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터전, 서울
Q :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 종로구 부암동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부터 살아왔으니 5대가 이어진 곳. 나고 자란 이곳에서 햄버거집을 운영하며 청춘을 함께하고 있다.
Q : 자주 가던 장소
A : 가슴이 답답할 때 서울 풍경을 앞에 두고 멍하니 앉아 있는 걸 좋아한다. 윤동주 시인의 집이 있는 언덕 비석에 기대앉으면 서울 풍경이 한눈에 보인다. 지금은 나무가 많이 자라 전체 풍경이 안 보이는 게 아쉬울 따름.
Q : 동네에서 내가 꿈꿨던 것
A : 잘 사는 것과 타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 동네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사람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신용마트. 사장님은 나를 예뻐해 주셨고, 다 자란 지금도 가끔 저녁거리를 챙겨주는 소중한 관계다.
Q : 부암동의 매력
A : 과하지 않음. 여유로움이 있고, 서울 안에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는 아주 매력적인 동네!
Q : 동네를 사랑하는 방법
A : 지역 커뮤니티에 각자의 방식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지난해 핼러윈데이에는 부암동 와플 대표님이 지역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기획해 동네 사람들이 분장하고 사탕을 나눠줬다. 좋은 음식과 좋은 공간을 만들어 동네의 자랑이 되고 싶다는 야망이 나름의 사랑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Q : 아직도 애정하는 동네 단골집
A : 일본에서 온 부암동 주민이 운영하는 맘스키친과 한 식탁에서 다른 손님과 도란도란 식사할 수 있는 명란식당, 자하손만두 등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곳들.
Q : 변치 않길 바라는 점
A : 백사실계곡과 거리의 아기자기한 건물과 풍경들. 나에게 부암동이란 내 뿌리, 정체성, 자부심. 내가 보며 자라온 것들을 다음 세대에도 전해주고 싶다.
부암동에서 레이지버거클럽을 운영하는 박찬우
레이어가 차곡차곡, 영등포동
Q :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 영등포구 영등포동. 1988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Q : 자주 가던 장소
A : 샛강공원. 도심이지만 모든 것과 차단된 고요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아한다.
Q : 동네에서 내가 꿈꿨던 것
A : 동네에서 제일 예쁜 2층짜리 구옥을 구매하리라.
Q : 후회하는 것
A : 점점 동네 개발이 빨라지고 있어 동네 풍경을 눈에 담아두지 못한 것.
Q : 동네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사람
A : 영등포 지하상가에 있던 음반점 ‘예술의 전당’ 사장님이 가끔 생각난다.
Q : 영등포의 매력
A : 걷다 보면 너무 많은 레이어를 볼 수 있다.
Q :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면
A : 동네에 관한 기록을 많이 남겨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 그렇게 동네를 사랑하고 아껴줄 것이다.
Q : 아직도 애정하는 동네 단골집
A : 영등포동에 있는 인도 커리 전문점 에베레스트. 네팔 정식을 먹으면 영혼이 충전되는 느낌이랄까.
Q : 변치 않길 바라는 점
A : 모든 점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지금 지키고 싶은 것은 재개발로 밀리고 있는 영등포시장 인근 주택가다.
A : 나에게 영등포동이란 그냥 쭉 머물고 싶은 곳.
신스 펑크와 모던 펑크 장르의 음악을 하는 DJ Mogw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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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러운 나의 수유동
Q :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 강북구 수유동. 태어나서 대학생 때까지 살았다.
Q : 자주 가던 장소
A :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아카데미 하우스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동네 맨 꼭대기에 빈티지스러운 한 동짜리 호텔과 ‘구름의 집’이라는 스카이 라운지가 있었다. 어린 마음에는 그곳이 웨스 앤더슨의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다시 대형 베이커리 카페로 문을 열었는데, 예전의 아름다움은 사라졌다.
Q : 동네에서 내가 꿈꿨던 것
A : 사진가가 되고 싶었다. 동네를 찍은 사진에 그림을 그리고 스케치북에 붙여 일본 후지필름에서 주최하는 사진 콘테스트에 국제우편을 보냈다.
Q : 동네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사람
A : 4·19혁명 순국 열사들. 집 앞의 4·19국립민주묘지를 수백 번 이상 갔다.
Q : 수유동의 매력
A : 수유역은 먹자골목과 유흥으로 유명하다. 거기서 조금만 들어가면 온갖 호화 주택과 묘지, 연수원 등이 얽혀 있는 동네가 나타난다. 소나무 천지인 공원과 산,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다니는 맛집과 교외 스타일의 대형 카페, 5성급 스파 호텔 등 없는 게 없어 뭐든지 할 수 있다.
Q : 아직도 애정하는 동네 단골집
A :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하트 시그널〉 데이트 코스를 짠다면 이준 열사 묘에 갔다가 약수터와 개천을 산책한 다음, 덕성여대 앞 솔밭을 지나 ‘춘천막국수’에서 막국수랑 녹두빈대떡을 먹겠다고 한 적 있다. 지금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지만, 지난달에도 두 번이나 춘천막국수에 다녀왔다. 이 글을 믿고 부디 여럿이 가 닭무침과 제육, 막국수, 녹두빈대떡을 드시길.
Q : 변치 않길 바라는 점
A : 맑은 공기. ‘장미원’ ‘가오리’ 같은 귀여운 지명. 나에게 수유동이란 사랑스러운 변두리.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창작 활동을 하는 에디터 박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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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막내아들이라 불러주는 이태원2동
Q :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 용산구 이태원2동. 내가 태어난 1993년부터 2023년 지금까지 이곳에 머물고 있다. 동네에서 내가 꿈꿨던 것 노동과 창작의 공존. 노동의 창조성과 창작의 노동성을 동시에 배우길 바랐다.
