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임성근 탄핵, 헌재 올 일 아니었다" 국회대리 변호사 소회 [박성우의 사이드바]
법률의 위헌 여부가 이슈화할 때마다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18년 6개월간 근무한 노희범(57·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다. 많은 헌법연구관이 헌재를 나온 뒤 로스쿨 교수 등의 길을 걸었지만, 노 변호사는 헌법 소송을 대리하는 몇 안 되는 변호사 중 한 명이다.
노 변호사는 최근 이상민 장관 탄핵심판 사건에서 국회 측 대리인을 맡았지만, 애초에 이 사건은 헌재로 가져올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무적으로 해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립한 임성근 전 부장판사 탄핵 건도 마찬가지다. 이미 사직할 판사의 탄핵심판을 청구해 각하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문제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치의 실패이고,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말이나 법률이 아니라 진짜로 국회가 선진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탄핵 제도 자체가 남용될 소지는 없다고 했다. 우리 탄핵 조건이 해외보다 상대적으로 까다롭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다양한 헌법 소송에 관해 물어봤다.
Q : 헌법연구관 출신 변호사가 많지 않은데요.
A :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보니 법원·검찰 같은 다른 법조 직역은 지방 근무가 있어 가족이 떨어져 살아야 하고, 또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마침 헌재 연구관들은 주말이나 야간에 학위과정 공부하는 것을 독려하는 분위기여서 헌재에 가게 됐습니다.
Q : 헌법 소송만 맡는 건 아니죠.
A : 헌법 사건은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개인이 헌법소원을 낸다고 해서 당장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헌법 소송은 공익적인 성격이 강해서, 헌법 소송만 대리하면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웃음). 비율로 보면 전체 수임 사건의 20~30%는 헌법 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Q : 최근 이상민 장관 탄핵심판 사건에서 국회 측을 대리하셨어요.
A : 그렇습니다. 제가 야당을 대리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국회를 대리했습니다. 특정 정당을 변호한 게 아니에요. 최근엔 민주당이 주도해서 통과시킨 결의안이나 법률안에 대해서 변호했지만, 사립 외국어고등학교 16곳이 “강제로 일반고로 전환하는 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이라든가, 베트남전 참전용사의 전투 수당 입법부작위 사건도 맡았습니다.
이상민 장관 탄핵소추가 되면서 탄핵이 남발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데요.
남발은 될지 몰라도 제도 자체가 남용될 소지는 없다고 봐요. 사실 임성근 부장판사 사건이나 이상민 장관 건은 탄핵심판까지 올 사안이 아니었어요. 임 부장판사는 법원에서 나갈 예정이었는데 무슨 탄핵을 해요. 이상민 장관도 과거 사례를 보면 사임하거나 했지 탄핵까지 올 일이 없었죠. 이상민 장관이 헌법과 법률을 실제로 위반했는지를 떠나, 야당이 가만있을 수 없으니까 한 것으로 보여요.
양원(兩院)제 국가에선 하원이 탄핵소추하고, 상원이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면 다수당이 누구냐에 따라 정치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니 갈등이 심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탄핵을 사법기관인 헌재에서 하도록 해놔서, 정치적으로 파면 여부가 결정되는 남용 여지는 없다고 봐요. 게다가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돼요. 얼마나 어려워요.
Q : 검수완박법에 대해 헌재가 ‘절차는 위법한데 입법 효력은 있다’고 결정했습니다. 모순이 아닌가요.
A : 그 절차가 뭐냐면 상임위 단계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었는데 실제 법안이 통과된 본회의는 하자가 없었다는 것이거든요. 아마 본회의 과정에서도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고 하면 위헌이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렇지만 권한쟁의심판은 재판관 5명 이상의 찬성으로 되다 보니까 이미 시행된 법률을 (선출되지 않은 재판관) 다섯 명이 무효화시키는 결과가 된단 말이에요. 그런 이론적인 문제도 있어요. 그래서 헌재에선 국회의원 간 절차적 하자가 있더라도 법이 다수에 의해서 통과된 이후에는 입법 자체를 무효한 경우는 지금까지 없고,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게 지금까지 헌재의 입장입니다.
Q :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은 낙태 위헌, 대학입시 소수인종 우대 정책 위헌 등 영향력이 큰 판결을 잇달아 내놨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헌재는 좀 역동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일단 제도의 차이를 보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법관 9명 중 5명 이상이면 위헌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헌재는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 동의해야 위헌이나 무효 확인 결정을 할 수 있어요. 그만큼 우리 헌재는 위헌 결정이나 기존의 것을 뒤집는 결정을 하기가 미국보다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쟁점 사건이 이념적이라 파급 효과가 더 커 보일 수 있어요. 낙태·총기 소지·소수인종 정책 같은 것 말이죠. 우리는 보수, 진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파당적·정파적 입장일 때가 많아요. 여당이냐 야당이냐, 대통령과 가깝냐, 뭐 그런 사건들이잖아요. 우리 헌재는 오히려 영화 검열제를 없애는 등 표현의 자유 영역을 굉장히 철저하게 보호해줬어요. 언론출판의 자유도 그렇고요. 어떤 분은 그런 말도 해요. 지금 K-드라마, K콘텐트가 이만큼 발전하고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치는 데는 헌법재판소도 큰 역할을 했다.
Q : 헌법은 민법이나 특별법처럼 조문이 세세하지 않고 추상적이어서 법조문대로 판단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헌법은 일반 법률처럼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한 나라의 권력관계, 그다음에 국민의 기본권, 이런 걸 큰 틀에서 정해 놓고 나머지는 국회에서 법률로 구체화하도록 하고 있죠. 국회가 시대의 변화라든가 당시의 필요성 등에 따라서 계속 변화시킬 수 있게 해놓은 거죠. 그래서 헌법의 가장 큰 특징이 이런 개방성이에요. 예를 들어 사형제도를 합헌이라고 했다가 위헌이라고 한다고 해서 우리 헌법이 바뀌는 건 아니에요.
헌법은 고정불변의 가치나 의미만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변화하고 있고, 헌법재판소가 그런 변화를 헌법 재판을 통해서 충실히 구현해내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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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드바(sidebar)는 미국 법정에서 판사가 재판 진행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때, 또는 검사나 변호인이 배심원들을 피해 판사에게 직접 얘기하고 싶을 때, 법대 앞에 모여 논의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문업계 용어로는 메인 기사 옆에 붙는 ‘해설 박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제의 법조인들을 열심히 만나고, 열심히 해설하겠습니다. 2주 뒤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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