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의 퍼스펙티브] “파격적 특권 포기한 정당이 총선서 지지받을 것”

이정민 2023. 8. 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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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인가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회부의장실에 들어서니 울프 흘름 부의장이 손수 맞이하고 직접 커피를 뽑아 탁자 위에 놓았다. 인터뷰가 끝나자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는 친절도 잊지 않았다. 3선 의원인데도 따로 보좌진이 없었다.

#총리 지명 1순위이던 모나 살린 당시 부총리는 법인카드로 초콜릿을 산 게 드러나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사법 처리를 받진 않았지만, 자녀 탁아소 비용 연체, 유모 영수증 미처리 등 윤리적 책임은 피할 수 없었다.

「 ‘심부름꾼’ 임무 잊은 특권국회
“위임한 권한 회수하자”가 민심
비리·범죄엔 불체포특권 없애고
대선·지선 때 3억 모금 폐지해야

주차위반에 장관 낙마하는 스웨덴

스웨덴 린네대 최연혁 교수가 저서 『스웨덴 패러독스』에서 소개한 스웨덴 정치인의 일상이다. 이외에도 의원거주 지원금을 실제와 다르게 신고해 정계를 떠난 당 대표, 주차 위반이나 TV 시청료 미납이 드러나 중도 낙마한 장관 사례 등이 줄줄이 나온다. 특권은커녕 일반 시민보다 혹독한 잣대로 감시받는 공복(公僕, 국가의 심부름꾼)의 모습이다.

“특권이 무려 186개”라는 한국 국회의원과 대비된다. 항공기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고, KTX를 공짜로 타는 건 빙산의 일각이다. 1년에 수억원의 국고 지원을 받고도, 후원회·출판기념회를 통해 정치자금을 모금한다. 비리를 저질러도 체포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고도 면책특권 뒤에 숨으면 그만이다. ‘대통령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제기한 김의겸 의원이 단적인 예다. “합리적 의심”이라던 그의 주장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지만 어떤 징계나 처벌도 받지 않았다.

특별한 대접을 받으면 특권을 누리는 걸 당연시하게 되고, 결국엔 군림하려 든다. 지금 정치가 그렇다. 자유로운 의정활동의 버팀목으로 주어진 공적 권한을 사유화하고 특혜를 누리면서 사회 통합과 국가 발전은 오히려 멀어져가는 퇴행을 보이고 있다. 한 전직 의원은 “정치인의 관심사가 국가 발전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재선과 자기 당의 집권에만 쏠려 있는데 놀랐다”고 고백했다.

지지자로부터 욕먹고 낙선을 각오하면서 바른 소리를 하는 ‘쓴소리파’ ‘소신파’도 멸종해가고 있다. 최 교수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공적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걸 감시하고 특권의식을 갖지 못하게 투명성을 높인 스웨덴 모델이 국가경쟁력을 끌어올린 밑거름이 됐다”고 설명한다. 내년 22대 총선(4월 10일)을 앞두고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국회의원 특권 폐기 운동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국회의원 보수, 세계 최고 수준”

지난 4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라는 시민단체가 발족, 공직자의 특권 포기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다. 운동을 주도하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은 “한국 국회의원 월급이 액면가로는 미국·일본에 이어 세 번째지만 국민소득 대비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며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 입신양명을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니 정치가 부패·타락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보수를 근로자 평균 임금(400여만원) 정도로 낮춰 국가를 위해 봉사할 사람이 정치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재민 기자

‘국회의원 수당 등 지급 기준’에 따르면 2023년 의원 연봉은 1억5426여만원이다. 일반 수당과 급식비, 정근수당, 명절 휴가비, 입법활동비 등을 합친 금액이다. 월급으로 환산하면 1285만원꼴이다.〈표1 참조〉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3만2661달러, 420만원) 대비 3.7배다. 미국·영국·일본의 의원 보수가 국민소득 대비 약 2.5배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한국 의원들의 보수가 높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신재민 기자

이와 별도로 의원실 지원 경비로 평균 1억여원가량 추가로 받는다. 사무실 운영비, 업무추진비, 의원 차량 유류비, 출장비, 입법자료 발송비, 정책 개발비 등이 포함된다. 〈표2 참조〉 의원들은 또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8·9급 비서 각 1명, 유급 인턴(1명) 등 모두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보좌진 총급여는 5억2000여만원. 의원 1명에게 연간 7억원이 넘는 경비가 들어가는 셈이다.

