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우의 미래의학] 무너진 필수 의료, 다시 세우려면

2023. 8. 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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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아침마다 주요 뉴스를 찾아보는 게 일과였는데 최근엔 의료 관련 기사를 보기가 망설여진다. 의료 현장에 대한 오해가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소위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이 응급실에서 환자를 본 뒤 다른 병원으로 보낸 전공의를 기소할 방침이라는 뉴스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사회의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이 밀려왔다.

그 응급실 전공의는 자기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응급치료를 다한 뒤 소속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는 주 증상 치료에 대해서는 대학병원으로 후송하라고 안내했다는데, 이는 정상적인 대처였다고 본다. 하지만 그 후 다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받지 않아 결국 앰뷸런스에서 사망하자 그 책임을 환자를 본 전공의에게만 물을 뿐 환자를 받지 않은 병원들은 기소하지 않았다고 한다. 앞으로 유사한 위급 상황시 누가 선뜻 응급환자를 치료하겠다고 나설지 심히 우려스럽다.

「 소아과·산부인과 등 의사 부족
의대정원 확대로만 풀 수 없어
의료분쟁 고발 늘며 더욱 기피
의사들 보호 장치도 마련해야

김지윤 기자

모든 환자나 보호자는 의료진이 환자와 같은 입장에서 공감해주길 원한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신규 의료진에게 환자에 대한 연민까지만 감정 이입하라고 가르친다. 환자에게 너무 깊게 감정 이입하다 보면 이성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실수할 수 있다. 안 좋은 결과로 끝날 경우, 훗날 다른 유사 환자를 볼 때 외상성 스트레스 증후군(PTSD)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의료인 본인은 물론 환자 입장에서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기에 늘 냉철함을 유지해야 한다. 환자 입장에선 차갑고 도도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지만 말이다.

의학에서 100% 보장 가능한 치료는 존재할 수 없다. 환자별 특성이 다르기에 표준 치료시 기대하던 결과와 다른 상황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오랜 경험과 통계를 반영한 의학교과서와 진료지침에는 특정 시술시 예외 상황이 몇% 정도 발생할 수 있고, 이는 의료과실이 아님을 명기하고 있다.

일반인은 의학적 특성을 잘 알지 못하므로 사전 동의서 작성시 최악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명했더라도, 막상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의료과실을 의심하고, 사과나 보상을 요구하게 된다. 의료진들로서는 표준 프로세스에 맞춰 시행했음에도 발생하는 예외적 상황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면서도 절대 의료과실이 아니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다. 사과했다가 최악의 경우 의료과실을 인정한 것이라는 근거로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며 사과 대신 돈으로 때우려 하면 더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란 중재기관을 운영 중이나, 결국 형사 고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필수 의료 담당 의료진 중 경찰서 출석 조사를 받고 법원에 출두하는 아찔한 경험을 해보지 않은 경우가 없을 정도로 최근 그 빈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불행한 현실이다.

흉부외과, 산부인과에 이어 응급의학과,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현상이 가시화되면서 각계에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료 확충, 수가 현실화 등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의료인력이 늘어나고 수가가 올라가더라도 증가 추세인 의료분쟁으로 인한 압박감을 감당하면서까지 신규 의료진이 필수 분야를 지망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특히 수년 전 모 대학병원에서 신생아들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을 당시 악화한 여론을 의식해 도주 우려가 없는 교수를 구속기소 했다가 결국 무죄 판정으로 종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미 해당 병원은 심각한 이미지 추락과 경영상 손실을 감수해야 했고 관련 의료진들은 잊을 수 없는 응어리를 가슴에 품고 있다.

이 같은 선배들의 고초를 본 예비 의사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현재 부각되는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지원 감소의 출발점이 바로 그 사건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의사도 사람인지라 소중한 인명을 살린다는 인술 실현에 앞서 자신의 안위를 먼저 돌아보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이미 일본·그리스 등 해외에서도 필수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추진했지만 결국 지방과 공공병원 대신 대도시 인기 진료과로 더 몰려 실효성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현재 추진되는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이 그 효과를 보려면 10년은 기다려야 할 뿐 아니라 해외 사례처럼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커 보인다.

시급한 필수의료인력 부족 현상을 타개하려면 중대 과실이 아닌 한 의료분쟁에 대한 법적 처벌 유예 등 의료진 보호 방안 도입이 필요하다. 필수의료 붕괴로 국민 생명에 위협을 받지 않는 안전한 사회를 보장할 가장 현실적인 해결방안이 아닐까 한다. 결단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박승우 성균관 의대 교수·삼성서울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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