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고성장 시대’ 벌써 내리막길 탔다
충전 인프라·화재·高가격에 발목
내연차 퇴출 예상보다 늦어질수도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던 글로벌 자동차 패러다임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도로를 달리는 전기차는 10대 중 1대도 안 되는데 벌써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살 사람(얼리어답터 성향 구매자)은 다 샀다”는 말까지 나온다. 여전히 부족한 충전 인프라, 화재 위험, 높은 가격, 보조금 축소 등이 전기차 대중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2일 시장조사업체 모터인테리전스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에 미국에서 전기차 55만7330대가 판매돼 전년 동기 50% 증가했다. 판매량은 늘었지만 증가율은 2021년(94%)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5.8%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여전히 큰 잠재성이 있지만 벌써 성장세가 꺾여 버렸다. 테슬라, 포드 등 주요 전기차 업체가 시장 선점을 위해 차 가격을 큰 폭으로 할인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2분기 기준 미국 전기차 창고엔 1년 전보다 4배나 많은 9만2000대의 전기차가 쌓여있다고 한다.
중국, 유럽 등 전기차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던 지역도 비슷하다. 중국의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93%에서 올 상반기 44%로 줄었다. 현대자동차·기아의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7만1240대로 1년 전보다 오히려 8.6% 감소했다. 한국시장도 다르지 않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의 전기차 판매량은 7만8466대다. 상승폭은 13.7%다. 지난해 증가율(75.6%)에 턱 없이 못 미친다. 이 기간동안 현대차 아이오닉5 판매량은 32.8%(1만4179대→9534대), 기아 EV6는 11.3%(1만2009대→1만653대) 감소했다.
시장조사업체 EV볼륨즈는 올해 친환경차(하이브리드차량 포함) 판매량 전망을 기존 1430만대에서 1388만대로 낮춰 잡았다. 올해 2분기 GM의 전기차 부문 손실액은 45억 달러(약 5조8334억원)에 달한다. 폭스바겐은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이 예상보다 약 30%나 밑돌자 지난달부터 전기차 생산량을 줄였다. 뉴욕타임스(NYT)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까지 급속도로 팽창한 전기차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지만 수요가 공급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기차 전환이 중장기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데는 업계와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다만 그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GM을 비롯한 완성차 업체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제시한 전기차 목표치(2032년까지 전체 승용차의 67%)가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콕스오토모티브는 “전기차 고성장 시대는 끝났다. 이젠 전기차 제조사가 구매자가 오길 기다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기차 성장속도가 느려진 이유는 복합적이다. 전기차 확산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충전 인프라도 그 중 하나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국에서 전기차 증가에 따른 충전 수요를 충족하려면 충전소가 2년 내 4배, 2030년까지 8배로 증가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잇따라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도 소비자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여전히 높은 가격도 전기차 대중화를 늦추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당초 자동차 업계에선 2025년쯤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와 비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지금도 이 관측이 유효하다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제조원가가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테슬라를 중심으로 ‘전기차 가격 전쟁’이 펼쳐지는 바람에 제조사들의 출혈도 만만찮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전기차를 살 돈으로 1~2단계 상위 레벨의 내연기관차를 살 수 있다. 배터리 가격이 떨어지기 전까지 전기차 대중화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각국 정부가 추진하는 전기차 보조금 삭감도 전기차 전환을 더디게 한다. 중국, 영국, 스웨덴 등은 올해부터 전기차 구매자에게 주던 보조금 혜택을 폐지했다. 독일은 올해 전기차 보조금 상한액을 6000유로에서 4500유로로 삭감했다. 내년엔 3000유로로 더 내린다. 업계 관계자는 “각국 정부의 이런 행보엔 새로운 모빌리티 생태계의 시장주도권을 중국에 뺏기고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한다. 내연기관차 퇴출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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