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수박은 깨뜨려야 맛있다

서지영 2023. 8.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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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은 속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박 고르는 법에 다들 관심이 많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박 고르는 법의 내용이 대체로 맞기는 하지만, 일부 비과학적인 사실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한두 가지만 지적하겠습니다.

“수박에 암수가 있고, 암수박이 맛있다.” 틀렸습니다. 수박꽃은 암수딴몸입니다.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핍니다. (극히 일부의 수박꽃이 암술 곁에 수술을 두기도 합니다.) 수꽃은 그냥 시들고, 암꽃은 시들면서 수박을 답니다. 수박은 암수의 수정으로 얻어지는 ‘결과’이지 수박에는 암수가 따로 없습니다.

수박 꼭지 반대편에 꽃이 달렸다가 떨어진 자리가 있는데, 이를 사람들이 배꼽이라고 부르고, 배꼽이 작으면 암수박, 배꼽이 크면 수수박이라고 주장합니다. 배꼽은 꽃이 있던 자리이니 꽃자리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합니다. 꽃자리. 예쁜 이름이지 않습니까? 꽃자리가 크고 작은 것은 수정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꽃자리가 크면 수박 안에 심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꽃자리가 작은 수박을 고르는 게 요령이기는 합니다만, 문제 있을 정도로 꽃자리가 큰 수박은 마트에서 좀처럼 발견되지 않습니다. 생산지에서 관리와 선별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누렇게 변색된 자국이 있는 것은 햇볕을 덜 보아서 그런 것이다.” 틀렸습니다. 이런 수박을 농업 용어로 일소과(日燒果)라고 합니다. 햇볕을 덜 받은 것이 아니라, 햇볕을 너무 강하게 받아서 회갈색으로 변한 것입니다. 일소과는 맛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만, 이런 수박은 시장에 거의 나오지 않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등외 수박을 빼내어 유통시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수박이 흙에 닿아 누렇게 물드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맛칼럼니스트로서 제가 말하는 것은 상식적인 보통의 경우임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수박 꼭지가 마르지 않은 것을 골라야 한다.” 싱싱한 수박의 기준이기는 한데, 이제는 의미가 없습니다. 요즘은 수박 꼭지를 짧게 자르기 때문입니다. 꼭지를 바짝 잘라서 그 자리에 스티커를 붙인 수박도 있습니다. 수분 증발을 방지하는 것인데, 꼭지가 붙어 있는 것보다 이런 수박이 낫습니다.

예전에 수박은 T자형 꼭지를 달고 있었습니다. 싱싱한 수박이라는 징표였습니다. 수박을 수확할 때에 꼭지가 잘리거나 꺾이면 싼값에 내놓아야 했습니다. “수박이 2만원이면 꼭지가 1만원이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T자형으로 꼭지를 자르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600억원이 넘는다는 정부 발표도 있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T자형 꼭지는 좋지 않습니다. 수박을 점점 맛없게 만듭니다. 수확된 수박은 살아 있는 상태이고, 그래서 호흡을 합니다. 수확된 수박은 물을 올리는 뿌리가 없고 광합성을 하는 잎이 없습니다. T자형 꼭지는 줄기이고, 이 줄기가 살아야 하니까 수박의 수분 등을 빼앗습니다.

수박의 T자형 꼭지는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손해를 끼칩니다. 제가 T자형 꼭지 문제를 처음 인지한 것이 1990년대입니다. 틈만 나면 이를 바로잡기 위해 글을 남겼습니다. 2000년대 들어 꼭지 없는 수박이 시장에 나왔다가 소비자 반응이 시들하여 바로 거두어들인 적도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뮨파’ 등 정치 모리배에 의한 인식 공격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에 엉뚱하게 T자형 꼭지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 주장이 틀렸다고 그들이 공격을 한 것인데, 그들 덕분에 많은 시민이 T자형 꼭지의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T자형 꼭지를 붙인 수박은 시장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저에 대한 비열한 인식 공격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낸 ‘뮨파’ 등 정치 모리배의 가당찮은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수박 재배 농가를 취재하며 ‘수박밭에서 수박 맛있게 먹는 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수박에 금속성 물질이 닿으면 맛이 약간 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수박에 칼을 대지 않고 깨트려 먹습니다. 수박을 머리 위로 들었다가 돌멩이 위에다 내리치는 겁니다. 수박이 팍~! 하고 깨지는 통쾌함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수박은 깨뜨려야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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