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국회의원이세요? 활동가세요?
#1 "아주 걸레질을 하는구먼. 걸레질을 해."
4년 전 일이다.
당시 자유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이 당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복도에 앉아 있던 기자들에게 던졌던 말이다.
문이 열릴 때마다 정치인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해 엉덩이를 움직여 이동하는 걸 '엉덩이 걸레질'에 비유한 것이다.
현장 후배 기자들은 "의자도 충분히 없고, 취재원 말을 노트북에 받아쳐 바로 속보로 보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
■
「 일본 국회 앞 앉아 노래부르더니
이젠 검찰 청사 앞 바닥 앉아 농성
언론도 정치도 일어나 일 좀 해라
」
지금도 이 관행은 진행형이다.
하지만 '라떼 선배'를 감수하며 말하자면, 이렇게 해선 안 된다. 아무리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도 말이다.
기자와 취재원의 대등한 관계가 무너진다.
그냥 앉아서 받아치는 건 속기사이지 기자가 아니다.
어떤 취재원이건 늘 같은 눈높이에서 대해야 하는 게 기자의 의무이자 숙명이다.
"그런 형식적인 것에 구애받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개인의 가치가 되는 법이다.
워싱턴에서도, 도쿄에서도 취재현장에서 철퍼덕 바닥에 앉아 엉덩이 걸레질하며 취재원을 올려보며 노트북 두들기는 기자들을 본 적이 없다.
오늘날 '기레기'라는 굴욕적 호칭으로 불리게 된 배경에도 이런 시각적 영향이 있다고 본다.
#2 "오염수 투기 반대한다. 울라 울라~."
지난달 한국 야당 의원 10명은 도쿄 참의원 의원회관 앞 인도 바닥에 앉아 깃발을 흔들며 열심히 노래를 불러댔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딱 시민단체 운동가였다.
양이원영 의원의 선창으로 '울라 울라~'를 시작하자 법무부 장관 출신인 박범계 의원은 활짝 웃으며 "이거 좋다!"고 했다.
이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문제점을 일본 야당과 함께 널리 알렸다"고 자랑했다.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제1 야당 입헌민주당의 오카다 간사장은 최근 이들과 공동회견에 참석했던 아베 도모코 의원을 구두 경고했다.
제2 야당 일본유신회의 후지타 간사장은 "(한국의) '일부 활동가'에게 일본의 국회의원이 휘말려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민폐를 끼친 '일부 활동가'가 돼버렸다.
한 달 후 장소는 다시 바뀌어 한국.
박범계 의원 등 민주당 의원 네 명은 이번에는 수원지검 검찰청사 입구에 앉았다.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에 대한 검찰수사에 항의차 갔는데 검사장이 안 만나줬다는 게 이유였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를 "사법방해에 가까운 행위"라고 꼬집자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모욕적 표현"이라고 했다.
참 모르겠다. G8 국가를 자처하는 나라의 국회의원이 할 일인지, 국민이 느끼는 모욕은 생각하지 않으시는지.
#3 한번 냉정히 따져보자.
우리 언론도, 정치도 지금 진정 국민이 원하고 도움이 되는 '할 일'들을 하고 있는지.
먼저 언론.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슈가 좀 사라지나 싶더니 이젠 딸 조민씨까지 소환하고 있다.
그러곤 그의 SNS 낙서질 같은, 가십거리도 안 되는 것들을 우리 사회의 중요 이슈인 양 보도한다.
그뿐인가. 오전·오후 내내 TV에서 틀어대는 정치 패널의 싸구려 말싸움은 국민을 소모적인 '정치의 링'으로 끌어들인다.
외국 친구들과의 식사, 술자리에선 문학에서 첨단기술까지 늘 다양하고 유익한 주제가 화제로 등장한다.
하지만 한국은 어디를 가나 정치와 가십만 남는다. 언론의 책임이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의원들이 일본 의원회관 앞에서, 한국 검찰청사 앞에서 바닥에 앉아 항의하는 게 해야 할 일이라면 할 말이 없다. 오히려 응원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양평 고속도로,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에도 하염없이 떨어지는 민주당 지지율을 보면 그런 것 같지 않다.
우리 국민들 눈에도 그들의 모습이 '성에 안 차면 일단 거리에 앉고 보는' 급진 시민단체 운동가 수준으로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뭐든 각자의 자리에서 요구되는 역할, 방식이 따로 있는 법인데 말이다.
이제 모두 제발 아무 데나 앉지 말자. 일어나 제 일 좀 하자.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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