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통치술의 핵심, 공익과 사익의 구분

2023. 8. 3.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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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전 주미대사

공익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법과 제도 활용해 사익 추구
행태 세계적으로 만연해 있어

사익 추구는 인간의 본성이라
법치만 강조해서는 해결 어려워

국가 운영에는 공익과 사익을
구분하는 술치가 중요한데
지도자는 이를 유념하고 있어야

4대강 보 해체 또는 유지 문제가 부각되고 있다. 이를 주장한 사람들은 모두 공익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법과 제도를 활용한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 즉 사익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사익을 법과 제도를 이용해 추구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가 운영에서 공익과 사익을 구분하는 술치(術治)가 결정적으로 중요해지는 이유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61년 고별 연설에서 특별히 군산복합체에 대해 언급했다. 군부와 산업계가 합작해 군사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데 대한 언급이다. “정부는 군산복합체의 정당하지 않은 영향력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이 복합체의 파괴적 영향력은 이미 우리 사이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군사력은 전쟁을 하는 데가 아니라 전쟁을 하지 않는 데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존 F 케네디 대통령 이후 미국의 군부와 산업계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강화해 나갔다. 이들은 결국 실패로 끝난 월남전과 이라크전쟁을 일으켰다.

공익을 버리고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계속 퍼져나갔다.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는 사익을 취하는 행위가 법과 제도를 이용한 데서 비롯됐다. 이것이 당시 금융위기를 분석한 베스트셀러 ‘자본가들로부터 자본주의를 구하자(Saving Capitalism from the Capitalists)’의 결론이다. “시장경제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시장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내부 집단주의적 행동이다.” 미국 금융가, 의회, 행정부가 공익을 버리고 사익을 취하는 내부 집단주의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빈부격차는 계속 커지고 사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은 능력 있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고, 지도자는 공익 즉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러나 서양 정치에서 점차 공익 우선이라는 전제가 사라지고 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국민의 의회 지지율은 20% 안팎에 그친다. 국회의원들이 공익 즉 국민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재선, 즉 사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은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제도 개선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 본성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

송나라 때 사회주의와 보수주의 정책이 대립하면서 복수정당제도 도입이 검토된 적이 있었다. 구양수(1007∼1072)는 ‘복수정당’을 건의하는 입장이었다. 그의 주장은 그의 붕당론(朋黨論)에 근거한다. “군자는 당파를 형성하지만 공익을 추구한다. 소인은 당파를 형성해서 사익을 추구한다.” 복수정당제는 수용되지 않았다. 군자의 수준에 이를 수 있는 자는 극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소인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정당인도 결국 사익에 빠지게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는 “군자는 공익을 추구하며 편을 만들지 않는다. 소인은 편을 만들고 사익을 추구한다”는 논어에 담긴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과 일치한다.

그러므로 법치와 더불어 술치가 중요하게 된다. 중국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재상이자 사상가 신불해(申不害)는 술치가 부국강병의 첩경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익을 해치고 사익을 추구하는지 살펴보고 바로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술치는 전국시대를 거쳐 동양에서 인사행정과 관료제 확립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법과 제도가 갖춰졌다고 해서 술치의 역할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공익과 사익의 갈등은 인간 본성에 따라 언제나 어디서나 계속 존재하기 때문이다. 군산복합체와 금융위기에 관련된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사익을 노리고 있지만 모두 공익을 위한다고 하면서 법과 제도를 이용했다. 법치를 활용해 술치를 위반한 것이다.

서양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정복국가와 중세의 종교국가를 거쳐 17세기 베스트팔렌조약 이후에야 비로소 민족국가의 출현을 보게 됐다. 민족국가의 출현이 뒤늦은 서양에서는 법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집단주의가 사익을 옹호하는 법을 만들어내는 것에 대해서는 법치라는 제도는 무능하다. 법치만 주장하는 서양 선진국을 롤 모델로 삼는 시기를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법은 중요하다. 그러나 21세기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지도자는 공익과 사익을 구별하는 술치에 대한 이해를 가져야 한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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