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통에 손 베어도 산재?”…10대 그룹 재해율 높아진 이유
주요 대기업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발목 접질림이나 손 베임 등까지 재해 인정 범위가 넓어져 기업으로선 역부족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2일 중앙일보가 국내 10대 그룹(일부는 주요 계열사)의 ‘2022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서 재해율 지표를 분석했더니 SK그룹의 재해 증가율이 103%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해 두 배로 늘었다는 의미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각각 57.5%, 40.9% 증가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全)산업 재해율은 0.65%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0.02%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은 매년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작업장 내 부상·질병·사망 등 재해 현황을 공개한다. 다만 기업마다 기준이 다르다. 전체 근로자 중 재해를 입은 근로자 비중을 의미하는 ‘재해율’, 100만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발생한 재해 비중을 의미하는 ‘근로손실재해율’(LTIFR), 총근로시간 대비 재해 빈도를 의미하는 ‘총기록재해율’(TRIR) 등이 주로 쓰인다.
SK그룹의 LTIFR은 0.29(2021)→0.59%(지난해)로 1년 새 0.3%포인트 높아졌다. SKC(3.27%)와 SK이노베이션(0.53%) 등의 재해율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SKC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작은 부상·질병도 재해 보고를 하도록 보고 범위를 확대해 경미한 부상·질병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풀리며 ‘생활사고’ 증가”
전자 업계의 경우 재해 발생 증가 폭은 줄었지만, 재해율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의 LTIFR은 0.67(2020)→1.32(2021)→2.08%(지난해)로 각각 97%, 58% 높아졌다. 삼성전자의 산업 재해율은 0.008(2020)→0.022(2021)→0.031%(지난해)로 각각 175%, 40.9% 증가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거리두기 정책 완화로 직원들의 활동이 늘면서 생활사고 건수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LTIFR은 1.72(2020)→1.76(2021)→1.94%(지난해)로 각각 2.32%, 10.22% 증가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기존에는 울산·아산·전주공장만 집계했는데, 2021년부터 연구소·서비스 등 주요 사업장을 포함하면서 재해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룹별 집계를 하지 않는 롯데그룹의 경우 주요 계열사의 재해율이 줄어들었다. 롯데웰푸드(옛 롯데제과)의 2021년 대비 지난해 산업 재해율은 -26%, 롯데케미칼의 TRIR은 -48% 등으로 나타났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2020년 충남 대산공장 폭발 사고 이후 3년간 안전환경 개선에 약 5000억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포스코그룹의 LTIFR은 0.54(2020)→0.52(2021)→0.56%(지난해), 한화그룹의 TRIR은 0.02(2020)→0(2021)→0.02%(지난해), GS칼텍스의 경우 0.3(2020)→0.09(2021)→0.12%(지난해) 등으로 소폭 등락을 보였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사고 대부분이 발 접질림, 손 베임 등 단순사고”라며 “회사 내부적으로 단순사고의 원인을 분석해 이를 줄이기 위한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HD현대그룹에선 HD현대중공업의 전년 대비 지난해 산업 재해율은 5.6% 감소했다. 하지만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은 각각 27.9%, 87.3% 높아졌다. HD현대그룹 관계자는 “업(業) 특성상 임직원보다 협력사 직원이 많아 협력사 안전경영에 신경쓰고 있다”며 “지난해 협력사의 재해율이 2021년보다 감소했다”고 밝혔다.
기업 “도시락 먹다가 손 베어도 산재”
이에 대해 재해를 줄이기 위한 산업계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다만 기업들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회사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손을 벤 경우, 체육대회 중 다친 경우 등 업무와 무관한 사고까지 산업 재해로 분류된다”며 “정부가 2020년 이후 재해 심사 정책을 완화해 재해 신청·승인 건수가 늘어나는 추세라서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정비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한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최근엔 고령 근로자의 난청·근골격계질환 등도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추세”라며 “특히 강성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선 업무와 연관성 조사 없이 경미한 사고·질병까지 재해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관리 감독은 철저히 하되, 직업병에 대한 사업장 제재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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