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남의 속풀이처방]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악귀
폭염이 계속되면서 납량 특집물이 쏟아져 나온다. 대개 공포물이고 악귀 들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다. 현대인들은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하면서도 혼자 있으면 귀신공포증을 갖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파고드는 콘텐트는 한여름 더위를 잊게 해준다.
고지식한 과학자들은 귀신의 존재를 한사코 부정하지만, 과학이란 것 자체가 완전한 것이 아니고, 많은 민족이 그토록 오랫동안 생각해온 것이라면 악귀의 존재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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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귀도 여러 종류와 등급 있어
적개심 넘치는 사회 파고들어
부패한 정치인들도 그중 하나
최악은 무감각한 연쇄살인마
」
세간에 떠도는 악귀들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악귀도 여러 양상을 가지는 것 같다. 보통 공포물에서 다루는 악귀, 한 맺힌 귀신은 등급이 낮은 편이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원혼으로, 자기를 죽인 사람에게 복수하고자 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유물론자 스탈린은 말년에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원혼이 찾아올까 봐 똑같은 방을 여러 개 만들었고, 심지어 방을 찾아가는 길을 미로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밤마다 원혼들이 자기 방을 찾아온다고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유물론자들도 악귀는 무서워한다.
전쟁통에 사람들을 죽인 군인들도 같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자기를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고 공포에 떠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이것을 섬망이나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이라고 간단하게 진단하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지금도 자국민을 학살하는 미얀마 군부 역시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 원혼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혼을 막으려고 불상 머리에 자기 머리상을 얹어 놓는 기행마저 벌인다고 한다. 악귀가 단순히 여름 드라마의 소재만은 아니란 것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의 악귀는 사이비 종교에서 주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사이비 교주는 성장 과정이 곤궁하고 궁핍하며 방치된 상태에서 유기견처럼 자란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 나르시시즘 인격장애이다.
어린 시절 기본적인 보살핌조차 받지 못하고 자기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역설적으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여 자기 허상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이비 교주는 정신착란적인 종교적 망상 증세가 있어서 스스로 도인이니, 예언자니 심지어 재림예수니, 성령님이니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다.
무의식적 절박함으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것인데, 악귀는 이들의 심리적 취약점을 파고들어서 그 영혼의 지배자가 된다. 교주들이 종교의 창시자가 되게 하고, 신도들을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노동력을 착취하게 만든다. 완전히 닫힌 집단 안에서 병적인 신념을 주입하고 정신적인 노예로 만드는 것은 악귀가 아니고는 할 수가 없는 범죄행위이다.
더 높은 단계의 악귀들은 부패한 정치인들에 빙의한다. ‘도덕 정신병’으로 불리는 인격 파탄, 욕망 차원이 아닌 도덕적 차원의 사디즘. 자신이 가한 위해나 파렴치한 행위에 대해 일말의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오히려 사람들에게 가학적 행위를 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스스로 정의의 사도라 여기는 사람들을 일컬어 도덕적 정신병자라고 한다.
정신과 의사인 스콧 펙 박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을 선량한 시민으로 위장하고 자기기만을 하는 데 능숙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은 늘 정의롭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부패한 무리이기에 응징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반대 세력에게 극단적인 발언을 하고 낙인을 찍기 일쑤이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은 이들이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라고 일갈하였다. 바로 이런 도덕 정신병자들이 악귀에 들린 사람들이다. 이들은 좌우 양쪽의 극단주의자들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악귀는 사람들에게 빙의하여 전혀 다른 인격체의 모습을 갖게 하며, 사람을 해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한다. 영성 심리에서 연쇄살인범들을 악령에 사로잡혔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수많은 사람을 아무런 가책 없이, 심지어 자신이 정의를 실현한다는 망상을 품고 대량 학살하는 사람들은 악귀가 들린 것이다.
악귀들이 사람 마음 안에 가득 불어넣는 감정은 적개심이다. 적개심은 사람들을 죽여도 괜찮다는 광적인 생각을 갖게 하는 아주 위험한 감정인데, 이 감정은 자신이 정의의 사도이고, 그래서 살인할 권리가 있다는 정신착란 상태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르완다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대량 학살극이 벌어진 것이며, 우크라이나·미얀마 등지에서 여전히 인간사냥이 진행되는 것이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악귀들의 세력. 적개심이 난무하는 곳에 나타나는 악귀들이 우리나라에서도 언뜻 보이는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다.
홍성남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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