문제는 ‘고(高)비용’이 정치의 ‘생산성’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정세균 국회의장 시절이던 2016년 국회의원특권내려놓기추진위원회에 참여했던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국회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업무수행에 필요한 권한조차 특권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국민 불신이 높아졌고 국회의원을 특권집단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3권분립 강화와 행정부에 대한 견제 역할을 기대하며 국회의 권한과 위상을 높여줬지만, 정작 국회는 국민의 ‘대리인’임을 망각하고, ‘정치 엘리트’라는 특권의식에 포획돼 민의를 수용하지 못하자 국민이 위임했던 권한을 회수하려 나섰다는 게 김 교수의 해석이다.

선거공영제의 모순, 꿩 먹고 알 먹기

운동본부는 선거공영제란 이름으로 정당과 의원에게 과다한 나랏돈이 쓰이는 걸 바로잡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의원들은 1년에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까지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그러나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국고에서 환급받는다. 3억원을 모금해 선거자금에 다 썼어도 국고에서 3억원을 환급받으니 3억원이 고스란히 남는 구조다. ‘꿩 먹고 알 먹기’ ‘도랑 치고 가재 잡기’다.

특권폐지 운동에 참여한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며 “국민 눈높이와 맞지 않는 차별적 특혜 대접을 받으니 우쭐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 전 총장은 또 “국회의원이 자기 선거(총선)가 아닌, 지방선거나 대선 때도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며 “그런데 이 돈을 대선이나 지방선거에 사용하면 공직선거법 위반이 된다. 쓰지도 못하는데 왜 3억원까지 모금해야 하나”고 의문을 제기했다.

지방선거가 있던 ‘2022년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 현황’을 보면, 국민의힘 장제원(3억2103만원), 민주당 김남국(3억3014만원), 이원욱(3억2269만원), 정청래(3억516만원), 박주민(3억407만원) 의원 등 여야 실세들이 모금 상한액을 넘는 정치자금을 모았다. 선거를 명분으로 모금한 건데 선거 지원에 쓰지 못하는 모순일 뿐만 아니라 같은 선출직인 지방자치단체·의원과의 형평에도 맞지 않는 특혜다. 지난해 여야 의원의 평균 모금액은 1억8900여만원이었다.

선거비용 이중 보전에 헌법소원

중앙당에 대한 선거비용 이중 보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장 이사장은 “평소엔 정당에 경상보조금을 주고, 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에 쓰라고 미리 선거보조금을 주고, 선거 후엔 선거에 쓴 비용을 또 보전해줘 막대한 돈을 이중으로 안기고 있다”며 “지난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선관위도 심각성을 느껴 개정 의견을 냈지만 국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 덕분에 776억원(2021년)이던 국민의힘 재산은 지방선거가 있던 2022년엔 1255억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민주당도 464억원에서 929억원으로 재산을 불렸다. 기막힌 ‘선거 테크’가 아닐 수 없다.

여야는 선거 때 득표전략으로 ‘특권 폐기’를 써먹곤 번번이 폐기했다. 지난 대선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자신과 소속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오자 모두 부결시켰다. 비난 여론이 고조되자 이번엔 ‘정당한 영장 청구’라는 단서를 단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을 혁신안인 것처럼 둔갑시켰다. 꼼수다.

시대착오적인 불체포·면책특권

영국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시절, 입법부가 왕에 대한 비판 발언을 보장하기 위해 명문화된 이래 미국·영국·일본·독일 등 선진국들도 불체포·면책특권을 보장하고 있다. 이런 입법 취지와 배경 때문에 국내 학자들 간에도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문제는 운용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도입 배경이나 정신은 없어지고 인신구속과 범죄행위에 대한 회피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게 문제”라며 “불체포특권을 규정한 나라에서도 형사 사건이나 개인 범죄엔 적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면책특권의 경우 ▶영국은 명예훼손시 의회 내부에서 징계하고 ▶독일은 ‘중상적 명예훼손’에 대해선 면책특권을 적용하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방탄국회’‘막말국회’ 사라져야

이준한 교수는 “국민에게 봉사하지 않으면서 과도한 혜택을 누리는 넌센스를 바로잡으려면 내년 총선 때 정당이 이를 총선 공약화하고 개혁 경쟁이 불붙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기 교수도 “선거 판도를 결정짓는 두 축은 인물·정책 대결과 혁신 경쟁인데, 국민의힘과 민주당간 인물·정책 대결이 변별력이 있겠는가”라며 “1990년대 이탈리아 오성운동이 관용차 금지, 3선 제한 등의 파격적인 특권 포기로 각광받았듯이 내년 총선 판도는 특권 포기를 선도하는 정당이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복의 본분을 망각한 채 변질된 ‘특권국회’ ‘방탄국회’ ‘막말국회’. 이쯤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 다시 국민이 나설 때다.

이정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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