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복룡의 신 영웅전] 애덤 스미스의 행복론
평생 누린 명성에 비춰보면 애덤 스미스(1723~1790)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관리였던 아버지가 유복자인 그를 남기고 세상을 뜨자 어머니와 큰아버지의 손에 자랐다. 그는 개구리 눈과 주먹코에 입술이 처진 얼굴로 청혼도 못 해 보고 독신으로 살았다. 말더듬이에 어리바리해 집시들에게 납치됐다가 돈도 안 주고 그냥 풀려났다. 몽유병이 심해 잠옷 차림으로 30㎞를 헤매다 성당 종소리에 잠이 깨어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있는 글래스고대학에 입학해 도덕철학을 공부했다. 거기서 평생 사표(師表)가 된 프랜시스 허치슨 교수를 만났다. 옥스퍼드 대학에 전학했으나 학풍이 싫어 고향으로 돌아와 스승의 자리를 물려받아 교수가 됐고, 나중에 총장이 됐는데 취임사가 명문이다. 그 무렵 이웃에 제임스 와트라는 청년이 증기기관차를 만드는 것을 보고 대량 생산의 시대가 올 것을 예감했다.
인생은 인연이다. 이웃에 찰스 타운젠드라는 전직 재무부 장관이 살았는데 스미스의 능력을 인정해 대학교수 봉급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가정교사로 데려갔다. 그 덕분에 스미스는 아들과 함께 대륙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때 프랑스 부르봉 왕조 4대 왕인 루이 15세를 알현하고, 볼테르·튀르고·케네 등 대학자들과 교유했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1759)과 『국부론』(1776)을 썼는데, 자기가 아꼈던 『도덕감정론』은 인기가 없고, 『국부론』에서 별 뜻 없이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떠들썩한 데 놀랐다.
그는 『도덕감정론』(1부 3편 1장)에서 “인간이 건강한 육신을 갖고, 빚 없이 살며, 양심에 걸리는 일이 없으면 뭘 더 바라겠나”라고 말했다. 이렇게 산다면 행복이란 얼마나 쉽고 소박한가. 물론 소박한 꿈조차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죽음이 임박하자 친구들을 불러 식사하고 작별했다. 원고를 모두 태우라고 유언했지만, 제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신복룡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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