과거부터 있었다. 이미 초전도체를 이용한 수많은 발명품도 개발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병원에 가면 볼 수 있는 자기공명영상(MRI) 장비다. 초고속 자기부상열차 등에도 사용된다.
문제는 조건이다. 지금까지 개발된 초전도체는 영하 243도 이하의 초저온과 초고압의 특별한 장치 내에서나 동작이 가능했다. 그래서 영하 243도보다 더 차가운 물질인 액체헬륨을 이용해야만 제 성능을 낼 수 있다. 즉 전기저항을 없애기 위해 값비싼 액체헬륨을 계속 투입해야 하는 불합리를 감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MRI 검진 가격이 비싼 것은 사실 액체헬륨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이는 초전도체를 산업 곳곳에 완전히 투입하는 것에 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만약 상온, 즉 일상 온도에서 동작하는 초전도체가 개발된다면 MRI 가격은 지금보다 몇십 배는 낮아질 것이다. 그뿐 아니다. 미래의 에너지원으로 각광 받고있는 ‘핵융합’ 장치도 초전도체를 기반으로 개발되고 있다. 사실상 미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이 밖에 초고성능 컴퓨터 개발 등 응용분야는 실로 무궁무진하다.
고려대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초전도체는 뭘까. 정확히는 고려대 출신 연구진이 설립한 ‘퀀텀에너지연구소’ 연구진이 개발한 ‘LK-99’이라고 하는 물질이다. 이곳 연구진은 지난달 22일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일상적인 온도 및 대기압 조건에서 초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 즉 초전도체에 관한 논문을 공개했는데, 이 논문을 세계 각국의 연구진이 살펴보며 여러 의견을 내 놓으면서 일약 전 세계의 관심을 받게 됐다.
초전도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11년이다. 네덜란드 물리학자 헤이커 카메를링 오너스가 영하 269도에서 수은의 전기저항이 극도로 낮아지는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그 이후 과학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극저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누구도 이 문제를 해결한 적이 없었다. 과학계에서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사람을 찾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2020년 미국 로체스터대 랑가 디아스 교수가 영상 15도에서 초전도성을 보이는 물질을 만들었다고 세계적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 역시 데이터가 조작된 논문으로 드러났다. 즉 상온 초전도체란 주제는 100년 이상 지속돼 온 과학계의 ‘오래된 떡밥’이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연구에 성공했다고 국내 연구진이, 그것도 국내 정상급 대학 중 하나인 고려대 관련 연구진이 발표했다니, 화제의 중심에 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카이브는 동료평가를 거쳐 검증된 논문을 공개하는 공식 학술지가 아닌, 누구나 논문을 검증 없이 올릴 수 있는 ‘사전공개’ 사이트다. 이곳에 논문을 올렸다는 이야기는 “우리의 연구성과가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논문을 세계 과학기술자들에게 검증받고 싶다”는 이야기에 가깝다.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다는 이야기다.
LK-99에 대한 세계 과학기술계의 현재 평가는 어떨까. 아직은 갑론을박이 오간다. 실제로 상온 초전도체일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 그리고 상온 초전도체일 가능성은 작지만 특이한 신물질을 개발한 것은 맞는다는 평가로 나뉘어 제기되고 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추가적인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전 세계 과학기술진이 달려들고 있는 만큼 LK-99에 대한 검증은 조만간 이뤄질 것이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도 2일 성명을 내고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검증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했다.
LK-99는 진정한 상온 초전도체가 맞을까, 아니면 100여 년 역사가 증명하듯 이번에도 단순한 웃음거리로 끝이 날까. 이는 세계 전문가들의 검증에 달려있다. 내심 이번 연구성과가 인정받아 한국 과학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때까지 우리가 할 일은 차분히 기다리는 일이다. 지금 주가가 들썩이기엔 너무나 빠르다.
전승민 과학기술 전문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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