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심판만 보이고, 선수가 안보인다

김필수 2023. 8. 3.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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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정부 때 금융권 4대 천황이 회자됐다.

KDB산은지주(강만수), KB금융지주(어윤대), 하나금융지주(김승유), 우리금융지주(이팔성) 등 금융지주 회장 4명을 일컫는 별칭이었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4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 회장에 내부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금융지주 회장 후계구도와 관련해 금융권은 이 원장의 입만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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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그립 전보다 세져
그 중심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업계에서조차 "금융지주 회장, 행장이 누구야?"

이명박(MB) 정부 때 금융권 4대 천황이 회자됐다. KDB산은지주(강만수), KB금융지주(어윤대), 하나금융지주(김승유), 우리금융지주(이팔성) 등 금융지주 회장 4명을 일컫는 별칭이었다. MB 인맥으로 분류되던 그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인사권을 틀어쥐고 금융계를 장악했다. 지주사 밑에 은행을 필두로 증권, 보험, 카드, 저축은행, 캐피탈 등 사실상 전 금융권을 거느리고 있으니, ‘금융계 장악’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았다. 관치와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4대 금융지주(KB, 신한, 하나, 우리) 회장에 내부인사들이 자리를 잡았다. 관치와 낙하산 지적은 잦아 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배구조에 대한 우려는 오히려 더 커졌다. 내부출신인 만큼 조직 장악력은 더 굳건했고, 이른바 자기 사람들로 이사회를 채우며 견고한 ‘참호’를 구축했다. ‘셀프 연임’, ‘왕정 체제’라는 비난이 쏟아진 이유다.

이제 윤석열 정부다. NH금융지주까지 5대 금융지주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그립이 매우 세졌다. 회장 선임 등 지배구조에서부터 은행 점포, 금리 가이드까지, ‘감 놔라, 배 놔라’가 심해졌다. 그 중심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있다. 칼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순 없지만, 사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 문제는 금감원장보다는 금융위원장의 업무영역에 가깝다. 지금은 이런 영역에도 이 원장의 그림자만 보인다. 검사 출신인 이 원장은 거칠 게 없다. 금융지주 회장, 금융회사 CEO를 만나는데 주저함이 없다. 감독당국 수장이 피감기관 수장을 만나는 게 편치 않음에도 흔쾌히 나간다. 그리고 현안에 대해 쾌도난마한다. 인사성 밝게 머리를 조아리지만, 금융권 개혁을 향한 비수를 숨기고 있다.

이 원장이 배드캅(bad cop)이라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굿캅(good cop)이다. 김 위원장도 금융회사 지배구조 등에 코멘트를 하지만, 원론적 수준에 가깝다. 성격 좋은 김 위원장은 융화를 강조한다. 때로 금융위 직원들이 금감원 직원들의 월권성 업무집행을 하소연하면, 김 위원장은 “다 잘해 보자는 거 아닌가”라며 달랜다는 후문이다. 김 위원장과 이 원장은 거의 날마다 연락하며 현안을 논의한다 하니, 김 위원장의 암묵적 지지 하에 이 원장이 총대를 맸다고 봐도 무방하다.

금융지주 회장 후계구도와 관련해 금융권은 이 원장의 입만 보고 있다. 신한지주와 우리지주 때 이미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서다. 그리고 그 중 이 원장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오는 11월 임기만료되는 윤종규 KB지주 회장 후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나마 짜임새 있는 후계 로드맵을 갖추고 있는 KB지주인데, 이 원장은 지난 6월 한 행사에서 "KB금융은 상대적으로 승계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으나, 조금 더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발견돼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보기에 따라 다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감독)당국의 ‘사전감독, 사후검사’ 강도가 워낙 세지면서 신(新)관치 논란이 일고 있다. 관(官)의 그림자에 가려 민(民)의 존재가 희미하다. 한 금융사 CEO의 말이다. “요즘처럼 금융회사 수장들의 존재감이 쪼그라든 적이 있을까. 업계에서조차 금융지주 회장과 행장이 누구인지 모를 정도다” 심판만 있고, 선수는 안보이는 경기장에 관중인들 오겠나.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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