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킬러규제’ 도려내기 [최준선의 Zoom-In]

데스크 2023. 8. 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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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밖 '킬러 문항' 배제는 '공정'의 문제
금융분야의 킬러규제 ‘은산분리’
사후관리와 감독으로 방향전환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관한 제18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

재수생으로서 2016학년도 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한 학생이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수학 영역의 29번까지는 쉬웠는데 (마지막 문제인) 30번 한 문제를 푸는 데 (100분의 수학 시험 시간 중) 약 1시간을 그 문제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평소 어려운 문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 쉬운 문제들은 의식적으로 빨리 푸는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이 학생은 고등학생 때는 학원을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았는데, 수학 과목만은 학원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수험생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초고난도 문항을 교육계에서는 ‘킬러문항’이라 부른다.

지난 6월 정부가 ‘킬러문항 배제 정책’을 발표했다. 진작에 했어야 했다. 전국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킬러문항을 가르치지 않는다. 교육부가 설명하듯이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출제 근거가 없는 문항이 킬러문항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항은 사설 학원에나 가야 접해볼 수 있는데, 킬러문항을 다루는 학원 자체가 없는 시·군·읍도 많다. 이 학생들에게 서울 명문대 입학은 그저 남의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킬러문항 배제는 공정(公正)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는 수능에서의 킬러문항뿐 아니라 경제분야에서의 ‘킬러규제’도 없애기로 했다. 국무조정실은 7월 14일 방문규 실장 주재로 경제단체, 민간협회 등과 킬러규제 혁신 TF 2차 회의를 열고, 15개 ‘킬러규제’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기업투자를 가로막는 걸림돌을 없애고 경제 활성화를 촉진시키겠다는 취지에서다. 내용을 보면 대표적 규제인 화평법·화관법, 기업 규모·업종 차별적 진입 규제 등이 포함되어 있어 내용이 좋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은 빠져 있어 아쉽다.

공교육 밖 '킬러 문항' 배제는 '공정'의 문제

킬러규제로 지목된 15개 항목 중에는 ‘금융분야 진입규제’라는 것도 있다. 2쪽짜리 보도자료만으로는 이것이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정부가 최근 통신업과 은행업에 경쟁 활성화가 필요하다면서 제4이동통신사업자와 신규 시중 은행 허가 방침을 발표한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두 업종이 과점 상태라서 경쟁이 불충분하고 초과 수익을 내고 있다는 인식이 그 배경이 아닌가 한다. 이동통신업은 이통3사와 알뜰폰 업체까지 가세하여 이미 시장이 포화상태라 대규모 초기 투자가 불가피한 이 사업에 신규진입을 하고자 하는 기업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금융분야 진입규제’ 완화는 특히 국내 은행들이 고금리 이자장사를 통해 과도한 실적 잔치를 벌인다는 정치권의 비난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는데 시중은행이 이에 따라 이자율을 올려주지 않으면 정책효과가 없다. 은행이 이익을 본 것은 보통예금처럼 이자가 거의 없는 요구불 예금의 이자율은 변동이 없는데, 대출이자가 고금리로 전환된 상태에서도 대출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데 따른 것이다. 기준금리가 높아지는 시기에는 일반적으로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것은 상식이며, 자금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예대금리차가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 이는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당국이 은행업을 개방하여 은행들이 많아져서 은행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 예대금리차가 낮아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경쟁이 가능하려면 금융기관(은행) 수가 엄청나게 늘어야 하며, 이렇게 되면 감독에 허점이 생기기 마련이고 부실은행의 난립으로 금융위기가 초래될 위험이 커진다.

은행의 수익율도 한결같지는 않고 해마다 다르다. 한국 기업의 평균 이익률도 미국 기업들의 그것에 비하면 3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고, 은행 자본수익률도 미국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는 15년 전부터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하고, 부산을 ‘아시아 금융허브’로 육성하기 위해 외국계 대형 금융사를 유치한다고 했지만, 이러한 노력과는 반대로 시티은행은 2021년 한국에서 철수했다. 이처럼 돈 못버는 한국 기업 및 은행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은 바보든가 아니면 지독한 애국자일 것이다. 한국 금융업이 지리멸렬한 원인 분석 없이 시중은행 숫자만 늘린다고 혁신이 될 것인가. 다만, 이미 있는 지방 은행을 시중 은행으로 전환시키는 것 정도는 의미있다고 본다.

금융분야 킬러규제 ‘은산분리’…사후관리와 감독으로 방향전환해야

금융분야의 킬러규제라면 ‘은산분리’ 규제가 있다. ‘은산분리’ 규제는 본래는 금산분리 규제의 한 가지 내용이었으나, 현재 한국은 엄밀한 의미에서 금산분리는 철저히 관철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은산분리’가 맞다. 금산분리의 논리는, 본래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소유하면 재벌이 은행을 사금고화하여 재벌의 무분별한 사업확대로 시장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고, 혹시 과도한 투자로 재벌그룹이 도산에 이를 경우 금융소비자에게도 피해가 갈 우려가 커서 이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현행 금융감독 시스템과 공정위의 엄밀한 감시로 계열사 간의 거래 자체가 심하게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발생이 불가능한 사태를 가정하고 법률을 운용하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심지어 은산분리는 차별적 규제이기도 하다. 산업과 금융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2020년 핀테크 기업의 인터넷은행을 허용하는 인터넷전문은행법이 제정되었다. 인터넷전문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자본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의결권 있는 주식을 최대 34%까지 보유하여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는 산업자본이 은행 주식을 4%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인터넷 은행에 대한 차별적 우대조치를 폐지해 전통 금융기관 수준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다. 전통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수준을 인터넷 은행 수준으로 완화해 달라는 것이다.

시급한 것은 현재 최대 15~20% 수준인 금융지주회사의 비금융회사 지분투자 제한 비율을 30~50% 수준으로 확대하거나 지배력을 갖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분투자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

킬러규제 혁신 TF가 발굴한 ‘15개 킬러규제’ 중에는 ‘플랫폼산업 진입규제’도 들어 있는데, 금융회사가 플랫폼회사를 설립·편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터넷전문은행과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행처럼 공정거래법,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등 3중 규제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간 교류를 원천봉쇄할 것이 아니라, 은산분리를 완화하되 사후관리와 감독으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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