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까지 간 남양유업 경영권 분쟁…왜
3년째 이어져온 ‘남양유업 주인 찾기’ 싸움이 더 길어질 예정이다.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 사이 경영권 분쟁이 결국 대법원 심리까지 가게 됐다. 원래는 ‘올여름 종결론’이 나올 정도로 진행 속도가 빨랐지만 마지막 문턱을 앞두고 제동이 걸렸다. 대법원 심리까지 들어간 이상 최소 1년에서 최대 3년까지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예상과 달리 대법원 심리 ‘속행’
남양유업 경영권 분쟁은 간단히 말해 홍 회장의 ‘기업 매각 철회’에서 촉발한 싸움이다. 남양유업 오너 홍 회장이 한앤코에 남양유업 지분을 파는 계약을 맺었지만 지난해 9월 돌연 매각 철회를 통보하면서 현재에 이르렀다. 한앤코가 홍 회장에게 별도로 약속했다는 ‘백미당 분사’ ‘오너 일가에 대한 임원 처우 보장’ 등이 지켜지지 않았고, 계약 당시 홍 회장 대리를 맡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한앤코도 담당하는, 이른바 ‘쌍방 대리’ 의혹을 제기하며 계약 무효를 주장한 것. 한앤코는 원래 계약대로 매각을 진행해달라는 ‘주식 양도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홍 회장의 완패다. 지난해 1심 재판부는 “매각 계약에 문제가 없다”고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홍 회장 측 항소 이후 진행된 2심에서도 1심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홍 회장 측은 이번에도 소송 결과에 불복, 상고를 진행했다. 하지만 사건이 실제 대법원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앞선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을 경우, 대법원이 별도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재판이 끝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쉽게 말하면 ‘더 볼 것도 없으니 그냥 끝낸다’는 취지의 제도다.
2심 소송·판결이 유례없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런 분위기가 더 굳어졌다. 통상 민사 소송 2심은 8~10개월 정도 걸리지만 이번에는 넉 달 만에 판결까지 나왔다. 여기에 본 소송과 별도로 진행된 다른 여러 소송에서도 한앤코가 모두 이기면서 ‘법원이 사실상 한앤코 손을 들어줬다’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최근 심리 속행이 결정되면서 소송은 결국 대법원 심리까지 가게 됐다.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대법원은 상고 기록을 받은 날부터 4개월 이내에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홍 회장의 상고 기록이 접수된 3월 17일로부터 4개월이 지나면서 심리 불속행 기간이 초과된 것이다.
보통 대법원 결정까지 1~3년이 소요되는 만큼, 남양유업 주인이 정해지는 시기는 해를 넘길 가능성이 생겼다. 빠른 사업 정상화를 계획하고 있던 한앤코에는 엄청난 악재다. 특히 펀드 만기가 보통 10년인 사모펀드 입장에서는 수년씩 걸리는 법정 소송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반대로 홍 회장 측은 2심부터 법률 대리인을 법무법인 바른으로 바꾸고 탄원서를 지속 제출하는 등 노력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모양새다.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남양유업 주가는 급락했다. 대법원 심리가 결정된 7월 18일 종가는 43만7000원으로 전날(49만원) 대비 11% 가까이 빠졌다. 7월 26일 기준으로는 39만4000원까지 떨어졌다.
왜 대법원 심리 들어갔나
부당거래 의혹 검찰 수사, 변수로
본 소송을 둘러싼 사실 관계에서 달라진 내용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법원은 심리를 속행하기로 했을까.
올해 6월 제기된 ‘한앤코 직원 남양유업 불공정 투자 의혹’이 변수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금융감독원은 한앤코가 남양유업 경영권 인수 직전 한앤코 직원 3명과 남양유업 직원 1명이 해당 주식을 매입한 뒤 단기 매도하는 방식으로 부당 시세 차익을 거둔 것으로 파악하고 사건을 패스트트랙(신속 수사 전환)으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 넘겼다.
한앤코는 2021년 5월 당시 남양유업 경영권을 주당 82만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남양유업은 불가리스 과장 광고 논란으로 여론 질타를 받는 상황에서 30만원대까지 주가가 하락한 시점이었다. 한앤컴퍼니 인수 발표 후 두 달이 채 안 돼 주가는 70만원대로 급등했다. 이 과정에서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부당 이득을 누린 내부자가 있다는 의혹이다.
한앤코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직원 주식 계좌를 확인했지만 의심스러운 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한앤코 관계자는 “한앤코는 업계에서도 내부통제가 강한 업체로 평가받는다. 국내 주식 거래 자체가 금지돼 있고, 수시로 점검하기 때문에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이라고 강조하며 “이와 별개로 당국 조사에 성실히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심리 불속행 기각으로 단순 처리하기에는 법원 입장에서 다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피소가액이 2000억원이 넘는 고액 사건인 데다, 남양유업 소액주주는 물론 국내 소비자 등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전관예우’에 따른 관행 차원에서 심리 속행이 결정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한앤코와 홍 회장 측 모두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법무 대리를 맡고 있다. 통상 전관 변호사가 있으면 예우 차원에서 되도록 심리 불속행 기각은 하지 않는 관행이 있다. 한앤코 소송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중에는 전관 출신인 이인복 변호사가 포함돼 있다. 홍원식 회장 일가 대리인인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중에는 대법관 출신 고영한 변호사가 속해 있다. 마침 둘은 사법연수원 11기 동기기도 하다.
적자 누적…“장기전 피해야”
소송이 대법원까지 넘어가기는 했지만 업계와 법조계는 빠르게 판결이 날 것으로 전망한다. 3년까지 지지부진한 장기전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이르면 연내 사건이 종결될 것으로 보는 이도 많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홍 회장 측에서 새로운 쟁점을 내놓지 않는 이상 대법원 소송이 수년씩 길어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소송이 장기화될 경우 ‘합의’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 사안에선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2심 판결문에서도 “사안의 성격상 신속한 분쟁 해결이 필요한 사건”이라는 내용이 명시된 바 있다.
3년째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남양유업 적자폭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도 빠른 판결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2020년 767억원이었던 남양유업 영업손실은 2021년 779억원, 2022년 868억원으로 증가했다. 경영권 리스크로 신사업 등에서 추진력 있게 진행하지 못한 결과라는 데 이견이 없다. 기업가치도 소송 이전 대비 반 토막이 났다. 누가 이기든 누적 손해가 막심한 상황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특히 승기를 잡은 한앤코 쪽에서 빠른 판결을 원할 것이다. 펀드 기한 내에 수익성과 기업가치를 크게 높여야 하는데 경영권 획득 시점이 늦어지면서 남은 시간이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0호 (2023.08.02~2023.08.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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