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방선기 (3) “고등부 활동 열심히 해도 대학 갈 수 있다” 몸소 도전

양민경 2023. 8.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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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 틀렸다. 떨어졌구나."

무엇보다 '예수께서 네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수양회에서 돌아온 직후 모의고사를 봤는데 너무 피곤해 도중에 잠든 일도 있었다.

'주일성수하고 고등부 활동을 열심히 해도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나는 고3 수험생 때도 매주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후까지 고등부 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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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중 입학 후 중등부 회장 맡아
3학년 수련회 때 예수를 구주로 영접
입시철에도 교회활동하며 경기고 합격
고3 수험생 시절에도 변함없이 병행
방선기(왼쪽 세 번째) 일터개발원 이사장이 초등학교 졸업을 기념해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당시 경기중학교 입학에 실패했다고 여긴 방 이사장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6개 틀렸다. 떨어졌구나.”

경기중학교 입학시험 직후 채점한 뒤 내뱉은 말이다. 그해엔 경기중학교 입시에서 4개 이상 틀리면 낙방이었다. 가족 모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찍은 졸업식 사진을 보면 그땐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었던 것 같다. 기대감 없이 합격자 발표장을 찾았는데 놀랍게도 내 이름이 명단에 있었다. 갑자기 합격선이 낮아진 건지 아니면 내가 오답 계산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건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 내가 합격한 것은 하나님 은혜란 건 알았다. 온 가족은 물론 담임선생님도 기뻐했다.

부푼 마음을 안고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명문 학교에 입학했다는 자부심은 오래지 않아 스러졌다. 같은 반 친구의 집안이나 경제력은 시장 상인인 아버지를 둔 우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내가 이들 가운데 성적이 월등한 편도 아니었다. 예전보다 자신 없는 모습으로 조용히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내 모습은 달랐다. 교회에선 ‘명문 중학교 학생이 교회 일도 열심’이라며 중등부 회장을 맡기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중등부 회장을 맡은 나는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회지를 만든다면서 손에 검은 잉크를 묻혀가며 인쇄한 일은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일은 중학교 3학년 때 수련회에서 일어났다. 무엇보다 ‘예수께서 네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모범생으로 살았기에 나를 위해 돌아가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처음으로 울며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당시는 본격적인 고등학교 입시 준비 철이었다. 그런데도 구원의 감격에 겨운 나는 교회와 교단 수양회를 내리 참석했다. 수양회에서 돌아온 직후 모의고사를 봤는데 너무 피곤해 도중에 잠든 일도 있었다. 참 무모했다 싶지만 하나님은 이런 나를 불쌍히 봐주신 것 같다. 경기중에 이어 경기고등학교에도 무난히 합격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교회 고등부에 올라가서도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중등부 때와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교회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주일에 고등부 활동을 열심히 하는 학생은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명문고에 다니는 교회 중직자 자녀가 몇몇 있긴 했지만 이런 경우 고등부가 아닌 어른 예배만 참석했다.

‘주일성수하고 고등부 활동을 열심히 해도 명문대에 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나는 고3 수험생 때도 매주 주일예배를 드리고 오후까지 고등부 활동을 했다. 당시엔 주일 성수를 하면서 공부나 일을 해선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공부를 못하니 걱정이 됐다. 이때 짜낸 묘안이 ‘영어 성경공부’다. 후배를 모아 영어 성경을 읽으며 말씀도 익히고 영어도 공부했다.

월요일에 친구들이 주말에 공부한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나는 믿음으로 이런 생활을 계속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 믿음도 기특했지만 이를 허용해주신 부모님의 믿음이 참 귀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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