Q : 자주 가던 장소
A : 제일상회. 새벽에 트럭으로 야채 배달을 했다. 상거래 한복판에서 거래의 논리와 그 이상의 논리를 알려준 곳이자 개인주의 신화를 벗어나게 해준 곳. 가정집으로 배달을 가면 가는 곳마다 밥을 줘서 당시 항상 배가 불렀다. 나를 막내아들이라 불러주는 곳.
Q : 내가 사랑했던 것
A : 외출하려고 버스정류장 가는 길에 그날따라 몇 걸음마다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던 경험이 있다. 어머니 친구, 친구 어머니, 동네 수영장 강사 선생님 등과 인사와 포옹을 나누고 제일상회 어르신이 “시내 가는 길이냐?”라고 묻던 말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하면서 어르신들에게는 이태원이 시내가 아님을 알았다.
Q : 동네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
A : 제일상회를 왕래하는 어르신과 인근 상인들. 이 동네의 매력 사람들도, 건물도 오래됨. 20년 전 진료 기록을 기억하고 건강해졌다고 말해주던 한의사.
Q : 아직도 애정하는 동네 단골집
A : 제일상회 옆 세탁소. 양장점을 운영하던 사장님의 자부심과 “내 말대로 하라”는 리더십이 소비자의 정체성을 깨부순다.
Q : 변치 않길 바라는 점
고도 제한과 대형 아파트 단지가 없는 풍경. 나에게 이태원2동이란 계급보다 소중한 걸 가르쳐준 곳.
예술을 거점으로 비평과 창작, 출판을 하는 작가 이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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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양재동
Q :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 서초구 양재동에서 태어나 대치동으로 이사 한 후 학창시절과 20대를 보냈다.
Q : 자주 가던 장소
A : 양재천. 개포고등학교 시절 등굣길이자 하굣길. 다리 밑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거나 혼자 물멍하던 곳.
Q : 동네에서 내가 꿈꿨던 것
A : 언더그라운드나 스트리트, 카운터 컬처가 부족한 문화적 소외 지역인 이곳에서 도시 풍경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꿨다. 내가 어디에 살든 머물고 싶은 동네를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는 꿈.
Q : 동네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사람
A : 초등학교 때부터 ‘베프’인 남사친.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아서 토요일이면 꼭 성당을 가야 했다. 동네 아파트 놀이터에서 다방구를 하다가도 성당 갈 시간이 다가오면 어찌나 가기 싫던지. 양재동의 매력 10~20대를 보낸 대치동은 매력적인 동네로 기억되지 않는다. 하지만 양재천변은 녹음이 무성한 자연과 함께 매력적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급조되지 않은 듯한 거리의 묵직한 매력은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말해주듯 양재천변 거리가 그렇다.
Q : 아직도 애정하는 동네 단골집
A : 은마상가. 상가에 있는 떡집, 만나분식, 1층 치킨집. 나를 알아봐주는 상점 주인이 있고 오랜만에 찾아가도 기억해 주는 곳이 즐비한 곳.
Q : 변치 않길 바라는 점
A : 사람이 있고, 정이 있는 동네 풍경. 양재천변으로 이어진 여유롭고 한적한 거리 풍경.
Q : 나에게 양재동이란
A : ‘우리가 모르던 1.5 도시.’ 4년 전 양재천에서 읽은 도서 〈우리가 몰랐던 도시〉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어디서나 우리는 자연 속에 살고 있고, 새로운 눈을 뜨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볼 수 있다면 이전과 다른 일상을 살 수 있을 거란 이야기. 양재동도 그런 동네다.
도시를 아름답게 구성하는 에딧시티프로젝트 대표 남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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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다정한 시흥동
Q : 청춘을 함께한 동네와 머문 기간
A : 금천구 시흥동. 이곳에서 태어나 중학생이 될 때까지 살았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전전하다 대학 다닐 때 다시 돌아가 독립하기 이전까지 살았다.
Q : 자주 가던 장소
A : 아파트 뒤편에 드넓게 펼쳐지는 관악산. 아침에 일어나 건물이 아닌, 산을 보는 건 엄청난 생동감과 활력을 준다. 하루하루 다른 마음으로 산을 사랑했다.
Q : 동네에서 내가 꿈꿨던 것
A : 치기 어리게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시흥동은 내 작업의 기본기가 다져진 곳. 작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가장 컸던 시기.
Q : 동네를 떠올리면 먼저 생각나는 사람
A : 대들보처럼 동네를 지키고 있는 아빠. 아빠 역시 시흥동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시흥동의 옛 모습을 내게 자주 알려준다. 아빠랑 있으면 동네가 달리 보인다.
Q : 시흥동의 매력
A : 금천구청역 주변은 개발을 서두르고 있지만,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정다운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곳이 좋다. 가게를 오래 유지하고 있는 소상공인이 제법 많은 편이다. 관악산이 큰 줄기가 돼 동네를 지키고 있는 모습도 좋고.
Q : 아직도 애정하는 동네 단골집
A : 엄마랑 이모도 여고생 시절 먹으러 다녔던, 아주 오래된 즉석 떡볶이집 상아탑이 있다. 늘 핑크색 페인트로 내부를 칠한 게 무척 귀엽다.
Q : 변치 않길 바라는 점
A : 느리고 더뎌서 추억이었던 모든 순간. 시장과 그곳을 지키는 소상공인, 동네를 지키는 노인들이 잘 지내는 동네였음 좋겠다.
Q : 나에게 시흥동이란
A : 미운 마음도 묻을 수 있는 다정한 동네.
사진과 에세이, 인터뷰 등을 다양하게 다루는 작가 황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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