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팀 ‘상온 초전도체’ 개발 주장…아직 학계 검증 못 받아
‘꿈의 물질’로 불리는 초전도체 논쟁이 뜨겁다. 전기 저항이 사라지고 물건을 공중에 띄울 수 있다는 초전도 현상을 상온(常溫)·상압(常壓)에서 구현하는 물질을 우리나라에서 개발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사실이라면 노벨물리학상’이란 말이 나오지만 믿기 힘들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국내외 연구진의 검증이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엇갈린다.
논쟁의 진원지는 고려대와 민간연구소 기업 퀀텀에너지연구소다. 고려대 출신의 회사 대표 이석배 박사, 김지훈 박사, 권영완 고려대 연구교수가 그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에 ‘The First Room-Temperature Ambient-Pressure Superconductor(최초의 상온·상압 초전도체)’라는 제목의 논문 원고를 올렸다. 논문에 따르면 이들이 만들어낸 초전도 물질(LK-99)은 섭씨 30도, 1기압 상태에서 전기 저항이 0에 가깝고, 약하지만 자석을 밀어내는 반자성(反磁性) 현상도 띠고 있다.
이들의 논문이 과학계의 핫 이슈로 떠오르면서도 동시에 논쟁이 된 건 학계의 검증을 받기 전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연구논문 발표 방식은 학술지에 논문을 제출하더라도 해당 분야 과학자들의 엄격한 학문적 검증을 통과해야만 한다. 하지만 1991년 과학논문 저장 및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가 생겨나면서 학술지 게재 전에 아카이브에 먼저 연구결과를 올리는 연구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교신저자인 권영완 고려대 연구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물질은 초전도체의 특성인 전기저항이 상온에서도 0에 가깝고, 반자성 효과도 일부 보인다”며 “아카이브에 초전도 물질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올려 검증받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국내외 과학계의 검증은 이미 시작됐다. 미국 로런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를 1일 공개했다. 중국 연구팀도 고려대 연구진이 논문에 제시한 내용을 일부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주장을 담은 실험 영상을 공개했다.
한국 초전도저온학회는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위원회를 발족하고 대응에 나섰다. 학회는 2일 홈페이지에 “현재까지 발표된 데이터와 공개된 영상으로는 LK-99가 상온 초전도체라 할 수 없으며, 퀀텀에너지연구소에서 시편(물질 샘플)을 제공하면 상온 초전도체 검증을 위한 측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초전도체(超傳導體·superconductor)란 전기 저항이 0이 되면서 전류가 장애 없이 흐르는 물질을 말한다. 외부 자기장과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형성해 반발력을 지니는 마이스너 효과도 보인다. 초전도체의 발견은 100년이 넘었다. 1911년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의 물리학자 카멜린 온네스가 수은의 전기 저항을 측정하는 실험을 하다가 절대온도 4.2K(섭씨 영하 268.8도)에서 전기 저항이 갑자기 없어지는 현상을 발견, ‘초전도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 현상을 상온·상압에서 입증한 연구는 없었다.
현재 초저온 조건에서 초전도 현상을 쓰는 것은 자기공명영상(MRI)이 대표적이다. 핵융합 발전에도 필요하다. 수소 핵융합을 구현하려면 섭씨 1억 도의 플라스마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과학자들은 초전도 현상을 이용해 1억 도의 플라스마를 공중에 띄워 놓는 방법을 쓴다. 양자컴퓨터 역시 초저온을 이용한 초전도 현상을 쓰고 있다.
이긍원 고려대 디스플레이반도체 물리학과 교수는 “이번 초전도체 아카이브 발표에 대한 과학계의 검증이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엄격한 검증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준호 과학·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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