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거꾸로 가는 건설산업
안전사고에 관한 이론 중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작은 사고가 잦으면 언젠가 큰 사고가 발생한다는 통계적 발견을 의미한다. 멀쩡한 아파트가 무너지는 후진국형 사고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발생했다. 약 30년 전 삼풍백화점과 같은 끔찍한 대형 참사가 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과연 안전한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4월 LH가 발주한 김포 검단 아파트 현장에서 콘크리트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철근의 누락 시공이 원인으로 파악됐고, LH 전수 조사 결과 15개 단지가 추가로 더 나왔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LH와 연관된 건설 카르텔이라는 이익 집단의 병폐로 진단하고 있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진단이다.
작년에도 대형 참사가 발생한 광주 학동 아파트 현장과 이번 사고 현장은 공통점이 있다. 보가 없는 무량판 구조체라는 특징과 콘크리트 강도가 설계 기준 강도에 턱없이 못 미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건물을 떠받치고 있는 바닥판과 기둥에 문제가 생기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무량판 구조 아파트 현장을 전수 조사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건설업은 제조업과 다른 산업이다. 제품을 생산하는 업종이 아니라, 과정을 관리하는 업종이다. 다시 말해 상품(product)이라는 결과물보다는 공정(process)이라는 과정이 중요하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아파트는 건설회사가 무조건 잘 팔아야만 하는 상품이 돼버렸다. 즉, 아파트 건설업은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해진 형태로 탈바꿈하게 된 셈이다.
이렇다 보니, 과정을 관리해야 할 기술력은 뒷전이고, 분양률 높은 상품을 파는 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 아파트 현장에서는 시공 엔지니어가 준공 때까지 도면을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결과물을 찍어내는 데 최적화돼 있어 굳이 과정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 때문이다. 철근 배근이 제대로 설계도에 반영이 되었는지, 레미콘 강도가 제대로 발현되었는지를 챙기기보다는 분양률을 높이고, 원가를 절감해야 하는 노력이 더 중요한 일이 돼버린 결과이다.
무량판 구조는 벽식 구조나 라멘식 구조의 아파트와 달리 철근 배근과 레미콘 강도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몰랐다면 엔지니어로서의 직무를 내팽개친 셈이고, 알고도 방치했다면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비용절감이 한 현장의 성과를 좌우하다 보니 과도한 원가절감 경쟁은 과정을 관리해야 하는 건설업의 본분을 망각하는 사태로까지 번진 것이다.
물론 작년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철근과 레미콘 품귀 현상으로 건설현장에서는 원가부담의 압박이 심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더군다나, 아파트는 입주예정일을 지키지 못하면 시공사가 막대한 손실을 안게 되는 구조도 이와 같은 부실을 초래한 원인으로도 볼 수 있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1차적인 책임은 시공사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책임 추궁과는 별개로 한국의 건설산업에 대한 구조적 한계를 짚어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시급히 다뤄야 할 건설산업의 해결 과제로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현장 노무 인력에 대한 관리 제도의 정비이다. 현재 어떤 건설현장도 외국인 인력에 의존하지 않고는 운영이 불가능하다. 이들은 비숙련공이 대부분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울 뿐 아니라, 기술 축적도 쉽지 않다. 이들 해외 노무 인력의 수급에 관한 공론화를 통해 산업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둘째, 우수 인재 유출 방지 대책의 마련이다. 건설산업은 국가 기간 산업이다. 고급 우수 인재의 양성 및 그에 걸맞은 대우가 필수적이다. 정부의 기술 투자는 반도체, 인공지능 등 첨단인력에 대한 투자에 치중하고 있다. 초고층 건물이나 대형 터널 및 교량 등 사회 인프라 시설의 공급과 관리는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셋째, 아파트 감리 또는 건설사업관리(CM)제도의 개선이다. 현재 주택법과 건설기술진흥법상 감리자나 건설사업관리자는 시공사가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를 감시하는 역할이 부여되어 있음에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효성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시급하다.
대한민국의 건설산업이 크게 도전받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저당잡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거꾸로 가는 한국의 건설산업이 하루빨리 정상화될 수 있도록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데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차희성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수 벤 "아이 낳고 6개월만에 이혼 결심…거짓말에 신뢰 무너져" - 아시아경제
- '초가공식품' 패푸·탄산음료…애한테 이만큼 위험하다니 - 아시아경제
- '북한강 시신 유기' 현역 장교는 38세 양광준…머그샷 공개 - 아시아경제
- '이렇게 많은 돈이' 5만원권 '빽빽'…62만 유튜버에 3000억 뜯겼다 - 아시아경제
- "저거 사람 아냐?"…망망대해서 19시간 버틴 남성 살린 '이것' - 아시아경제
- "'김 시장' 불렀다고 욕 하다니"…의왕시장에 뿔난 시의원들 - 아시아경제
- 아파트 지하주차장서 벤츠 전기차 화재…"배터리 중국산 아닌데?" - 아시아경제
- "범죄증거 있으니 당장 연락바람"…대구 기초의원들 딥페이크 협박피해 - 아시아경제
- "언니들 이러려고 돈 벌었다"…동덕여대 졸업생들, 트럭 시위 동참 - 아시아경제
- 올해 지구 온도 1.54도↑…기후재앙 마지노선 뚫렸다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